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역

4. 약수 : 담을 넘는 사람이 담을 넘기 시작한 이유

by 변덕텐트


4. 약수 : 담을 넘는 사람이 담을 넘기 시작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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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비스트는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담을 계속해서 넘어야 했다. 아키비스트는 책임을 지는 사람이었기에 머뭇거릴 수 없었다. 소중한 모자였지만 어쩔 수 없이 담 너머로 모자를 던졌다고 말한 누군가처럼 우리의 일은 예정되어 있었다. 나는 담을 넘어가야 했고, 나는 그 담을 넘기 위해서 존재했다.
아키비스트에게 ‘약수’라는 곳은 삶 그 자체였다. 태어나고 죽을 때까지 함께해야 할 그런 숙명이었다. 아키비스트는 약수에 살면서 비참했다. 변변치 않은 형편에 버림받기도 차이기도 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저주하기도 했고 부러워하기도 했다. 쓰러지기도 아프기도 했었다. 왜냐하면 그곳은 약수였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약수에서 아키비스트는 웃기도 했었다. 따뜻하게 온화하게 사랑받기도 했다. 때론 즐거워서 춤을 추기도 했고 하늘이 놀랄 정도로 큰 박수를 치기도 했다. 약수였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이 가능했다.




아키비스트에게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은 무게였다. 아키비스트는 쫓겨나야 했다. 수 세월을 받아주지 않는 현실 속에서 허둥거려야 했다. 약수는 아키비스트를 어엿한 성인으로 만들어 주었지만 자본에 의해 집에서 쫓겨나야 했고 학교와 배움에서 쫓겨나야 했다. 먹고 싶은 음식 앞에서 쫓겨나고 사람과 하고 싶은 것, 가진 꿈, 성공과 같은 곳에서 쫓겨나야 했다.
쫓겨나고 쫓겨나니 아키비스트는 더 이상 약수에 머물 수가 없었다. 아키비스트가 온전히 의지하던 곳은 약수였지만 현실은 그런 것들을 허락하지 않았다.






따라서 아키비스트는 성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흙수저, 천민, 거지 나부랭이 등등 그런 이름들을 벗어 던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사실 그런 수식어들을 저 멀리 담 너머로 던져버려서, 성공의 길 앞에 그것들을 던져버려서 아키비스트가 담과 담을 넘고 넘어 성공을 쟁취하는 날에 내가 옛날에 던져놨던 가난, 나약함과 같은 이름들을 다시 모자 쓰듯 써버리고 싶었다. 그것은 아키비스트의 인생 전부였던 ‘약수’라는 이름으로 치환될 수 있었고 아키비스트는 약수를 위해 담을 넘게 되었다. 아키비스트는 쫓겨난 약수에 다시 돌아오고 싶었다. 그게 그 월담의 전부였다.






아키비스트는 네 가족 모두를 전부 다 받아주지 못하여 이곳과 저곳으로 쫓겨나야 했던 그 슬픔을 위하여, 그게 참 아픈 거지만 아키비스트 그의 전부였던 그 슬픔을 되찾기 위하여 담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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