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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어랑 손만두국

너무 투박해서 놀란 만두

by 황섬

다행히 우리집이 서울에서도 강북쪽, 그것도 경기도 남양주, 의정부와 가까운 곳이라 맛있는 만두집이 많다.

만두는 워낙 북쪽에서만 많이들 먹었다고 하고, 남쪽으로 내려오면 올수록 만두의 자취는 온데간데 없고, 떡국이 굳건하게 자리잡는다.


실제로 경상도 쪽에 가면 만두만 파는 집이 그다지 많지 않다.




그래서 일단 서울에서도 북쪽 촌년인 내가 좀 더 풍족한 만두 문화에 노출이 되어 있다고 말하면, 요즘 사람들은 다 웃겠지. 껄껄.



오늘은 북한식 만두를 빚는다는 남양주의 '어랑 손만두국'집에 다녀왔다.

이곳은 등산이나 사이클 하시는 분들 때문인지 아침 9시, 일찍부터 열기 때문에 무척 마음에 들었다.

11시, 12시에 어정쩡하게 오픈하는 만두집엘 아무리 잽싸게 갔다온다 한들 하루, 오후가 다 지나가 버려서... 참...

하루 한 가지, 아주 맛있는 만두 한끼 식사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는 여유로움을 가져보고 싶으나, 쉽지 않다. 삶이란.

일요일인 오늘, 아주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좀 서둘렀다.


우리집에서 차로 한 25분, 천천히 30분이면 도착하는 곳이다. 늘 다산 정약용 공원 쪽으로만 가봤지, 이쪽 본격 남양주 안으로는 처음 들어와본 듯 하다. 낯설다.

그러나, 아주 금방, 큰 길가에서 어랑을 찾을 수 있었다.





가기 전 대략적으로 정보를 찾아보니 생긴 지 25년은 족히 넘은 집 같다.

어랑이란 곳은 함길도 개마고원 꼭대기에 위치한 촌동네 이름이라고 하는데, 아버지가 그곳에서 내려오셔서 그뜻을 기리고자 '어랑'이라는 이름으로 만두집을 한단다.

그래서 그런지, 평양만두를 제대로 하는 집들은 운영한지 꽤 오래되었다. 부모님이 이북에서 건너오시고, 그때부터 시작해서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테크트리를 탄다.




오늘은 뿌우연 미세먼지인지 봄 아지랑이인지를 제외하고는 날씨가 아주 좋았다.

겨울 지나 이렇게 날씨도 좋고, 마음도 한산한데, 코로나 역병이라니 이게 웬말이야.

이렇게 제주도 초가집 같은 느낌의 둥그런 지붕의 건물이다. 십오 년 전에 가까운 호평동에서 이곳 금곡동으로 이사를 왔다고 하니 역사와 전통이 묻어있는 건물은 아닐진데, 이상하게도 연륜이 느껴진다.





들어가는 입구 팻말에 이렇게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신다.

특히 어랑만두의 모양이 복주머니 모양이라는 부분이 마음에 든다.

나는 모든 사물에 약간은 기복 신앙의 형태로 혼을 부여해서 믿는 버릇이 있다. 나 혼자 빌고 마는 것이다.

만두도 좋아하는 이유중에 하나가 이렇게 복을 싸서 먹는 음식 같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만두소가 너무너무 맛있지 않는가!

백 군데 들르면 백 군데 다 맛이 다르다. 이 사실이 당연한 일인데도 여전히 경외스럽다. 어메이징!






개인적으로는 복조리, 빈 항아리와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릇들서부터 배 내밀고 웃고 있는 못난이 인형까지 족히 30년은 넘어 보이는온갖 소도구(?)들 다 주욱 늘어놓고, 살짝 귀신나올지도 모르는 인테리어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여하튼 아늑하고, 따뜻해보인다.

만두집의 위치가 경춘가도이니 만큼 이렇게 주말에 혼자 사이클 타고 오셔서 식사하고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은 듯 하다.

저분도 혼자 식사하면서 부지런히 사진을 찍으신다.

그리고, 헬멧에도 뭔가 카메라 같은 것이 달려 있어서 신기했다.





게다가 요즘은 보기 무척 어려운 연통에 연탄난로!

여려서는 우리집 마루에도 저런 연탄 난로가 있었다. 아빠가 저런 목장갑을 끼고, 연통을 연결하면 와우.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고, 곧 산타할아버지가 오실 거라는 기대감에 찼던 기억이 난다.

어려서 그 마음이 저 연탄들 보니 훅 올라오네.




기본찬이다.

이북식 만두집에서 저런 통배추 물김치 참 많이 볼 수 있는데, 와.. 이집 배추는 그냥 생배추가 아니다.

적당히 짭잘하게 절여져 있어서 먹기 아주 좋다.

이북식 만두의 소에는 배추가 들어가기 때문에 아주 형편없는 집 아니고는 배추맛은 평타 이상이다.

어랑의 배추도 아주아주 마음에 든 시원한 맛이었다.

그리고, 깍두기.

저렇게 뚝뚝 투박하게 잘라놓은 무인데, 너무너무 맛있어서 나 저거 다 먹고왔다.

말하자면 무우 한 4분의 1도막은 내가 다 먹고 온 것이다.





두둥! 만두 나왔습니다.

어랑의 만두국은 이게 다다.

딱 왕만두 다섯 알에 국물.

처음엔 어? 하고 황당하다. 그러다가 뒤적뒤적해보게 된다.

