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대 중반, 남들은 아직 학교 다니고, 혹은 졸업 늦추고는 배낭여행이다 어학연수다 다니면서 부모 돈으로 그리 수혜를 받던 호시절이던 국민소득 만딸라 시절에 시집을 갔다.
살림이라곤 결혼 전 한 일 년 정도 학교 앞에서 자취를 하면서 혼자 깔짝깔짝 해 먹던 압력솥 밥, 오뎅국, 감자찜 정도?
지금 생각해보니 당시엔 차도 없었는데, 어떻게 김치를 집에서 가져와서 먹었었다.
그런 누추한 음식솜씨로 결혼을 하고, 우리 나이대의 남녀 성별 책임 분야가 아주 또렷하였으니, 나는 본격적인 '집사람'으로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었다.
당시 탤런트 손창민 씨의 부인 이지영 씨가 낸 요리책이 장안의 화제, 베스트셀러가 된 터라 그 책에 온갖 고추장, 찌개 국물이 다 튀어 말라서 구깃구깃해지도록 음식 만들기에 매진했다.
결혼을 하고 신혼집에서 생활을 하니 아니 이것, 생각보다 무척 재미난 것이다.
아무리 고함을 지르고 싸워도 전화 연락이 끊겨 가슴앓이를 할 염려도 없고, 제 아무리 열불을 낸들 일단 집으로는 기어들어온다는 것이 오오~ 결혼생활 최대의 매력점이었다.
(이런 어정쩡한 생각을 하다니, 아무래도 당시에는 내가 무척 남편을 좋아했던 모양이다... 쩝...)
게다가 무엇이든 잘 먹는 그에게 맛있는 것을 직접 만들어 먹여보면서 맛에 대한 가늠을 할 수 있던 터라 그 또한 게임처럼 재미났다.
당시에 유행했던 진짜 진짜 2차원, 초기단계의 성장? 보육? 게임 '다마고치' 같은 느낌이었다.
퇴근 시간에 맞추어서 계절에 맞는 밥과 국, 그리고 반찬들을 마련한다.
때로 생일이나 국군의 날(당시 남편이 직업 군인이었던지라 이 날을 꼭 챙겼다) 같은 스페셜 데이가 오면 또 나는 요리책을 뒤적뒤적하면서 특별식을 마련한다.
동지?에도 경상도식으로 찹쌀 집어넣고 팥 끓이다가 다 태우는 바람에 탄내 안 나는 부분만 살짝 걷어내니 겨우 딱 두 그릇 나와서 그것 홀짝홀짝 먹은 적도 있다.
이러고 난 뒤 남편의 늘어난 뱃살을 체크한다.
우리의 다마고치 게임에서 병아리가 언제 닭 되나 보듯이.
음. 머리만 안 까지면 된다. 흐뭇하다.
새댁이 아무리 이리 애를 써본들.
공부에도 요령이 붙어야 성적이 올라가고, 전체 얼개를 봐야 깊이 파고 들어갈 수 있듯이 요리도 이렇게 하나하나 외워서 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맨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나는 이십대 중반 어린 나이의 새댁이었기 때문에 우리집은 아직 결혼을 안한 친구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허구허날 남편 친구, 내 친구들이 모여서 술을 마시고 놀았다.
물론 끓는 혈기에 밤새 술을 퍼대다가 우리집에서 자고 가는 날도 허다했다.
아... 나 이 영화 너무 좋아하는데.. 낮술. 겁나 원초적으로 술을 마시는데, 이게 취하나 싶어도 취한다. 그래.
그런데, 문제는 해장.
지금처럼 냉장고 파내서 뚝딱 뭐 한 그릇 만들 수 있는 연륜을 갖춘 것도 아닌 새파란 언니가 이 대여섯 명씩 되는 친구들의 해장을 책임지기란 쉽지 않았다.
라면을 매일 끓여대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허구헌날 와서 시뻘건 토끼눈을 한 청춘남녀의 배를 채울 정도의 식재료란 실로 어마어마했다.
게다가 내가 군대 취사병 출신도 아니고 이런 어마어마한(?) 분량의 음식의 간이나 국물을 맞추는 것조차 어려웠다.
