2박 3일 목포, 광주 만두 여행기, 2부.
만두 여행을 하다 보면 아쉬운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숙소에서 제공하는 조식을 못 먹는다는 것이다. 주로 게스트하우스에서 묵게 되는데, 가끔은 아침에 주방에서 모락모락 풍기는 맛있는 미역국 냄새라든지, 빵 굽는 향에 여기 아침밥 주세요! 외치고 싶을 때가 많다. 한동안 코로나 때문에 조식이 모두 중단되었는데, 요즘은 조심조심 아침을 준비해주시는 추세다.
허영만 아저씨의 ‘백반 기행’ 방송을 자세히 보면 한 지역에서 하루에 한 세 끼 정도를 자시면서 1박 2일 정도로 촬영하고 가시는 것 같다. 혹은 당일치기 촬영도 있을 수도 있고 말이다. 그걸 보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것. ‘어이쿠, 이거 페이스 조절 잘 해야겠다.’
하루에 세 끼, 네 끼를 먹는 일은 세 끼, 네 끼를 굶는 것보다는 훨씬 쉬운 일이지만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게다가 딴 것도 아니고, 음식인지라 배가 차 있는 상태에서는 한계효용 체감의 엄격한 법칙에 따라 감흥이 뚝 떨어진다. 아무리 산해진미가 앞에 놓여 있어도 맛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만두 여행을 다닐 때는 조식과 간식은 과감히 포기한다.
오늘은 목포에서 광주로 가는 날. ktx를 타고 한 30분 정도를 올라가면 된다. 목포를 떠나기 싫어 아쉬운 마음으로 ‘호텔 델루나’의 촬영장소인 ‘목포 근대역사관’에 들러 영혼을 편히 잠 재우고(?) 숙소로 돌아오니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도 안 가지고 왔는데, 광주에 도착하니 아주 하늘에서 비를 들이붓는다. 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터라 아무리 택시를 탄다고 해도 일단 우산 하나를 더 드는 것부터 굉장히 피로한 일이다.
광주의 ‘박소영 왕만두’가 오늘 첫 번째 방문지다. 예전부터 인터넷 검색으로 이곳의 유명세는 익히 알고 있었다. 워낙에 찾는 사람들이 많은지라 예약을 하고 가야 한다는 꿀팁도 전수받았다. 오전 11시에 가게를 여는데, 당일 예약을 받는다. 이때 그냥 이름하고 연락처로 예약을 받는 것이 아니라 시간대별로 끊어서 준비해놓은 만두를 가져갈 수 있도록 한다. 나는 2시 예약을 걸고, 시간이 늦을까 봐 광주송정역에서 택시 타고 30분, 부리나케 쫓아왔다. (광주 왜 이렇게 큰가!!! 처음 알았다)
비를 뚫고 도착하니 이미 직원분들의 손이 바쁘다. 게다가 어떤 분은 이 빗속에서 예약을 안 하고 오셨다가 다시 5시 예약을 하고 뒤돌아가시기도 했다.
가게 안을 들여다보니 똑같이 빨간 티셔츠에 위생 모자를 쓰신 분들이 쉴새 없이 만두를 빚고 있다. 저 세 분중 한 분이 바로 '박소영' 씨다. 열심히 만두를 빚고 계신 젊은 여자분.
메뉴는 간단하다. 김치만두와 고기만두. 그리고 왕만두와 작은 만두, 그리고 왕찐빵으로 나뉜다. 특이한 것은 왕만두와 왕찐빵은 일주일에 화, 수, 금요일 딱 세 번만 나온다는 것이다. 게다가 하루 판매 분량도 딱 정해져 있는 것을 보면 이 집의 한정판매 전략은 상당히 스마트해보인다.
숙소에 돌아와서 펼쳐본 그 유명한(!) 박소영 만두!
