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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동 '깡통 만두'

줄을 서시오! 기다림 끝에 만날 만두.

by 황섬

글을 써서 생계를 이어나가는 작가가 되어보자고 결심한 것은 한 9년 전이다. 이제부터 작가야!!! 하고 주먹을 꽉 쥐었던 날도 명확하게 생각이 난다. 비가 엄청 오던 날이었다. '한겨레 신문 편집자 과정'에 등록해서 수업에 참석하던 첫 날. 첫 수업에서 자기 소개를 하는데, 왜 이 과정에 들어왔는지 얘기하는 것으로 갈음했다.

- 책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어서 왔습니다. 그런데, 책을 쓰려면 책을 어떻게 만드는지 과정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수강하게 되었습니다.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어리석었다.

그 뒤 얼마 안 있어,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한 출판사에 찾아갔다. 지금 생각하면 창피해서 그냥 녹아 없어지고 싶을 정도인데, 그도 그럴 것이 기획서 한 장도 없이 간 것이다.


- 그래서, 어떤 책을 쓰고 싶으신데요?

친절한 출판사 대표님은 따뜻하고 맛있는 커피를 한 잔 내려주시면서 물어오셨다. 기획서도 없이 무작정 쳐들어간 작가 지망생이 우스웠을 수도 있으련만...

- 제가요, 전국의 맛집을 돌아다니면서 에세이를 쓸 거예요. 좋은 소재 같은데 어떠세요?

- 아.... 그러한 에세이집들은 지금 너무나 많기도 하구요, 우선 어느 정도 원고를 쓰셔서 보여주신 다음에 저희가 판단을 하는 것이...........

당연히 씁쓸한 커피향만 입에 남긴 채 안녕히 계세요. 하고 뒤돌아 나왔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생각하면 할수록 나의 '미친 짓'은 흑역사로 점점 더 또렷하게 남게 됐다.



오랜만에 찾아온 만두 브런치다.

만두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라면에도, 오뎅국에도, 김치찌개에도 모두 만두를 넣어 먹는 사람인데 한동안 만두를 좀 멀리했었다. 따뜻한 손만두가 너무나 먹고 싶은데도, 가슴이 아파서 가게 문턱을 드나들지 못했다. 말은 안 했어도, 그런 마음이 있었다. 마치 실연한 후에 옛 연인과 함께 거닐었던 거리는 쳐다보는 것도 마음 아픈 것 같은...

브런치의 만두 원고를 모아서 책을 내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어떤 사정으로 계속 미뤄졌다. 그래도 언젠가는 때가 오겠지 하면서 계속 기다렸다. 지난한 기다림의 연속. 그래도 이 책에 맞는 때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저 9년 전, 그럴 리는 없겠지만, 덥썩 출판사가 오케이!를 외쳤다고 치자. 그리고, 내가 책을 냈다고 가정해보자고. 이때 얼마나 부끄러운 책이 나왔을지 상상하기도 싫을 정도인 것처럼 말이다.

무작정 기다리던 시간이 지나, 이제 조금은 출판의 가닥이 잡혀나가기 시작했고 그제야 밤에 발 뻗고 자기 시작한 나는 다시 사랑하는 만두씨에게 다시 돌아온 것이다.


때는 밀어야한다.


안국동, 익선동, 성북동, 종로 등등... 고풍스러운 이쪽 동네에는 유달리 맛있는 만두집들이 많다. 보통은 북쪽에서 전쟁통에 내려오셔서 자리잡은 만두다. 그중 안국동의 맛집 깡통만두는 예전부터 익히 그 명성이 자자!가야지, 가야지 하면서도 이상하게 연이 안 닿아서 한 번도 못가본 곳이다.

이곳은 1988년, 맨 처음 문을 열 당시에는 이태원 제일기획 근처에 있다가 이곳 헌법재판소 쪽으로 이사와서 영업하고 있다.

11시 30분 부터 문을 연다고 해서 조금 일찍 가 있어야겠다. '어디에서 기다리나?' 이 생각을 하고 넉넉하게 11시 5분쯤 도착했는데, 기우였다. 영업 시작 30분 전부터 사람들이 깡통만두 문 열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게다가 오늘은 날씨까지 쾌적하게 가을가을... 그러니 줄을 서도 기분좋게 기다릴 수 있을 터.


부지런한 만두인들.


이렇게 줄을 서서 들어간 깡통만두. 1인 테이블도 한쪽 구석에 정갈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혼자서 만두를 음미하기에 썩 어울리는 자리였다. 게다가 물을 한 잔 마셔보니 구수한 옥수수차. 그냥 시원한 정수기 물도 좋지만, 이렇게 옥수수차나 엷은 녹차를 내주시는 음식점의 정성은 운영하시는 분의 태도를 다시 보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가게 자리에 다 자리잡고 앉았는데도, 음식이 나오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하루, 이틀 아니었을 터인데다가 홀과 주방 일하시는 분들의 손발이 딱딱 맞는 것이 눈에 훤히 보였다. 그리고, 테이블이나 식기, 물통 등등 청결도 꼼꼼하게 신경쓴 티가 났다.

먼저 이곳의 메뉴를 보자면 만두만 파는 것만은 아니고 육전이나 생선전과 같은 전류와 비빔국수가 꽤 유명하다. 물론 만두 전골도 대표 음식이다. 하지만, 너무너무 아쉬웠던 것은 최고로 좋아하는 김치만두는 동절기에만 판매한다는 사실. 사실 겨울 김치가 제일 맛있기는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입성한 이곳 깡통만두에서 김치만두를 맛볼 수 없다는 것은 잠시 애도.


나는 이중, 비빔국수와 만두 세 알 세트를 골라봤다.

