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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기역 '봉이만두'

중화만두 맛도 나는, 근사한 한국만두

by 황섬

만두집 리뷰를 쓰고 돌아다니다 보니 여기저기서 어떤 만두집 맛있다며 소개들을 많이 해주신다.

처음부터 밝혔지만, 만두집 선정 기준은 지극이 내 사견과 편견 안에서 정해지는데, 그 첫 번째가 바로 '중화 만두'가 아닐 것.


인천이나 평택 같은 데에 가면 어려서 열 살, 열다섯 살 이때부터 화교들에게 음식을 배워서 중국집 오래하는 분들 많단다.

워낙 중국만두의 군만두는 구웠다기 보다는 튀김만두다.

넉넉한 양의 기름에 만두를 퐁당 빠뜨려 튀겨내는 만두인데, 고기와 기름의 감칠맛 그리고 무엇보다도 특유의 향신료, 생강맛인지 뭔지 모를 그 향신료의 풍미와 잘 어울리는지라 한국인들도 무척 좋아한다.

그런데, 왜 나는 그 주인양반들의 노고를 알면서도 중화만두를 제외시켰는가!

아무래도 그 향신료를 촌스러운 내가 소화를 시키지 못하는 것 같다.

몇년 전 더운 여름날, 연남동의 한 중국집에서 튀김만두니, 꿔바로우니 이것저것 많이 시켜먹은 적이 있었는데, 그 식당의 청결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아 심리적으로 위축된 데다가 그 향신료 냄새에 크게 놀라 체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렇다.

결론은 간단하다. 내가 안 좋아하는 것이라서...



'날씨가 상냥해졌다'는 표현은 좀 전에 읽었다.

3월이니 봄이다. 날씨도 나에게 상냥하게 구는 틈을 타서 그냥 사무실을 박차고 나왔다.

그렇게 간 곳.

회기동 봉이만두.

사무실에서 차로 한 15분, 20분이면 당도하는 곳이다.



봉이만두는 워낙 부추만두로 유명한 곳이다.

나도 몇년 전 회기동 경발원에서 진하게 한잔한 후, 집에 들어갈 때 여기 맛있다고 그래서 일부러 들러 포장을 해가지고 간 기억이 있다.

그때 날카로운 첫 만두의 추억.

흐엇! 중국만두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집에 가지고 들어가니 만두의 뜨거운 김이 다 빠져버린데다가, 한입 베어 물으니 육즙이 뚝 떨어졌었는데 과음한 뒤라 그런지, 혹은 칼칼한 맛을 좋아해서 그런지 썩 맛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다시 한 번 도전해본다. 봉이만두.

생활의 달인에도 나왔다고 하고, 그렇게 몇 년을 유명세를 치렀는데도 이상하게 가게를 확장하지 않았다


봉이만두 내부.




테이블은 내가 앉은 곳까지 합쳐서 4개 정도. 저 주방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만두도 찌고, 굽기도 하고, 라면도 끓이면서 드문드문 들어오는 손님에게 음식을 내주신다.

아무래도 코로나 바이러스 영향인지 점심 무렵인데도 가게가 텅 비었다.




노란단무지에 간장. 식초. 고춧가루.




나는 워낙에 단무지를 좋아한다. 이렇게 샛노란 공장 단무지도 마다않고 좋아하고, 술안주로도 놓고 먹는다.

물론 색소를 쓰지 않은 하얀 단무지도 건강에 좋다고 하니,주면 또 잘 먹는다.

간장에 식초와 고춧가루를 타서 미리 준비해두었다.


예전 평양식 만두 클래스 가서 들은 이야기인데, 몇십 년 전만 해도 만두의 원조인 북한 사람들은 만두를 먹을 때 이렇게 간장을 찍어먹지 않았다고 한다.

바로 검은색 홍초에다가 마늘 간것을 섞어서 먹었다.

그렇게 먹던 북한 사람들이 남쪽, 부산이나 대구 쪽으로 피난을 와서 만두를 빚어 먹으니 만두 문화에 밀접하지 않았던 이들이 어깨너머로 슬쩍 보고, '아, 저거 간장 아이가?' 하면서 간장에다가 만두를 찍어먹기 시작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런데, 실제로 초에다가 마늘 간 것 섞은 것에 슴슴한 평양만두를 찍어먹으면 진짜 기가 막히다.



아, 아름다워!


만두 8알이 한 세트다.





나는 김치와 고기만두를 시켜보았다. 워낙에 봉이만두 군만두도 유명한데, 이날은 넣어둔다.

역시 만두하면 투명한 만두피.

이렇게 내 테이블 위로 만두가 등판하자, 나는 정신을 잃고, 김치만두 하나를 덥썩 잡아 물었다.

그때 드는 정신. 아. 사진 안 찍었네.

(그래서 저 맨위에 있는 사진 보면 만두 한 개가 뭔가 '모질라' 보인다.ㅋㅋ)







봉이만두의 시그니쳐. 부추만두!

내가 맨 처음 느꼈던 앗! 중국만두 같어!의 그 향의 비밀을 알았다.

(이렇게 쓰니 중국만두가 참 맛없는 만두 같이 느껴지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는 점 노파심에 밝혀둔다. 그저 내 취향이 향신료에 맞지 않을 뿐이다. 중화식 만두, 그 맛의 재간은 모두들 나보다 더 잘 아시리라)

바로 표고버섯이 들어간다.

