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해도 제목 안 나오는 만두 이야기

집만두 도전해봤습니다_실패

by 황섬

이번 설날에는 만두를 만들겠습니다.

온 가족들 모여주세요!


가족들에게 공지를 날렸다.

이제 명절에 우리집은 텅 빈 절간 같다.

나야 전국 각지에서 오랜 시집살이를 거친 후,

이런 저런 사유로 이제는 명절에는 '자유!'를 선언하고는 뜨뜻미지근한 명절을 조마조마 지내곤 한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 기름진 음식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여느 주말과 다를 바 없는 심심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만두 만들기 당일.

온 가족 모이라고 했더니 엄마, 즉 아이들의 외할머니 한 분만 달랑 오셨다.

오케이.

관객이 단 한 명일지라도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배우의 심정으로 만두 만들기를 시작했다.

애초 많이 만들 생각도 없었다.

오늘 만들 만두는 속도 하얀 순백의 '평양식 만두'.

지난 연말 만두 만들기 클래스에 가서 배워가지고 온 비법(?)을

풀어 놓을 작정이었다.


- 아니, 어떻게 만두 만들 생각을 다 했어?


엄마는 일단 함께 자리하시긴 하셨는데, 영 요리를 할 폼이 아니었다.

게다가 내가 알고 있는 한, 엄마는 생전 만두를 단 한 번도 손으로 빚어본 적이 없다. 심지어 떡볶이도 만들어보신 적이 없다. 요리에 별 관심이 없으신 양반이라...

아, 나 어렸을 적에 할머니, 고모들이랑 같이 송편을 빚은 적은 있었던 듯 하다.

오오. 그 쌀가루 반죽들을 어떻게 다 해내셨을까?

지금 만두 만들 재료들을 바라보는 엄마의 뚱한 얼굴 표정을 보면 신기하기만 하다.

일단 엄마는 설거지를 하면서 옆에서 그냥 지켜보시라고만 했다.


이제 만두를 만들어봅니다.



1. 만두피 만들기

보통 만두피는 동그랗게 만들어져 파는 것을 쓰는데,

나는 그래도 집만두인데 자가 제피 하자, 직접 만들어보자 싶어 도전!

만두 클래스에서 가르쳐 주신 것보다 1.5배를 더 많은 양을 만들어보는 것이 내 목표였다.

밀가루 4컵 + 물 반컵, 계란 노른자 2개, 식용유 반컵, 소금 반 티스푼


그러나, 나는 물 반컵에서 주저주저했고, 물조절 실패.

반죽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정말 이게 과연 쫄깃해질까 하는 숱한 의문의 과정이다.

결국 중간 중간 따뜻한 물을 뿌리면서 점도를 조절했다.

반죽이 물에 너무 풀어져도 좋지 않지만, 어제와 같이 반죽이 물기를 머금고 있지 않으면 만두피 끝에 계속 말라 갈라져서 모양새가 영 좋지 않다.

그리고, 당연히 잘 달라붙지도 않는다.



계란 2개 넣으랬는데, 3개 넣으니 피가 너무 노랗게 되었다. 소금 필수. 식용유는 점도를 높여주고,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아 이뻐. 노랑색.



아! 밀가루 반죽할 때 이 단계가 가장 큰 고뇌에 빠진다. 내가 지금 옳게 하고 있는가.


요쯤 되면 좀 신난다. 내가 맞게 한 것이로군.


비닐에 감싸서 냉장고에서 숙성.


다 된 반죽은 비닐에 싸서 냉장고에 집어넣고 30분 정도 숙성을 시킨다.

이렇게 숙성을 하는 동안 만두소를 휘리릭!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만두소까지 만들고 지쳐 잠에 드는 바람에 밀가루 반죽이 너무너무 딱딱해져서

그거 따뜻하게 풀어내는라 고생했다. 참고하실 것.

너무 오래 냉장고에 집어 넣으면 그냥 돌덩이 된다.


2. 만두소 만들기

이번에 만들 만두는 평양식 담백한 만두라서 재료의 색깔마저도 담담백백하다.

배추, 숙주, 목이버섯, 두부 그리고 돼지고기.

그리고, 질 좋은 참기름 정도면 충분하다.


배추와 숙주는 뜨거운 물에 삶아서 꺼내어 흐르는 찬물에 헹군다.

특히 숙주는 잠깐만 넣었다 뺄 것. 이라는 주의사항이 곳곳에 널린지라 말 잘 듣는 어린아이처럼 정말 넣었다가 금방 빼는데, 그러면 숙주 풋내 나서 환장한다.

긴 튀김 젓가락으로 힘을 빼고 뒤적뒤적할 때 젓가락에 덜그럭 소리가 나지 않을 때까지 삶으면 된다.

물론 몇십 초 안 걸린다.

그러고 나서 잘게 썬다.


집에 있는 칼이 잘 들었으면 좋겠다.

요리를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칼이 좋아야 요리할 맛이 배가된다.