사실 어떤 만둣집은 맛도 관리가 잘 되어 있는데 미리 빚어서 한 김 식혀서 포장한 것을 쌓아놓고 파는 곳이 있다. 그리고, 지역도 다르고, 상호도 다른데 불구하고 신기하게 만두의 길쭉한 모양도, 맛도 그리고 메뉴도 똑같았다. 고기만두, 김치만두, 새우만두... 그래서 과연 저 집들은 프랜차이즈인 것인지 궁금증이 계속 남아 있었는데, 인터넷으로 박소영 만두를 검색하니 모양이 그 류의 만둣집들과 비슷한 것이다! 비도 너무 많이 오고 너무나 피곤해서 그 만둣집들하고 같은 맛이라면 그냥 패스할까 했었다. 그래도 광주까지 왔으니 꾹 참고 발 다 젖어가며 고생 고생해서 간 길. 이런 고생을 단번에 사르르 녹게 해주는 맛이었다
게다가 숙소도 보일러를 틀어놓아 따끈따끈 온몸이 노곤해지고... 그 순간 한입 넣은 만두가 박소영 왕만두라니! 완벽한 조합이었다.
그저 아무럴 것도 없는 고기 넣고, 당면 넣고 만든 만두다. 그리고, 김치 넣고 당면 넣고 만든 만두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나는 만두가 좋을까. 피도 어떻게 이리 얇을 수 있을까. 이곳에서 8년 넘게 만두를 빚어 파는 공력이 '아무럴 것 없는' 만두에 녹아 있다.
늘 강조하지만, 커피와 완벽한 마리아주는 달콤한 케이크나 쿠키도 좋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칼콤한 만두다. 한입 가득 매운맛이 넘실대는데, 적당히 따끈한 커피가 들어왔을 때의 그 강렬함은 최고다. 이렇게 만족스러운 만두 식사를 마치고, 바깥의 빗소리를 들으면서 낮잠에 빠져들었다. 그래도 몹시 피곤했었나 보다.
주소는 광주광역시 북구 운암동 대자로 62.
매주 월요일과 마지막 주 일요일이라고 한다.
박소영 사장님과 이하 직원분(혹시 동생분이 아닌가 생각이 드는데...)은 정말 목소리도 크고 친절하다.
이곳은 테이크아웃만 된다.
다음 날 아침, 2박 3일의 만두 여행을 마치는 마지막 코스가 되겠다. 이날도 아침 일찍 일어나 양림동의 정취를 흠뻑 맡고... 1900년대 초반, 선교사들이 와서 고아들을 거두고, 사람들을 치료하면서 그들이 살던 집이나, 생활터들이 그대로 남아서 완전한 한국식 가옥들과는 다른 묘한 느낌이 들었다. 100년 전에도 사람들이 이곳에 살았겠지. 같은 땅을 밟았겠지.
산책을 마치고 향한 곳은 광주 동명동의 '모두가'.
택시 아저씨께서 잘못 내려주시는 바람에 한 15분을 걸어서 찾아갔는데, 오히려 그것이 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광주의 핫플레이스가 잔뜩 포진한 골목을 정통으로 뚫고 들어갔으니 말이다. 재미난 컨셉에 톡톡 튀는 아이디어들이 담긴 가게들이 많아서 눈호강했다.
깨끗한 외관, 나름대로의 디자인 철학이 담긴 듯한 건물의 모습! 그리고 앞에 '모두가'라고 씌어진 입간판 디자인도 예사롭지 않다. 들어와 보니 정리가 아주 완벽하지는 않아도 깨끗한 모습이었다. (사실 내 성격이 좀 까다롭고 정리에 민감해서 그런 것이니 신경 쓰시지 말것!)
매장 한 벽면에는 이렇게 귀여운 그림들이 걸려 있다. 아까 세워둔 입간판도 그렇고, 이런 그림도 그렇고 분명히 주인아저씨의 순박한 솜씨 같지 않은데 무얼까 궁금했다. 역시나, 사모님께서 미술 전공한 디자이너시란다.
