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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 처음 만들어봤습니다.

만두 엄마의 어글리 딜리셔스.

by 황섬

2019년 마지막 날.

난생 처음으로 만두를 만들어 보았다.


평소 음식문화 쪽으로 관심이 많았던지라 아예 그 쪽으로 찾아다니고,

글로 남겨 보자 결심하고 잡은 첫 주제가 만두였다.

육즙 뚝뚝 중화만두 말고, 딱 우리나라만의 골목 만두,

엄마가 빚어주는 우리집만의 만두.

그에 얽힌 스토리를 잡아야겠다 생각했다.

일단 책을 검색해보았다.

없다.

이상하다.

회사 그'만두'겠습니다. 이런 인생 그'만두'렵니다. 이런 책들만 즐비하다.


무엇보다도 2014년도에 현재까지 막내로 추정되는(?) 아들을 한 명 낳았는데, 눈코입이 모두 조그맣고 얼굴 또한 무지하게 동그래서 딱 김 모락모락 나는 왕만두 같이 생긴 것이다.

만두엄마로 7년째 살고 있다.


아이가 언어수업을 받고 있을 때 밖에서 대기하다가 우연찮게 광고가 뜬 것을 보았다.

'만두 만들기 클래스'

만두 이야기를 쓰려면 적어도 만들 줄은 알고 덤벼야 하지 않을까?

덜컥 신청! 1일 클래스 가격도 할인받아 9900원이었다.

오 좋아!


만두7.jpg 앞으로는 어플 쓸게요. ㅠ


이 날은 내가 로또 맞은 날이다.

첫번 째, 북한음식에 조예가 깊은 박소진 셰프님께 만두를 전수받게 된 것.

두번 째, 이날 접수한 수강생들이 모두 오전반으로 몰리는 바람에 오후반엔

셰프님과 나 단 둘이 만두를 만들었다는 사실.

(대신 손이 좀 바쁘긴 했어도, 만두 빚기 연습이 충분히 되었다)


셰프님의 할아버지는 이북분이셨는데, 만두를 이렇게 하얗고 깨끗하게 만들어주셨다고 한다.


만두3.jpg 북한에서는 만두를 냉동고에 집어넣지 않고 이렇게 말려서 먹는단다. 옛날에는 냉장고가 없어서 그랬을까.



본디 꿩고기가 만두에 들어가는데,

추운 북한지방에서는 오히려 네 발 달린 돼지 보다 꿩이 훨씬 많았다고.

지금도 북한에 그렇게 꿩이 많은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명절에는 꿩 볶아 넣은 떡국을 나누고, 꿩고기 통조림(!)까지 시판되는 것을 보면 아직까지 꿩고기를 많이 먹긴 하는 것 같다.


북한식 만두의 특징은 찌지 않고, 물로 삶아 먹는 것.

나는 평소 냉동만두도 끓는 물로 다 때려넣어 삶아버리는 바람에 조금 만두들에게 미안했었는데,

아주 큰 안도감이 들었다.

그렇지 먹는 방법이야 각자 편한 방식대로 찾아가면 되는 것이지.

그리고, 또 정통의 방법이 다 어디 있겠나.

만두야 말로 정말 가가호호 만드는 법도 다 다르고, 손맛도 다르고, 그때그때 냉장고 사정따라 만두소에 집어 넣을 재료도 달라지는 것을.

그래서 나같은 들쭉날쭉한 인간에게는 오로지 만두가 최고로 매력적인 음식으로 여겨진다.

또 하나.

만두는 행복을 싸먹는 음식. 먹으면 행복해지기도 하지만, 복을 부르는 음식이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만들어볼 차례다.

평양식 뒷짐 만두.

만두의 모양이 손을 뒷짐 지고 있는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만두1.jpg 평양만두 레서피



만두피는 위의 레서피대로 밀가루 반죽을 잘 치대어 만든 후,

냉장고에서 숙성시켜 준다.

숙성이 잘 된 반죽으로 피를 만들면, 맨 처음 밀대로 늘여 만들어 놓고,

나중에 만두소 다 준비해서 만두를 빚어으려고 들어보면 원의 크기가 작아져 있다.

이는 반죽의 쫄깃하게 움츠러드는 성질 때문인데,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시중에 파는 만두 피보다 훨씬 쫄깃하고, 실제로 만두 빚을 때에도 끝에 계란 흰자나 물을 묻히지 않아도 쪽쪽 잘 들러붙는다.


만두4.jpg
만두5.jpg
만두6.jpg


만두피를 여러 개 만들다 보니 요령이 생겼다.

그리고, 나중에 빚어보니 감이 잡힌다.