보다시피 꾸미도 없고, 하다못해 파 썰어 넣은 것도 없다.

'우린 여기까지니까 알아서 드셔' 딱 이 자신감인가!







국물을 먼저 떠 먹어보니, 어디서 많이 먹던 맛이다.

만두나 냉면집에 가면 먹을 수 있는 바로 그 육수맛이다.

굉장히 깔끔한, 내가 해장용으로 무척 좋아하는 그 육수인데, 후추맛이 전혀 나지 않는다.

자.신.감.

육수에 자신있는 것이다. 후추로 가릴 잡내가 없다는 뜻.

혹시나 하고 테이블 옆에 고추가루나 후추 양념통이 있나 봤다. 없다.


첫 만두는 한입에 아움! 하고 다 먹었다.

만두소에서 텁텁한 두부맛 너무 많이 나는(살짝 쉰맛 같기도 한.. ;;) 북한식 만두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 두부맛이 많이 안 나면서도 콩비지찌개같이 부드럽다.

그리고, 분명히 어랑 소개 팻말에서는 열 가지가 넘는 재료들을 쓴다고 해서 이번 만두는 내가 꼭 이러지 않으려 했으나 현미경 들여다보듯 봤는데, 열을 못 채우겠다.

숙주, 배추, 두부, 파, 고춧가루, 후추 등등...

아까 배추 김치가 아주 잘 절여졌었기 때문에 어랑만두의 속재료도 굉장히 맛있다.

단지! 만두 끝이 살짝 단단하고 두껍다.

맛있는 밀가루 떡 같은 느낌인데, 복 다 싸서 먹으려면 그 정도 두께는 되어야 하지 않겠나 싶다.



이 사진의 주인공은?



어랑만두집에 오면 모든 큰 음식점이 거의 다 그렇듯 손님을 맞이하는 분들이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또 너무 친절한 것도 부담스러워서 그다지 단골을 잘 안 만드는 이유이기도 한데, 아, 한 2연타 불친절 업소에 들어오니 이것도 아주 정신을 못차리겠다.

그런데, 이 집에서 엄청난 포스를 내뿜는 여인이 계셨으니... 바로 저 머리띠를 한 여인.

보통의 매너가 아니며, 친절하다고는 전혀 할 수 없으나, 이쪽 어랑만두 홀이 착착착 돌아가도록 분위기를 딱 잡고 계셨다.

누굴까.

나는 만두집에 들어오면 늘 상상의 나래만 펴다가 돌아가게 된다.


이렇게, 만두는 하염없이 줄어들고, 마지막 한 개가 남았다.



사실 어랑만두에 오면 어랑 뚝배기와 만두국 이 개의 메뉴가 시그니쳐라 할 수 있다.

도대체 어랑 뚝배기가 뭔지 궁금해서 그것도 시켜보고 싶었지만, 혼자 두 메뉴를 다 먹을 수는 없을 듯 해서 아쉽게 그만 뒀는데, 찾아보니 어랑 만두를 뚝배기에 넣고 팔팔 끓인 만두국과 순두부 그 중간의 음식이라고 한다.



하필이면 메뉴판이 저쪽 끝, 손님들이 많이 계시는 곳에 걸린지라 아주 멀리서 급히 찍었다 ;;;



심지어 이 정도의 만두과 김치 내공이라면 녹두 빈대떡 또한 굉장할 것 같은 기대감이 드는데, 또 '나홀로 식객'인지라 포기.

다음에는 꼭 어랑 뚝배기와 녹두전을 먹으러 다시 올 것이다.

이럴 때 가끔은 누구 한 명이 파트너로 붙어서 사진도 함께 찍고, 음식에 대해 이야기도 나누면서 같이 탐방에 나섰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딸내미를 데리고 여기저기 가보려고 오늘 아침에도 일찍 깨웠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이거였다.

- 난 만두 싫어.

그녀의 취향을 존중한다. 끙.




매장의 저 끝쪽에는 이렇게 '만두방'이 있다.

여기에서 이렇게 끊임없이 어랑의 만두가 빚어져 나온다.

만두소를 진심 보고 싶었지만, 찾을 수 없었다. 아마도 주방에서 만들어내고 계시겠지.

'열 가지 재료'의 비밀이 궁금하다.





게다가 오 마이 갓.

내 매의 눈으로 찾아 낸 육수!

주방 한쪽 편에서 따뜻한 김을 내뿜으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오늘 어랑 만두집의 육수가 너무나 좋았던 터라 더 반갑다.

그냥 이 육수에 만두 다섯 개 퐁당 빠뜨려져 나오는 것이 어랑손만두집의 대표 음식 만두국인 것이다.




오늘 아침 만두국을 먹으며 들었던 고마운 생각은 이렇게 내가 잔고 걱정 안 하고, 맛있는 만두 찾아 먹으러 다니고 있다는 것, 그래도 넉넉해진 상황이 놀라웠다.

나도 먹다가 깜짝 놀랐다.

평생 이리 만두 먹고 다니고, 누군가에게 넉넉하게 밥 사줄 수 있을 정도의 호사 정도만 누렸으면 좋겠다.



남양주시 어랑손만두.
만족스럽게 한 그릇 뚝딱 먹고 왔다.
남양주 시청쪽으로 들어가서 경춘로를 가다보면 아주 커다랗게 어랑손만두라는 간판이 보이니 그쪽으로 들어가면 카페와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음식점이 크고, 그다지 친절하지는 않지만 맛으로 충분히 즐거울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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