메뉴를 보다가 고기완탕과 모듬만두를 주문했다. 주문받으시는 분들이 모두 그거 너무 많을 텐데요? 하고 놀라신다. 먹다가 남으면 싸 간다고 말씀드렸더니 그제야 안심을 하시네. 이러다가 다 먹으면 어쩌려고 말이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내 뒤에 오신 양복을 입은 아저씨도 혼자 앉아 있다가 벽에 걸린 그림을 보고 말씀하신다.
- 아, 진심을 담다!
꾹꾹 눌러 크게 읽으신다. 이어...
- 사장님의 긍지와 정성이 담긴 것 같습니다! 마음에 와 닿습니다. 사장님. 아, 좋습니다. 좋아요.
나는 우리 아빠나 남편이 괜히 어디 가겟집 들어가서 이러면 제발 좀 목소리 좀 죽이라고, 오지랖 그만 부리라고 꼬집었는데, 이렇게 보니 광경이 훈훈하다.
- 아아~ 맛이 있으야 되는데요, 완탕 짜거나 싱거우면 말씀하십시오.
친절한 주인아저씨가 겸손하기까지 하시다.
드디어 한 상 차려졌다. 단무지가 저렇게 노란 색깔이 빠져 있으니 좀 더 건강한 밥상처럼 보인다. 그런데, 우리 사장님. 배추김치에는 조금 더 신경을 쓰셔야 할 듯하다. 안 그래도 중국산 김치 알몸 염장 사진 때문에 식당들 발칵 뒤집혔는데 말이다. 게다가 이 집은 만둣집 아닌가!!! 김치 만두를 파는 곳이라면 반찬으로 담기는 김치도 철저하게 관리해야 할 것이다.
모듬 만두는 총 세 가지 납작만두가 나온다. 고기만두, 매콤만두, 새우만두. 그런데, 새우 만두는 새우 꼬리가 있어서 새우구나 할 정도로 매콤한 김치맛이다. 셋 중에 하나 골라서 드세요~ 한다면 나는 새우 납작만두를 고를 것이다.
튀김만두 종류가 따로 있어서 그런지 이 납작만두들은 왠지 물에 부쳐낸 것 같은 느낌이다. 신기하게 기름을 쓰지 않고도 물로도 굽고 볶는 기술이 따로 있다는 것을 예전 요리 연구가 윤혜신 씨의 책에서 처음으로 읽었다. 조리의 기술을 글자로 배우다니 우습지만, 그래도 지금 맛있게 먹고 있는 이 납작만두들은 기름에 부친 듯, 물에 찐 듯 중간에 걸친 부드러움을 자랑한다.
비가 한 번 화끈하게 내리고 나니 꽃샘추위가 찾아왔다. 이날도 가방에서 스웨터란 스웨터는 다 껴입고 식당으로 출정한 상태였다. 뜨끈한 국물로 몸을 녹이려는 생각이 앞선, 이 걸쭉한 완탕! 나는 국물에 이렇게 계란 줄알도 풀고, 고명도 잔뜩 올린 걸쭉한 떡국을 좋아한다. 아니, 어려서부터 숟가락으로 뚝 떠먹을 만큼 불투명한 떡만둣국만 먹고 자랐는데, 나중에 남의 집, 시댁에 가서 알게 됐다. 맑은 양지 국물을 낸 떡국을 먹는 집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심지어 모든 국 종류가 다 맑다. '저거 밍밍해서 어떻게 먹어?' 라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일단 시월드는 나의 필드가 아니었던 것이다. 로마였다, 로마. 로마법 = 맑은 국
게다가 경북 쪽에서는 떡국에 만두는 왜 넣냐는 기가 막힌 일갈도 몇 번 들었던 터라 더욱 맘이 가는 만두국이다.