만두피의 포인트는 가운데는 도톰하게, 끝에는 얇상하게.

그래야 묵직한 만두소 때문에 찌는 동안 만두가 터지지 않는다.

중국 만두피 만들듯이 동서남북으로 만두피 돌려서 밖으로 밀대를 밀어 만들면 편하다.

나는 초보 만두러라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만두피를 만든 다음

아주 열심히 양쪽 다 밀가루를 뿌려댔다만...

우리모두 그러지 말자. ㅠ

정말 만두 빚을 때 피가 서로 안 붙어서 혼났다.



이제는 만두소 준비.

재료는 배추, 숙주, 두부, 돼지고기, 목이버섯.

아주 담백한 맛과 색깔의 채소에 두부, 돼지고기까지 단백질 완성!

배추를 끓는 물에 데쳐 본다.

숨이 좀 죽을 때까지 데쳐서 건져서 잘게 썬다.

워낙 식재료 중 배추를 좋아해서 '배차전' 잘하는 집 있으면 지구 끝까지 쫓아가는데, 만두 속에 이렇게 싱싱한 배추들이 들어가다니!

만두9.jpg



모두 알다시피 숙주는 끓는 물에 정말 잠깐 집어 넣었다가 꺼낸다는 각오로 담가준다.

우리나라는 이상하게 콩나물은 그렇게 많이들 데쳐 먹고 끓여 먹는데, 숙주나물은 많이 보기 어렵다.

사실 나는 숙주의 식감을 훨씬 좋아하는데 말이다.

콩나물과는 다른 오독오독거리는 귀여운 식감. ^^


우리가 만두를 집에서 만들기 힘들어하고, 그냥 때 되면 무슨 김장 담그듯이 대량으로 만들어서 냉동고에 쟁여 넣는데, 그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만두소 물기 짜기' 때문이 아닐까.

많이 만드는 집은 세상에 탈수기까지 동원해서 짜낸다고 한다.


그러나, 나의 만두 사부님은 삶아서 잘게 썰은 야채를 보에 담아서 '적당히' 물기 빠지게만 짜라신다

만두에서 가장 중요한 두부도 마찬가지!

무거운 것으로 올려 놓는다 뭐한다 하지 말고 그냥 키친타올로 살짝 눌러 물기 빼는 정도로만.

두부즙과 채수에서 얻는 즙과 풍부한 향을 우리는 버릴 수가 없다.




만두8.jpg 만두 으깨기




이렇게 야채와 만두까지 물기를 빼서 한군데에 섞어 놓는데,

이때 돼지고기는 넣지 않는다.

석이버섯을 제외한 야채와 두부 모두 하얀 색깔인데 먼저 빨간 돼지고기까지 버무려 놓으면 아무리 피를 뺐다하더라도 빨갛게 물이 들어서 나중에 만두를 찌면 만두소가 특유의 담백한 색깔이 사라지고

모두 거무죽죽하게 된단다.

우리는 음식을 대하는 데에 미각도 미각이지만 시각적인 면도 놓치지 않는 섬세함을 배운다.




이렇게 버무리고 난 뒤,

만두11.jpg 아, 식재료가 예쁘다는 생각을 처음 해봤다.





돼지고기 투하! 뙇!

만두12.jpg 돼지고기가 주인공일까





그리고, 보이지는 않지만 계란 노른자도 함께.

이렇게 버무린 소에는 마지막 들기름을 부어준다.

혹시나 들기름의 거친 향을 싫어하시는 분들은 콩기름, 참기름을 넣어도 좋다.

무엇이든 규칙은 없다.

특히 만두 조리의 일원칙은 '넣고 싶은 것을 넣는다'가 아닐까 싶다.

기타 등등의 조리팁은 거들 뿐.






만두소까지 다 준비를 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만두를 빚어본다.

만두피를 손바닥에 얹어서 숟가락으로 충분하게 만두소를 가운데에 얹는다.

아까 이야기한 만두피의 가운데가 도톰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속이 꽉차게 들어가 있지 않으면 만두피의 밀가루맛이 재료를 덮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맛있는 만두를 이야기할 때 얇은 피, 얇은 피를 부르짖는게 바로 그 이유다.

우리는 밀가루를 먹고 싶은 것이 아니고 바로 이 잘 만들어진 소를 먹고 싶은 것이니 말이다.

훌륭한 밀가루 맛이라면 면으로도 충분하다!




만두13.jpg 내 손에 올려진 나의 첫 만두




여기에서 문제!
만두속, 만두소 둘 중에 어떤 말이 맞을까?

만두속 땡!

