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까스 집에서 만둣국이 이 정도면...!
어디 사세요?
한국 사람들이 처음 만나면 많이 하는 질문 중에 하나다.
예전에는 몇 살이세요? 질문도 많이 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건 실례라고 은연중에 여겨지는 터라 쏙 들어간 상태.
나는 지금 중랑구 묵동에 산다.
어쩌다보니 이사를 많이 다녀서 수유리 고향집을 떠난 후에는 서울 지역의 거의 모든 곳에서 살아봤던 듯하다. 주민등록 초본을 떼어보면 나도 모르게 직원한테 미안할 정도로 장수가 어마어마(해봤자 4장 정도지만...) 하다.
우리 동네가 참 좋다. 다들 사는 곳이 좋아서 계속 거기에 사는 사람도 있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서 눌러앉은 이들도 있겠지만 나는 지금 우리 동네에 정이 많이 간다.
먼저 깨끗한 도서관이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고, 그 옆은 체육관이 있다.
그리고, 좋은 유치원과 학교도 많다. 초딩 장애친구를 키우는 나는 이에 말도 못하게 수혜를 받았다. 사실은 '수혜'의 기준이 조금은 더 높아져야겠지만, 아무래도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 밖에 없는지라 조금만 도와줘도 그게 그렇게 고맙다.
통합반으로 운영되던 훌륭한 친환경 어린이집, 장애 어린이들의 교육에 관심이 적극적이셨던 원장님, 그리고 훌륭한 시설의 통합 교실로 우리 개구장이 아들 만두를 받아주셨던 초등학교...
이쯤에서 다시 한 번 왜 우리 아들의 별명이 만두인지 짚고 넘어가보자.
엄마가 만두를 좋아한다고 해서만은 아니다.
그리고 서울에서 집값이 가장 싸고, 교육열이 제일 낮은 곳이 우리 동네다.
구글 검색창에 '중랑구' 치면 바로 연관 검색어로 지금도 '거지 동네'라는 말이 따라나오지만, 나는 이런 인간적인 것이 좋다. 얼마나 여지가 많은 동네인가. 한 집 걸러 한 명이 다 1등급에, 나는 서울 살고 있는데 분당에 사둘까 말까 망설이다가 포기한 집이 세상에 한 달만에 3억 8천이 올라버렸다고 우울증 걸려 머리 싸매고 눕지 않아도 되는 동네다...(실화다)
그런 일이 벌어질 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만약 내 인생에 '대박'이라는 것이 하나 터진다 해도 이곳을 굳건하게 지키고 살 것이다. 벌어서 남은 돈(!)은 맛있는 것 사 먹고, 만나는 사람 밥 사주고 술 사주며 살면 되지. 비싼 집이 뭐 그리 중요한가.
(내 마인드가 이래 시대에 뒤떨어지고 후져먹어서(?) 이날 이때까지 이렇게 소박한 규모로 사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런 정이 흠뻑 든 동네에 또 한가지 정 붙일 곳이 생겼으니... 우리 동네 시장통에 위치한 밥집.
워낙 동네 도서관 메뚜기 뛰어가면서 일하고 있는데, 코로나 전에는 지하에 구내식당이 썩 괜찮았던 터라 매일 이용했었다. 뭐 먹을까 고민 안하고, 그냥 '백반' 이런 것 좋았다.
그러다가 이제는 도서관 가까이에는 딱히 먹을 데가 없어서 시장까지 내려오는데, 어느 날 운명과도 같이 <와우wow 돈까스>라는 곳을 만나게 된다.
이집의 시그니쳐 메뉴는 단연 돈까스다. 보통 남자분들 점심 메뉴를 살피면 웬만하면 돈까스 아니면 제육. 그래서 이집에는 착한 가격과 더불어 남자 손님들이 굉장히 많이 오신다. 힘찬 육체 노동을 마치고 휴식과 함께 야무진 영양공급의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그리고, 공깃밥 인심도 후하시다. 손님들 아쉽지 않도록 밥도 가득가득 퍼 주시고, 사이드로 나오는 미역국도 늘 따끈하다. 나는 손발이 늘 차가운지라 날 차가울 때는 미역국 그릇만 잡고 있어도 좋았다.
이런, 손님을 맞이하는 작고 세심한 정성들이 좋다.
국은 국인데, 밍밍하고 뜨겁지도 않으면 그냥 버리게 되니까. 이집에 오면 나는 늘 미역국 한 그릇 더 주세요!를 외치게 된다.
가격은 너무나 아름답다! 우리동네라 이런 가격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조금만 다리 건너 넘어가면 어디 5천 원짜리 밥상을 만날 수 있나.
평소에는 주로 보리밥 정식을 먹는다.
이것이 5천 원 밥상이라고!
거기다가 계란 후라이는 집에서도 해먹을 수 있는 것인데, 밖에 나와서 식당에서 주시는 것이 그렇게 맛있다. 500원 주고 사 드시라고 박하게 굴어도 천 원 내고 두 장 먹을 지경.
매번 먹을 때마다 자꾸 고맙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보리밥이다.
만둣국은 직접 손으로 빚으신다 하여 지난 여름부터 기다려왔던 메뉴다. 보통 '김밥천당'이나 '** 회관' 류의 수많은 메뉴들을 취급하는 곳에서는 만두를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절대 안 시켜먹었다. 분명히 시판 만두, 운 나쁘면 '공장'만두라고 불리는 싸구려 만두가 물속에서 뒹굴며 놀아서 먹은 뒤 소화될 때까지 내내 신트림이 올라올 가능성이 높으므로.
그런데, 이 집은 직접 빚으신다니, 그 정성이 놀라웠다.