이 완탕은 멸치와 해물로 육수를 잡고 직접 빚은 고기만두를 넣어 만들어졌다. 이날은 아쉽게도 먹지 못했지만, 쫄면이나 떡볶이도 소스에 직접 과일을 갈아 넣으면서 만드신다고 한다. 친절한 주인아저씨는 왠지 눈치가 계속 내가 지금 완탕 맛있게 먹고 있는지, 궁금하신 듯했다. 꼭 내 쪽을 빤히 쳐다보지 않더라도 알 수 있는 그 기운! 게다가 내가 사진을 하도 찰칵, 찰칵 찍어대니 이 사진 또 어디 올라가나보다 하고 긴장하셨을 수도 있고.
맛있어요! 하고 리액션을 해드렸다. 실제로 정말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맛의 만두 한 상이었다.
한참 저탄고지 다이어트가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한동안 탄수화물을 딱 끊고, 고기와 계란, 그리고 방탄커피로 지내보기도 했었다. 그런데, 보드라운 만두피, 쌀떡들을 어떻게 포기했었는지. 한동안 두통에 시달리고, 아침만 되면 몸이 자꾸 붓는 것 같은 느낌이라 이 증상에 대하여 저탄고지 카페에 올렸더니 이런 답변이 올라왔다.
[그럴 때면 한번 쌀밥을 한 숟가락 떠서 드셔보세요]
한 공기도 아니고, 한 숟가락이라니... 이렇게까지 초세밀하게 먹고 살아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어 바로 때려치웠다.
오늘 만둣집 모두가는 내게 탄수화물의 즐거움, 그리고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곳은 만두를 포장해서 판매하기도 한다. 자, 이쯤 되면 뭔가 연상되지 않으신지. 맞다. 바로 백화점의 지하 1층 식품관이다. 만두 빚어낸 모양새도 그렇고, 깻잎에 새우를 싼 만두라든지... 바로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만두와 흡사하다.
주인아저씨께 이 자리에서 얼마나 영업하셨냐고 물었더니 2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그럼, 만두 만드신 경력이 2년인가? 라는 생각이 잠시 스쳐 갔지만, 만두는 다른 분식류와는 달리 만드는 법을 배워서 바로 가게를 열기는 힘든 음식이다. 어느 정도 세월의 품을 들여 만두 빚기에 내공을 쌓아야 비로소 내 가게를 낼 수 있다. 그동안 다녀보니 만둣집 주인분들은 거의 모두 다른 곳에서 오래 배우고 오셨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모두가 주인아저씨가 맨 처음 배운 만두가 바로 백화점 만두였다신다. 서울에서 한 20년 정도 일을 하시다가 고향 광주로 오셔서 내신 거라고 귀띔해주신다.
만두 하나하나, 냠냠 먹다 보니 주인아저씨와 직원분이 너무 많을 것이라고 걱정하셨던 것은 무색하게 다 먹어버렸다. 조금만 더 배 안에 여유가 있었다면 구운 만두에다가 쫄면 채소를 얹어서 먹어보고 싶었는데, 그것까지는 차마 못 했고. 다음에 또 광주에 온다면 시도해보겠다. (하지만 솔직한 내 마음의 소리를 들어본다면... 나는 광주보다는 목포가 쪼금 더 좋다!)
이렇게 목포와 광주 만두 여행은 막을 내렸다. 특히 이번 여행, 가장 고마웠던 것은 큰 걱정, 고민 없이 다녔다는 점이다. 다음 달 벌이 걱정, 아들 학교 들어가서 적응할 걱정, 그 밖의 걱정, 기타 등등 매번 고민에 짓눌려 새벽에 깨기를 수 차례였는데, 이번에는 숙소에서 참 잘 잤다. 이것만으로도 감사한 만두 여행이었다.
주소는 바로 영수증에 나와 있는 바대로다.
다시 한번 더 이야기하지만, 핫플레이스들이 많은 동네이므로 재미난 볼거리들도 많으니 만두 먹고 나서 슬슬 운동 삼아 걸어 내려가 보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