만두소 딩동댕!

소라는 말은 만두 뿐 아니라 송편, 그리고 김치 담글때 안에 들어가는 속재료를 뜻한다고 한다.

그러나, 만두의 미덕.

되는대로 넣어 먹고, 쉬운대로 만들어 먹고, 편하게 내맘대로 때려 넣으리라.

만두속이라고 부르고 싶으면, 나는 그냥 속으로 부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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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막상 빚고 보니

그냥 만두한테 미안하다.

엄마가 미안하다아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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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14.jpg 만두 지못미


물론 내 손썰미도 모자란 탓이 있지만, 위에서 한 번 이야기 했듯 내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만두피 앞뒤로 밀가루칠을 하면 안되는데, 그렇게 다 처발처발해버리는 바보짓을 좀 했다.

그래서 계속 끝이 안 붙어서 자꾸 만두는 나를 바라보고 입을 벌리고...
당황한 나머지 만두소는 자꾸 삐져나오고 말이다.

어쨌든 만두나 송편 예쁘게 빚지 못하는 사람들은

딸 하나는 이쁘다고 하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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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만두 완성!!

만두 엄마가 난생 처음으로 빚어본 평양식 만두다.

내가 빚으면서 만두가 너무 못생겨서 계속 아우 어떡해~ 아우 어떡해~ 탄식을 했더니

셰프님이 그러신다.

"괜찮아요. 이거 찌면 다 똑같아져요"

과연...
내가 미안할 정도로 못생긴 만두는 한김 찌니 저리 이쁜 모습을 하고 내 앞에 나타났다.

사람도 그렇다.

새해에는 그 어떤 모습으로 못생기게 살든, 예쁘게 살든 간에,

결국 이렇게 한김 푹 찌면 다들 넉넉하고 고운 빛깔로 변신하시기를.





만두18.jpg




한입 가득 베어무니 육즙이고 뭐고 간에 가장 놀라운 건 아삭아삭하는 식감이다.

배추, 숙주가 다 살아 있다!

그리고 들기름 향까지...
또 하나 처음 알게 된 놀라운 사실.

우리는 만두를 먹을 때 보통 간장 + 식초 + 고춧가루 이런 쓰리콤보의 양념장을 만든다.

물론 이것도 훌륭하다.


그런데, 이 조합을 아시는지?

흑초 + 다진생마늘 , 어메이징!


북한 지방에서는 만두 먹을 때 이렇게 만들어서 먹었다고 한다.

다만 전쟁통에 남한으로 피난 온 사람들이 이렇게 양념을 만들어서 찍어 먹는 것을 보고

건너서 힐끔힐끔 본 사람들이 저 까만 것이 흑초일 것은 전혀 상상을 못하고

간장을 붓고, 식초 섞어서 먹게 되었다는 뒷이야기도 셰프님이 전해주셨다.


이날은 흑초가 없어서 일반 식초에 다진마늘을 얹어 먹었는데 진짜 훌륭했다.

만두 위에 마늘 얹어서 한입 가득 베어물면 그 맛이 최고다.

안 그래도 슴슴한(주로 평양음식을 이야기할 때 쓰는 표현이다) 맛의 만두에

이 강렬한 초와 마늘의 알싸한 맛이 터져서

단무지, 김치 하나 없어도 한 접시 다 비우게 된다.


만약 이 만두를 먹고 나서, 갈릭 냄새 안 좋아하는 외국인과 하는

수십억 규모의 프로젝트 수주를 위한 파이널 미팅을 간다 해도 나는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만두 엄마의 만두 여행은 막을 내리고.

앞으로도 전국의 수많은 골목 만두를 만나고, 기록할 예정이다.
고기만두 좋아하는 우리 만두와 김치만두를 사랑하는 중2 곰돌양에게도 만두 셔틀 포에버를 다짐하며.

그리고, 배운 김에 집에서도 한 번 만들어봐야겠다.

한 번 빚어보니 자신감이 퐁퐁 샘솟는다.


어떤분은 매년 1월 1일이 되면 만두를 잔뜩 빚으신다고 한다.

어느 해 한 번 그렇게 했더니 가족들이 모두 12월 말만 되면

이번엔 무슨 만두 빚을 거냐고 눈들을 반짝거린다고 하다.

'이때가 되면 엄마가 나한테 뭘 만들어줄거야.'라는 기대감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삶의 큰 추억이 된다.


제 아무리 뿔뿔이 나가 힘들어도 1월 1일만 되면 부메랑처럼 집으로 돌아와

리셋할 수 있게 만드는 강력한 힘.

아, 사는 맛 난다.
최고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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