<와우 돈까스>는 푸근한 여자분 한 분, 빠릿빠릿한 여자분 한 분이 늘 자리를 지키신다. 시장 지나가면서 살짝 들여다봐도 두 분이 늘 계신다. 교대도 하지 않고, 알바도 없는 것 같았다.
푸근한 여자분은 늘 부엌을 지키시고, 역시 홀은 빠릿빠릿한 분이 왔다갔다 하시면서 관리하고 계신다. 궁금했다. 두 분은 친구인 건가. 누구 한 분이 사장님이시고 직원을 고용하신 걸까. 만약 후자라면 직원을 너무너무 잘 뽑으셨다! 속으로 혼자 감탄까지!
깔끔한 만둣국이 드디어 나왔다.
김가루가 올려져 있고 계란 줄알도 휘릭 친, 딱 집에서 만든 것 같은 만둣국이다.
국물 솜씨야 예전에 칼국수 먹으면서 이미 알았다 하더라도 만두 빚으시는 솜씨는 보통이 아니시다.
만둣국 받으면서 와, 정말 손수 빚으신 거예요? 물어봤는데 평소에도 말씀 길게 안 하실 것 같은 아주머니께서 정말 '네' 하고 퇴장하셨다!
만둣국 한 그릇에 김치만두 7개, 일괄.
만드는 곳마다 김치를 신김치를 쓰느냐, 아니면 생김치를 쓰느냐 모두 다르다. 지금이야 워낙 시판 만두들이 잘 나와 있어서, 이제는 집에서 명절이라고 만두 빚고 송편 빚고 행사가 많이 없어졌지만 집만두들이 모두 겨우내 묵혔던 김장김치들 툴툴 털어서 소로 다져 넣었더랬다.
그런데 이집에서 만드는 만두가 바로 그 어린 시절 추운 겨울의 집만두 같은 추억을 불러 일으킨다.
만두소에 신김치와 숙주, 그리고 당면이 듬뿍 들어가 있다. 피도 적당히 얇다.
유명 만두 전문점과 같은 찰기는 없지만 이것만으로도 집밥 얻어먹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말이야 이렇게 만둣국으로 '추억팔이'를 하였지만, 사실 나는 집만두의 추억은 없다.
늘 주장하는 바, 한집 한 식구의 입맛은 메인 요리사의 입맛에 따라가게 되어 있다. 보통, 밥을 짓는 사람은 아직까지는 우리나라에서는 엄마가 압도적인데, 엄마가 오징어를 싫어하면 그집 아이들과 심지어 오징어를 좋아했던 아빠까지 모두 오징어 볶음을 먹어볼 확률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오징어를 싫어하는 사람은 안 해 버릇하니 오징어 다듬는 법도 아리까리한지라, 유튜브 같은 곳에서 조금만 손품 팔면 나올 것도 안 보게 되고, 안 하게 되고... 오징어에서 멀어지는 사이클의 반복이다.
그래서 우리집 아이들은 '오징어 볶음'이란 음식은 알고 있으되, 학교 급식 아니었으면 태어나서 단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음식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게는 만두가 그랬다.
만두를 싫어하고,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엄마의 딸로 태어나 어려서는 집에서 만두를 빚거나 먹어본 기억은 없다. 하지만, 어쩌다가 중학교 때 학교 앞 분식집에서 먹은 '만두라면' 덕에 만두에 입덕. 도투락 만두 몇 알 집어 넣은 라면이었는데도 떡라면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내겐 맛있었다. 지금도 라면 끓일 때에는 꼭, 꼭, 꼭 만두를 넣는다. 달걀은 생략해도...
'고향의 맛'을 느끼게 해주는 푸근한 만둣국 식사를 마쳤다.
사실 우리집 식구들도 만두 별로 안 좋아한다. 어떻게 한국인이 만두를 싫어할 수가 있지? 특히 만두 거부의 선봉장이 되는 딸에게 물어보면 뾰죽한 이유 없이 싫다고 한다. 애기때부터 냉동고에 만두를 쟁여 놓고 여차하면 만두 삶아 주고 쪄주고, 김밥 한 줄 사서 시금치 빼고 입안에 욱여넣어 주곤 했었는데 어쩌면 그때 그 바쁜 식사의 기억이 좋은 기억을 방해할런지도 모르지.
식구들과 만두 전골 먹으러 갈 일은 그동안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었지만 그래도 나는 아마 혼자서 꿋꿋하게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닐 것 같다. 만두 먹으러...
아 참!
이 두 아주머니들은 자매란다.
푸근한 이미지의 아주머니가 언니, 빠릿빠릿 토끼 같은 아주머니는 동생.
2019년 5월에 문을 여셨다고 하니 아마도 새 건물 들어서면서 함께 오픈하신 것 같다.
서울의 너무 구석진 곳에 박혀 있어서 일부러 들르시기는 너무나 멀고 고단하시겠지만 지나가는 길에 스치면 꼭 한 끼 정도는 시간을 비우고 이곳에 와보시길.
찌개류가 없어서 조금 섭섭하기는 하지만, 날이 슬슬 차가워지기 시작하면 육개장 또한 일품이다.
묵1동 도깨비 시장통. 입구 쪽, GS 편의점 옆에 바로 <만두박사>라는 또 하나의 내 단골집이 있고, 바로 50미터 정도 걸어오면 오른편에 <와우 돈까스>가 있다.
정말, 정말 아쉽게도 이 수많은 안주들을 두고, 술은 팔지 않는다.
1,3주 일요일 휴무.
아침 8시부터 저녁 9시까지 문을 연다.
부지런한 자매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