참된 목수는 연장 탓하지 않는다는 진리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칼이 안 드니까 천재 목수라도 이렇게 다지기 한 판 들어갈 때는 미치고 팔짝 뛸 듯.

목이 버섯을 미지근한 물에 불린다. 목이버섯은 너무나 무서워서 일부러 사진을 크게 확대해봤다. 같이 무섭자고. ㅓ다란



재료를 섞기 전에 커다란 그릇 아래 하얀 천보자기를 받쳤다.

그리고, 두부는 일부러 간이 짭짜름하게 되어 있어서 생으로 뜯어 먹어도 맛있는

동네 콩집 두부를 준비했다.

두부를 으깨는 과정은 혹시 집에 어린 아가들이 있다면 그 친구들에게 손 깨끗이 씻고 오라고 해서 시켜보면 좋겠다. 아가들은 이렇게 미끈덩 거리고 질척한 것을 손으로 만지면서 쾌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평소에는 엄마에게 혼나니까 안 되고,

차라리 날 잡아 이렇게 대놓고 두부 담당을 시키는 것도 신나는 일일 듯.


나는 두부.


두부 으깨기.




3. 만두소 물빼기 과정.

워낙에 짤순이까지 동원되어 마지막 물기까지 쫙쫙 짜내 주는 것이 정석이라고 하는데,

나의 만두 선생님께서는 그냥 두부에 물이 좀 빠질 정도로만 물을 빼도 된다고 하셨다.

만두소가 물기를 머금으니 나중에 찌고 나서 촉촉해지겠지?

아주 무리해서 기를 쓰고 물기를 짜지는 않았지만, 이 단계에 들어서면 진심 후회감이 밀려온다.

'아, 그냥 사먹을 걸.'


이쯤 되니 옆에서 한참을 지켜보던 엄마 물으신다.

돼지고기는 삶아서 넣는다니?

으음. 이쯤 되니 엄마가 심지어 귀여워지기까지 하는 것이다.


- 엄마 진짜 만두 한 번도 안 만들어 봤어?

- 응. 내가 만두를 별로 안 좋아해. 그래서 안 만들었지.


사실, 보니까 만두를 우리집에서 나만 좋아하는 듯 하다.




물기를 쪽 빼고 난 예쁜 만두소 재료 위에 예쁜 분홍색의 돼지고기를 얹어 섞는다.

돼지고기의 피는 빼도 좋고, 안 빼도 좋지만 하이얀 만두소의 색에 돼지고기의 빨간물이 들까 싶어 이렇게 맨 마지막에 섞는다는 사실.


거침없는 손놀림. 음식은 손맛. 장갑 안 낌. 껴도 벗겨짐. ㅋㅋㅋ


참기름 넣어주고. 들기름이 좋은 분들은 들기름을 넣어도 좋다.


만두소의 완성. 만세.


이렇게 만두소까지 만들고 나니 졸음이 쏟아진다.

아무래도 만두나 송편 등 대형 음식을 장만할 때에는 여러명이 달려들어서 이런 저런 이야기꽃을 피워가면 해야 하는데, 너무 나만 혼자 원맨쇼를 했다.
한숨 자고 일어났다.



4. 만두피 누르기

이제는 만두 만들기 과정에서 가장 아름다운 과정, 만두피를 누를 차례다.

워낙 만두를 좋아하고, 또 입맛까지 까다로운 나는 일선 만두집의 실력은 '만두피'로 가늠한다.

얼마나 얇고 쫀득하게 만드는지, 혹은 살짝 두텁다 하더라도 밀가루가 가지는 부담스러운 식감이 느껴지지 않고 만두소와 어우러지면 최고로 친다.

그런데, 나는 과연 만두에 있어서는 '아가리 평론가'였던 것이다.





보기만 해도 굉장히 건조해 보이는 반죽.

그나마 식용유와 소금 등이 받쳐주었다.


반죽을 가래떡처럼 내어 알맞은 크기로 똑똑똑똑 잘라내어 저렇게 밀대로 밀어서 동그랗게 만든다.

워낙 숙성이 오래, (과하게) 잘 되어놓은 터라 아무리 얇게 밀어도 자꾸 움츠러들어서 도톰해진다.
그리고, 보통은 종이처럼 넣에 피를 밀어서 주전자 뚜껑 같은 것으로 눌러서도 만든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그렇게 만드는 것이 고르고 예쁘게 나올 것은 같다.


만두 완성!


지금 사진 찍은 것이 그나마 제일 예쁘게 빚어진 만두이다.

밀가루 반죽의 수분량 부족이 이렇게 만두의 미모에 큰 타격을 주는지 몰랐다.


나란히 줄 서있는 나의 만두들.


애써 잘 생기게 빚는다고는 했지만, 나의 첫 만두는 이렇게 어글리하게 만들어지고야 말았다.

그러나, 만고의 진리.


찌면 다 똑같아져요.