먼저 나온 만두 세 알. 반달 모양의 만두는 해물만두고, 옆에 둥그런 모양의 뒷짐만두 두 알은 고기만두다.

김치 한 종류나 단무지만을 내주는 다른 만둣집들에 비해 반찬 종류가 많다. 하나하나 질척이는 단맛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된다. 오히려 너무 자극적이지 않아서 좀 허전할 정도.



먼저 해물만두를 먹어봤다. 세상에!! 만두안에 커다란 새우가 들어있는데, 그것만으로도 풍미가 확 바다가 된다. 물론 함께 꽉찬 고기소가 잘 받춰주어서 그렇겠지만 말이다. 육즙까지 함께 뚝뚝 떨어져주니 이것만한 입속의 즐거움이 없다. 오랜만이야, 내 만두.


그런데, 너무 배고프고 급한 나머지 바로 입으로 들어갔던지라 만두 속 커다란 새우 한마리를 사진으로 남기지 못해서 아쉽다. 숟가락으로 가른 후, 진짜 전광석화로 쉴 틈 없이 바로 입에 들어갔던 것.


먹고 나서 정신차리니 새우가 사라졌다.


만두피도 두껍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정말 모든 밸런스가 완벽했다. 밀가루 냄새 나지 않고, 덜 익고 오래 된 두부 향 나지 않고, 고기와 채소의 양도 적절... 게다가 너무 빡빡하지도 않고, 퐁퐁 솟는 육즙이 고기를 뒤덮어서 빵하고 우유랑 같이 먹는 효과는 내는 것. 이것이 감히 내가 주장하는 '만두의 밸런스'이다.


어쩜 이렇게 만두피가 반짝반짝 예쁘게 생겼으면서 제 할일 조용히 다 하는지. 바로 맛있는 고기소를 잘 싸두면서도 나서지 않는 맛 말이다. 그리고, 깡통만두는 간장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 그냥 간장만 놓여 있으면 가끔 조금 섭섭한데, 아마도 전을 메뉴로 내는 집이어서 간장도 그냥 혼자 맛을 내게 하지 않는다.

깡통만두, 역시 듣던 소문 그대로다. 먹자마자 이렇게 신난 만두는 오랜만에 만난다.



만두 세 알을 총알같이 먹고 나니 조금 간격을 두고 내게로 온 비빔국수.

살면서 이렇게 꾸미 푸짐하게 올라간 국수는 정말 처음 먹어본다. 이게 다 육전이다!



그리고, 모닥불 피우려고 잔뜩 장작을 쌓아놓듯 푸짐하게 올려 있는 저 육전, 세상에 손도 크시지, 저 육전들을 헤집고 한참 들어가니 빨갛게 양념이 된 국시가 빼꼼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저 안에는 꽉 짜 버무린 오이에, 열무, 김, 무 등이 넉넉하게 숨어있다.

- 육전이 빨갛게 될 때까지 충분히 비비고 드셔야 양념이 싹 배어서 맛있습니다.

국수를 가져다 주시는 직원분의 설명이다.

이 간단한 설명이 국수 한 그릇의 맛을 가름한다. 어떤 사람들은 카레도 그렇고 짜장도 그렇고 완전하게 슥슥삭삭 비벼 먹는 습관을 지니고 있지만, 나 같은 사람들은 끝까지 다 안 비비고 먹기 때문이다. 아마도 직원분 설명이 없었더라면 그냥 대충 비벼서 저렇게 위에 얹힌 육전 민낯 그대로 집어 먹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이랬겠지.

- 여기 양념, 왜 이렇게 과해.

뒤적이다보면 확실히 양념이 너무 많아서 의아할 정도인데, '육전이 빨갛게 되도록' 비비면 이렇게 훌륭한 한 그릇 비빔국수가 된다. 맛은 다른 김밥천당에서 내주시는 빨간 비빔국수와는 많이 다르다. 매콤하게 개운하기도 하고, 맛이 아예 없는 맛, 無맛으로도 느껴지는 묘한 국수다.


면은 칼만두에서 쓰는 넙적한 칼국수용 국수인 듯하다. 그리고, 이 비빔에 곁들여 나오는 국물이 있는데, 이것이 최고다. 내가 오늘 비빔국수를 먹는 것이 아니라, 예전에 늘 그랬던대로 만두국을 선택했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를 하도록 만들 정도였으니. 그릇이 뜨거운데도 두 손으로 들고 후룩후룩 불며 마셨다.



어떤 일을 하든지 크고 작은 후회는 남는다. 나중에 다시 깡통만두를 오게 된다면 꼭 이 뜨끈한 국물에 담겨 있는 만두를 먹어보리라. 그래서 속을 뜨끈하게 데워줘야지. 그리고, 날이 점점 차가워질 테니 김치만두국을 시켜볼 결심이다.



즐겁게 만두 식사를 마쳤다. 깡통만두는 만두가 주요리이지만, 전골 또한 훌륭하다는 주변인들의 증언이 잇달아 나온다.

이제 곧 혹은 이른 시일 안으로 만두책은 세상에 빛을 보게 될 것 같다. 정말 다 때가 있는 듯하다.

심지어 9년 전, 막무가내로 찾아갔던 출판사와 돌아서, 또 돌아서 이렇게 다시 만두책으로 만날 것이라고 상상이라도 했을까. 창피스럽게도(?) 이 출판사의 대표님은 나를 기억하고 계시다고 한다. 그리고, 계속 글을 써오고 있는 것도 알고 계신단다.

최종 결과로 어느 출판사와 손을 잡게 될지, 어찌 될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만두, 먹어봤습니다!'



안국역 2번 출구로 나와 헌법재판소 쪽으로 5분 정도 걸어야 한다. 그리고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나온다.

02-794-4243.

모든 메뉴는 포장이 가능하다는 고마운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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