그날은 남편의 절친들도 휴무였던지라 그 어느때보다도 여유롭게 아침을 밍기적대며 맞이했다.
아, 오늘은 뭐 먹나.
남편의 친구들도 일어나서 고양이 세수들을 하고, 양치나 좀 하고 앉아 있었을까.
남자 셋, 여자 셋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단 상을 펴고 앉았다.
그중 가장 꼴초에다가 살림이라곤 하나도 할 줄 모를 것 같은 내 친구가 묻는다.
- 집에 만두 있어?
예나 지금이나 만두를 무척 좋아했던 나는 우리집 냉동고에는 늘 만두를 쟁여놓는다.
당시 만두라고 지금처럼 시판만두가 다양하고 퀄리티마저 고급인 것도 아니었다.
그냥 팡팡팡 찍어낸 공장만두, 도투락 만두면 족했다. 그것이라도 맛있었던 시절.
- 꺼내 봐.
그러더니 친구는 우리집 부엌에서 주섬주섬 깽깡깽깡 냄비를 꺼내고, 국자를 꺼낸다.
우리집에는 멸치다시를 낼 만한 것도 없었다.
냉장고에는 파나 조금 있었을까?
고명을 얹을 것도 전혀 없었고, 하다못해 버섯 쪼가리도 없었다.
친구는 거침없었다.
그냥 냄비에 맹물만 부어서 끓이기 시작했다.
뭔가 달그락달그락거린다.
그러더니 정말 순식간에 뚝딱하고 만두국을 근사하게 만들어냈다!
정말 한 10분도 안 되어서 달근한 만두국 냄새가 났다.
- 자, 갑니다!!! 밑에 받치는 것 깔어, 깔어.
친구가 양 손에 행주를 잡고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만두국을 들고 나오니 그 자리에 있던 남녀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나도 우리집 냉장고에서 저런 근사한 만두국이 날 것으로 기대도 안 했었기 때문에 이 놀라운 마술에 아주 물개박수를 쳐댔다.
와~~~ 대단하다.
- 나 알잖아. 분식집 딸이잖어.
아, 맞다.
친구의 어머니는 증산동에서 분식집을 하고 계셨다. 분식집 하시면서 딸 셋 다 대학 보내고, 예쁘게 잘 키워내셨었지.
- 그럼, 너가 이렇게 음식도 만들어?
- 어. 가끔. 엄마 하는 것 보고 만들지.
고수는 따로 있었네.
그날 친구들과 머리 맞대고 땀흘리며 먹었던 만두국을 잊을 수가 없다.
국 안에 떡국떡도 없었다.
그냥 만두하고, 파하고 썰어 넣고, 아마 간장 조금에 소금을 넣어서 간을 맞췄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셰프의 킥!
계란 줄알치기.
계란을 풀어서 포크로 탁탁탁 쳐서 알끈까지 최대한 풀리게 섞는다. 그리고는 물이 팔팔 끓을 때쯤 쪼르르르 줄이 생기게 흘려붓는다. 그러면서 슬슬 국물을 휘젓고는 뒤도 돌아보지 말고 불을 딱 끄는 것이다.
그러면 이미 뜨거워진 국물의 열때문에 계란이 알맞게 익는다.
그 만두국을 우리는 후루룩 후루룩 얼마나 맛있게 먹었던지.
당시의 나처럼 요리 못하는 초보들은 요리책 보면서 주구장창 재료만 사대고, 나중에는 그걸 다 쓰지 못해서 냉장고에 식물원을 조성한다.
당근 뿌리가 자란다든지, 양파에서 정말 대파가 무럭무럭 자라 파밭이 생성이 된다든지...
그런시기를 거치고 나서 이렇게 부엌에 서서 일하는 것이 인이 박힐 때 쯤이면 최소한의 재료로, 혹은 다른 있는 재료로 대체하면서 맛있게 만드는 방법을 연구한다.
그것이 소위 우리가 이야기하는 '냉파', 냉장고 파먹기다.
나의 친구 그녀는 이미 냉파를 20년 전에 간파한 것이다!
아.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문제가 생겼다.
남편에게 내가 그렇게 이것저것 음식을 해서 갖다 주어도 이리 감동한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다른 남자녀석들도 지금 이 시크한 현모양처의 모습에 지금 다들 눈에 하트 달고 있는 꼴이라니!