만두를 통해서 내가 배우는 철학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철학이라고 거창하게까지 말하기도 뭣하지만, 삶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살아있는 비유들이 만두를 빚으며 하나 둘 씩 내게 온다.




만두를 만들다 보니 빚는 과정 자체가 수련으로 느껴진다.
혹은 구도?


만두피를 만드는 것은 정말 끊임없는 의문, 의심의 과정이다.

이 밀가루들이 뭉쳐질까? 쫀득해질까? 물을 더 넣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만두소를 만들 때쯤 되면 후회스러워진다.


사 먹을 걸.



보자기에 싸서 물을 뺄 때는 너무 고생스러워진다.

특히 누가 함께 만들면 얘기하면서 하느라 덜 지겨울 텐데,

혼자 만드니까 요리가 인내의 터널로 바뀌어버렸다.


만두를 빚을 때가 되니 또 의문이 든다.
이게 잘 붙을까.
만두피를 살 걸.
그러다가 하나 알았다.


만두 전체를 걱정하면 아무것도 안 된다는 것을.


지금 붙이고 있는 여기, 이곳만 집중해서 붙이면 된다.
안 붙으면 다시 꼭꼭 다져누르면 된다.
무조건, 만두 전체를 걱정하면 안 된다.
지금 손가락이 누르고 있는 곳만 신경 쓰면 어느새 만두 완성.


수많은 의문과 후회의 시간을 거쳐 만두를 만들었다.
이제 만두피 반죽에도 조금 감이 잡혀가고, 무엇보다도 밀대로 미는 기술이 훨씬 늘었다.
아마도 다음 명절에도 또 만두를 만들 것 같다.


만두는 그 어떤 음식보다 조리의 과정이 절로 종교적 마인드를 갖게 하는 구도의 음식인 듯하다. 게다가 만두가 지닌 의미 자체도 참 구복적이다.

복을 싸서 먹는 음식.

그런데, 너무 못생겨서 미치겠다. 미안하다.
내 입에 들어가기 전 그 짧은 시간만이라도 예쁘게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아.
다음번에는 조금 더 예쁘게 빚을 수 있을 듯.
만두 미모는 바로 만두피가 얼마나 물기를 머금고 있느냐에 달렸다.




이렇게 실컷 다 빚고 나니 밤 11시가 다 되었다.

워낙 만두피가 짱짱하고 건조해서 따로 밀가루를 과하게 뿌리지 않아도 좋을 듯 하다.

게다가 평양식 만두는 냉동고에 얼려서 녹여 먹는 것이 아닌, 자연풍에 말려서 두고두고 삶아 먹는 것이라고 한다니.

나도 이대로 쟁반에 놓고 만두를 밤새 말려두었다.



디재스터.... 씨봉 ㅠㅠ


맙소사!!!!



다음 날 아침 일어나보니, 내 순진한 예상과는 달리 만두와 만두가 겹쳐지는 부분은 온통 물기가 새어나 퉁퉁 불어 딱 달라붙어버렸다.

혹시 쉬었나? 싶어 냄새를 맡아보니 배추, 숙주의 향긋한 향은 그대로인데,

만두피가 완전 다 뜯어져 버렸다.

못생겼는데, 아프기까지 하겠다.

불쌍하다.


여하튼 처음부터 끝까지 이놈의 만두피는 말썽이다!


만두 하나하나 손으로 조심스레 뜯어내어 찜기에 넣으면서 든 생각.

왜 그렇게 만두집 사장님들이 아주 과할 정도로 만두하고 만두 사이에 밀가루를 펑펑 뿌려대는지 이제서야 알겠는 것이다.

손이 하얗게 될 정도로 잔뜩 묻히는 이유는 만두와 만두 사이의 독립성 때문이다.

독립적으로 한 알, 한 알 옹골차게 쪄지든, 삶아지든 해서 맛을 내야 하니까 말이다.


사람하고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겠다 싶다.

어제 하루 종일 만두를 빚고, 또 오늘 아침까지 쪄내느라 만두에만 매달려 있었더니 자꾸 만두 구도자를 자처하게 된다.

#만두종교학 이라도 되는 것처럼...


다른 사람과의 사이에도 밀가루를 잔뜩 뿌리면 좋겠다.

그러면 존재가 각자 더욱 빛날 것이다.


서로가 서로한테 들러붙어서 이렇게 뜯어지고, 속 다 꺼내어져 상처를 받기 전에

미리미리 밀가루를 뿌리고 적절한 관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적당한 때에 한데 모여서 만두국이 되든, 한 찜기에 맛있게 쪄져서 대접되든...


어떻게든 각자 한 알, 한 알 독립하라.

만두도! 사람도!


그나저나 저 사진은 내가 먹으려고 아주 못생긴 것들만 골라놓은 것이다.

조금 더 예쁜 만두는 애들 주려고 따로 포장해 놓았으니 걱정 마시길.


올해 설날, 만두 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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