봉이만두 주인장의 부추에 대한 자부심은 그 어느 만두집 못지 않은데, 거기에 향이 강한 표고버섯까지 쑤욱 들어가 있으니 결고 '슴슴하다'는 표현을 쓰기 어려울 정도로, 말 그대로 '향의 향연'이다.



아예 박아놓으셨다. 봉이만두는 부추만두 전문점입니다.




와. 신난다! 하면서 이것 저것 집어 먹고 있을 무렵 어떤 청년(?)이 들어왔다.

내 나이 또래일까? 혹은 조금 더 아래?

생김새가 딱 내가 좋아하는 모습이어서 눈치 안 채게 계속 쳐다보았다.

뒤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반곱슬 머리, 깨끗한 손...

가게가 좁아서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도 무척 좁은데, 어쩌다가 자리를 잡은 것이 나와 마주보게 앉게 되었다.

혼자 밥 먹을 때 남한테 신경쓰는 것이 불편해서 보통 나란히 앉는데, 그냥 슥 들어와서 무심코 앉은 것이 그렇게 된 것이다.

아주머니께 또박또박 라면하나만 끓여주십사 부탁을 하더니, 묻는다.

- 여기에다가 만두를 하나 더 먹으면, 배가 많이 부를까요?

아니, 이 사람아. 당신 뱃고래 사이즈를 아주머니한테 물으면 어떡하나.


- 제가 지금 혼자 만두 먹고 있는데요, 이거 남을 것 같은데 같이 드실래요? 저 코로나... 노노.

- 아, 그럼 합석하실까요? 아주머니도 테이블 두 개 치우시느니...

- 그러시죠. 어차피 마주보고 먹을 거, 우리 같이 먹어요.

- 아주머니! 여기 군만두도 하나 더 주십시오!

- 제가 계산할 게요.

- 제가 하겠습니다. 이것도 인연인데...

- 아... 죄송해서 어쩌죠?


이랬으면 좋았겠다.





김치만두에도 변함없이 부추가 들어갔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김치를 담을 때 버무린 고춧가루가 아주 인상적이라는 것이다. 본격적인 열무김치 담을 때 쓰는 붉은 고추 굵게 간 것이 칼칼하게 들어갔다.

'아 맛있어' 소리가 절로 나온다.

앞에서 남자분은 민망하게 내쪽을 바라보면서 라면을 후루룩 씁씁 잘도 먹는다.

무척 배가 고팠는지, 금방 한 그릇을 비우더니 군만두 쪽으로 젓가락을 옮긴다.







주방 아주머니가 라면도 다 끓이고 멍하니 계시기에 살짝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 아주머니께서 이 만두 다 빚으세요?

- 네. 제가 빚어요.

- 오오. 정말 맛있어요.

- 맛있어요?


그러더니 이렇게 귀여운 군만두 두 알을 키친티슈에 싸서 갖다 주신다.

조리할 때 보니 분명히 후라이팬에 굽는 형태로 만드시던데, 가져다 주신 것을 보니 완전 튀김만두 같다.






역시 군만두, 튀김만두는 기름맛, 촉촉한 맛이 포인트.

뜨거운 만두를 한입 베어물면, 마치 홍어튀김 물었을 때 싸한 홍어맛이 튀김옷 사이에 숨어 있다가 폭발적으로 올라오듯 부추향이 훅 끼진다.

간장에다가도 찍어 먹어본다.






- 잘 먹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목소리 참 좋다.

남자분이 나보다 늦게 들어와 놓고는 휘리릭 먹고 나가버리신다.

혼자 먹는 만두 점심인데, 잠시잠깐이었지만 왠지 저 남자분과 같이 먹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매너 꽝이네. 어떻게 나를 혼자 놔두고 먼저 나가나.

스무 살 무렵 본격적으로 연애를 시작한 이후로, 술집이나 밥집에서 싸움이 되었든, 술이 되었든 일단 남자가 나를 혼자 두고 나가면 다시는 보지 않았다.

물론 예외 사항이 몇 번 있었으되, 아~ 그런 남자들과 결혼을 해서 득을 볼 것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랑 같은 시간대에 혼자 점심 드시러 봉이만두 오셔가지고 지금 이게 무슨 봉변을 당하신 건지 모르겠다. 저 남자분... ㅋㅋㅋㅋㅋ




계산을 하면서 아주머니를 좀 더 귀찮게 해드렸다.

주인분이 누구세요? 아주머님께서 이 만두 처음부터 같이 만드신 건가요?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봉이만두 사세가 확장이 되어서 저쪽 별내 쪽에 봉이만두 2호점이 있다고 한다.

사장님은 거기에 계시고, 아주머니는 만두를 빚을 줄 아는 유일한 사람이어서 이곳에 남아 장사 하시는 거란다.

- 이야기 듣고 싶으면 별내에 가봐요. 거 가 사장님 계시니까.

혹시 사모님이시냐고, 발칙한 질문을 해댄 나.

웃으시면서 아니란다.


별내로 언제 봉이만두 사장님을 만나뵈러 가봐야겠다.

사장님 성함이 '봉희'나 '봉석', 이런 식으로 '봉'이라는 글자가 들어가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상냥한 봄날에 '환상 속의 그대'와 함께한 풍부한 향의 한끼 만두식사였다.




회기역 들어가는 길목에, 역쪽을 바라보고 가는 길,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다.
찾기는 아주 쉬운 편이다.
근처에 경발원이라는 아주 유명한 중국집이 있어서 다들 이곳에서 식사를 하고, 봉이만두를 간다고 하는데, 도대체 그 어마어마한 식사량은 어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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