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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업하는 건물주 Sep 13. 2024

3. 가성비를 따지면 안 되는 이유

악마의 유혹

    


이 쌀이 더 저렴한데 바꿔 볼까?

이 콩이 더 저렴한데 바꿔 볼까?

이 재료가 더 저렴한데 써볼까?

육수를 낼 때 재료 하나만 빼 볼까?

아침마다 김치 만들기도 힘든데 편하게 중국산 김치 사서 쓸까?

.

.

.

식당 운영을 하다 보면 이렇듯 여러 유혹에 빠진다. 일하는 순간순간 불현듯 찾아오는 모든 유혹을 잘 넘겼어야 했는데 홀라당 넘어가 이것저것 바꾸기도 하고 빼보기도 했다.     


 어느 날, 손님께서 이 근방에 콩값이 저렴한 곳을 아는데 거기 콩을 써보라며 권유해 주셔서 바로 찾아가 보았다. 가격이 저렴했고 국산콩이었고 깨끗하니 좋아 보여서 포대자루에 담긴 콩을 3포대 구입한 후 매장으로 돌아왔다. 콩을 씻으려고 자루를 열어 드리붓다가 깜짝 놀랐다. 콩의 크기만 한 작은 돌멩이들이 얼마나 많이 섞여있던지... 위쪽만 깨끗했고 아래쪽은 엉망인 눈속임의 판매에 당한 것이다. 쪼그리고 앉아서 돌멩이들을 골라내느라 허리는 너무 아팠고 시간도 많이 잡아먹어서 뜯지 않은 나머지 포대들은 다시 들고 가서 환불을 받았다.

 ‘농부는 근면, 성실, 신선제품판매 등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농부한테 속았구나.’

 농부라는 직업에 불신이 생겼고 소비자는 항상 꼼꼼하게 확인하고 따져가며 구입해야 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웠다.     


 매년 한여름의 무더위는 채소를 녹게 만든다. 자연스레 채소는 귀해지고 가격은 고공행진을 한다. 명절을 앞두고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의 나는 이럴 때 가격이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판매하는 곳을 찾기 위해 마트 여러 군데 전화를 하거나, 저렴한 채소가 보이면 대량 구입을 하거나, 도저히 저렴한 곳을 찾을 수 없다면 가격이 오르지 않은 다른 채소로 대체를 하는 등 융통성 있게 장사를 한다. 하지만 과거에는 그런 경험과 지혜가 없어서 비싸면 사용량을 줄이면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청국장찌개에 들어가는 애호박이 비싸니 얇게 썰어서 구색만 갖추고, 멸치 육수를 끓일 때 멸치 양을 줄이고, 순두부찌개 육수를 끓일 때 재료들의 양을 줄이고, 반찬에 들어갈 참기름도 조금만 사용하는 등 혼자서 머리를 굴려가며 채소값이 하루빨리 제자리 찾기를 기도했다.

 ‘그래, 이렇게 할 수밖에 없지. 다른 방법이 없잖아.’

 역시나 손님들의 입맛은 정확했고 예전 맛이 미묘하게 나질 않으니 발길이 서서히 끊어지는 상황이 시작되었다.     


 쌀값이 갑자기 폭등했다. 한식집은 비상이었다. 거기에 추가밥은 서비스로 이미 주고 있었기 때문에 추가밥도 이제는 돈을 받아야 하는지 생각이 많아지면서 갑자기 모든 게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값싼 쌀을 빨리 찾아야 했다. 마침 시중가보다 저렴하게 판매하는 쌀집이 있는데 거기에 가보라며 손님께서 알려주셨다. 감사하다고 인사드리고 거기에 가서 쌀을 5포대 구매했다.

 밥을 했다. 이상했다. 뭔가 윤기가 흐르지 않는다. 이건 뭐지?

