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짧은 가을이니 짧은 글

나의 가을

by 변덕텐트

글1
『오락가락 짧은 가을이니 짧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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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좀처럼 종잡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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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이 끝나가기 4일전에 내가 내린 결론이다.
아침과 저녁엔 그렇게 춥던 것이
해가 뜨기만 하면 그렇게 더워지고,
짜.증.폭.팔이다.
아침과 저녁이 하루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니까 나는 그들 편에 선 것 뿐인데.
여름에 가졌던 겸손은 계절이 바뀜과 동시에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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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9월은 참 어렵다.
나에게 더더욱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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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본디 가을을 가장 좋아한다.
많은 사람들도 이미 아는 바이겠지만
가을하면 생각나는 그 센치함의 이미지, 그리고 그 감성.
나는 그것이 되려고
그 자체이려고
사계절 내내를 살아가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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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 가을은
해마다 달라졌다고 한다.
짐짓 기억하기론
좋았던 것 같기도, 아니었던 것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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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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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덥던 여름을 다 훈련병과 이등병으로 지나보내고
처음 자대로 소환되었던 가을이었다.
내 눈 앞에서 왔다갔다 하는 그 80여명의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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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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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며 웃고
나를 향해 던지는 질문들과
나를 위해 쥐어주는 짬, 쓰레기, 물건, 청소도구 따위의 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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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좋아하는 느낌과 향기로 가득 찬 그 강원도 산골짜기에서의 공기가
뒤섞여서
두려움을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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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여름,
미친듯이 쏟아내렸던 장대비 사이로
나를 보내며
울먹거림을 참아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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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이 보고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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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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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나는 그 80여명의 사람들이 되었을 때였다.
당시 우리 부대는 유해발굴사업에 참여하여
많은 선임,후임,동기들이
이름 모를 구릉을 넘어
영문 모를 죽음을 맞이한
순국선열들의 유해를 찾아 헤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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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대에서 남아
그들의 앞과 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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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하니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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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서있어도
어떠한 공명조차 들리지 않는 창고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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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막했던 1년을 지나보내니
앞으로의 1년이 나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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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들을 위해
부실한 밥과 간식을
깐깐하게 쪼개가며
나눠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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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남아
괴리와 이상 사이에서
울긋불긋한 생각을 지우려
'나라시'를 깔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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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싶은 사람과
보고싶다고 싸우고
볼 수 있게될 날을 위해
악착같이 잔꾀를 내다 지치곤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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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물들어가는 단풍처럼 익어가고 싶었지만
단풍이 될 수 없었던
그런 가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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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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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순간들이 다 끝이 나게 됐다.
나의 가을과 함께했던 것들은 이제 내게 없다. 모두.
단풍은 결국 바스락거리며
뒤언켠으로 사라진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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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환경에 적응해가며
뒤보단 앞으로의 삶이 큰 기대로 자리잡고
보다 나은 내가 되고싶은 이 가을인데, 나는 그 느낌이 너무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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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이 너무 덥다.
그 짧은 순간이 자꾸
위로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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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곡진 인생길이라지만
오르막길을 걷고 있다고
이토록 더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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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된 것들이 생각나는
단풍의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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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은
예민하게
긁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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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의 바람에도
바스락 사라지던
단풍이기에
그 연약함이 부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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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긁히는걸 보니
이제 내가 단풍이 될 차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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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가을은
그런 내게
여느 가을처럼
두려울수도, 보고싶을수도
없는
다른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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