만두국 하나로 이렇게 뭇사내들의 마음을 이리도 휘몰이해간단 말인가.
아아~ 상당히 마음이 불편했다.
이때의 내 마음은?
질투.
만두국 배 팡팡 두들겨가며 잘 먹고나니 참으로 뻑적지근한 질투심이 생기더란 말이다.
저렇게 혜성같이 나와서 멋들어지게 만두국을 만들어내다니.
나는 못하는데......
남편은 뭘 또 저걸 좋다고 입 헤 벌리고... 아유 참!
그동안 그렇게 애써 특식으로 길들여놨구만 이 만두국 한 그릇에 홀딱 넘어가다니.
결국은 이날 남편의 친구 중 1인과 만두국을 멋지게 만들어냈던 내 친구는 결혼했다.
지금도 아주 잘 살고 있다.
이날 친구가 나에게 알려주고 간 팁이 있다.
바로 요리에도 카테고리가 있다는 것.
이것만 알면 조리법 다 안 외워도 대충 할 수 있다는 것이다.
1.
맑은 국물.
이런 만두국, 떡국, 심지어 매생이국 등은 멸치다시 베이스의 국들이다.
국물을 내고 건더기를 순차적으로 집어 넣으면 되는 것이다.
2.
찌개.
국 말고, 찌개는 뭔가 볶고 난 다음에 다시국물을 붓든 하면 된다.
특히 김치찌개.
예외적으로 된장이나 청국장 찌개는 장 자체가 무척 걸죽하므로 멸치나 다시마로 국물을 낸 후 그 안에 모든 것 다 투하하고 보글보글.
3.
볶음류.
기름을 붓고 약한불부터 시작하여 볶고, 요즘 백종원이 가르쳐 주듯 파기름 내던가 우리 때는 이향방 선생이 알려주셨듯 약한 불에 마늘을 볶아서 마늘향 내어 쇽쇽 볶아주면 된다.
4.
무침류.
뜨거운 물에 한 번 데쳐서 소금에 조물조물 하는 시금치, 취나물 같은 것이 있고,
봄동이나 겉절이 같은 것들은 고추장, 간장, 마늘, 참기름 등등 넣고 '샐러드'다 생각하고 무친다.
5.
다 됐고.
일단 모든 것은 팬이든, 냄비든 간에 겁내지 말고 모든 재료를 넣고 익히라!
그럼 어떤 이름이든 간에 음식이 만들어진다.
이 날 이후 이때까지 만두국, 떡국 하면 같은 국물 베이스이기 때문에 여러 각도로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대접은 했지만 가장 만족스러웠을 때는 뭐니뭐니해도 '뭐 없는데 만두국'이었다.
소고기 갈은 것, 버섯, 호박, 등등 없어도 된다.
그냥 뭐 없는데, 그냥 그 날 친구가 만들어 줬던 그 마법 같은 만두국, 질투어린 만두국.
아직도 생각이 난다.
그래서 만들어봤다.
비비고 만두 집어 넣고, 떡 좋아하는 딸 위해 제목은 떡국이지만 뒤로 살짝 나를 위한 만두국.
오늘은 그때 친구의 거침없는 맹물 대신 멸치와 다시마, 그리고 헛개나무 국물을 내었다.
멸치 + 다시마 + 헛개= 우리집 국물
참 웃기는 것이 살림을 20년 넘게 했는데도 이런 국물에 재료 때려넣는 것이 그렇게 어색하다.
혹시 내가 잘못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그래도 단 한 번도 입에 못 들어갈 음식 만든 적은 없었던 같고, 그냥 내 입맛에 그리고 우리 가족들 입맛에 맞는 음식 대충 만들어 먹이며 사는 사람이 되었다.
대충 끓였으나 맛있는 만두국?
젊은 날, 내 요리 인생에 큰 획을 그어준 만두국.
오늘 또 만들었다, 그래.
오늘 갑자기 조회수가 폭발하네요!
이참에 알려드릴게요. 이 글은 <아무 걱정 없이, 오늘도 만두> 라는 제 에세이집의 서문으로 엮여졌습니다.
만두를 좋아하시고, 음식 에세이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이책 한 번 읽어보세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