 먹어보니 손님상에 나갈만한 쌀의 등급이 아니었다. 너무 절망스러웠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내가 그동안 얼마나 고생하고 노력했는데 결과가 총체적 난국이라 눈물이 났다. 빨리 이 쌀들을 소비해서 기존의 쌀로 다시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손님이 발길을 끊어도, 매출이 떨어져도 어쩔 수 없다. 이 많은 쌀들을 어떡하란 말인가. 빨리 소비해 버리자는 생각뿐이었고 우리 가족들도 열심히 쌀 소비에 동참했다.


 식사하시던 손님이 손짓으로 나를 부른다. 밥이 왜 이러냐고 물으신다.

 “이번에 쌀을 바꿨는데 잘못 바꾼 것 같습니다. 입맛에 너무 안 맞으시죠? 죄송합니다. 빠른 시일 내에 시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라는 사과의 말씀을 드렸는데 다른 테이블에서도 손짓을 한다. 이런 식으로 몇 팀에게나 불려 갔는지 모르겠다. 진심으로 죄송했다. 점심시간에 일부러 여기까지 오셨을 텐데 한식집에 밥이 엉망이니 손님의 실망도 이만저만이 아니셨을 것이다.


 좋은 식재료, 웰빙 음식, 매일 직접 제조라는 타이틀로 손님 앞에서는 늘 당당했었는데 가성비를 따지자마자 자신감은 계속 떨어졌고 손님을 마주하기가 두려워졌다. 나를 또 부르면 어떡하나 미리 겁도 났다. 빨리 쌀을 소비하자, 소비해 버리자, 예전 쌀로 빨리 대접해 드리자는 생각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리석기 짝이 없다. 아니다 싶은 건 손해를 보더라도 과감하게 버리고 비싸더라도 기존의 쌀로 빨리 바꿨었어야 했는데 그런 생각머리가 없었다. 일하는 것이 즐겁지 않고 발걸음은 무겁고 매출은 줄어들고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고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는데 하얀 머리카락이 인상적이신 노부부께서 정가한에 식사를 하러 오셨다. 매장에는 노부부 손님뿐이었다.

 기존과 같이 요리를 해서 한상을 차려 드렸다. 몇 숟갈 드시더니 역시나 손짓하시며 나를 부르신다. 쌀이 왜 이러냐고 물으셨다. 다른 브랜드로 쌀을 잘못 바꿔서 이렇게 되었다고 죄송하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런데 의외의 말씀을 하셨다. 쌀이 안 좋은 건 알겠는데 밥에 뜸을 들이지 않은 것 같고 밥을 제대로 못하는 것 같다며 지적을 하셨다. 어떤 밥솥을 사용하냐고 물으시길래 일반 식당들이 대부분 사용하고 있는 가스밥솥이라고 말씀드리니 그러면 이런 맛이 나올 수가 없는데 이상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밥을 하는 순서와 물의 양과 뜸 들이는 방법과 시간까지 알려주셨는데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내가 어느 날부터 뜸 들이기를 잘못하고 있었다는 걸 한 번에 알아차렸다. 식당밥은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훈수와 함께 열심히 하면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응원을 하시며 계산하고 홀연히 떠나셨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사람의 형상을 한 신인가? 우리를 도와주러 오신 건가?‘


라는 느낌이 떠나질 않았다.


 바로 다음 날, 품질이 떨어지는 그 쌀에 노부부 손님께서 말씀하신 데로, 시키는 데로 정확하게 지켜가며 밥을 했더니 신기하게도 손님의 손짓이 사라졌다.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았고 오히려 “잘 먹었어요.”라며 인사까지 하는 손님도 계셨다.

이거다!

너무 신기했다. 내가 먹어봐도 죽은 쌀을 살려낼 탱글한 식감이 느껴졌다.  이 레시피에 조만간 쌀까지 바꾼다면 최고일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 순간 마음이 얼마나 편안해졌는지 모른다. 그리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


 다시는 가성비를 따지지 않겠다고!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자고!


 몇 푼 아끼려다 마음고생에, 거지꼴을 당할 뻔했으니 정신을 차릴 수밖에 없었다.


P.s 어르신,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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