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성발톱
내성발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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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를 장지 바른 곳에 묻은 이후에
집에서 발톱을 깨쳐버린 일이 있었다.
하도 당최 모여 자라지 않고 점점 더 부스러지는 발톱에 성이 나서
뒹굴어다니던 쓰메끼리 하나 집어다가
발톱에 수차례 난도질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수십 방의 자국이 난 발톱은
도망칠 곳 없이 생살로 움츠려들기 시작했다.
자꾸만 살 속으로 파고 웅크리는 발톱
몇번을 들춰내려 애를 써도 더 깊숙하고 아린 곳으로 웅크리는 발톱이다.
나도 웅크리는 것을 좋아하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더, 꽤 오래전에는 우리 엄마 뱃속에서부터
더 깊숙히 웅크리곤 했던 기억도 조금 났다.
솔직히 아팠다. 다 커버린 발톱 따위가 생살을 파고들 때면
내 마음 안에선지 밖에선지 구별 안 가는 아픔이 이따금씩 몰려왔다.
엄마는 사실 무서웠다고 했다.
깊숙히 박힌 나를 낳겠다 결심했을 때.
세상은 찢어질듯 아프고 고통스러웠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괴로웠다고.
장례식 이후,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나서의 일은
내가 발톱을 뽑아버리기로 결심한 것이 있었다.
살과 살을 짓이기는 고통
지난 웅크리던 것들과의 마지막 작별
편안해지기 위해 어디론가 숨고 기대고 하기도 많이 했으나,
나는 그 움츠린 발톱을 몽땅 뽑아버리기로 했다.
그날 울면서 정신을 잃었다.
누워서 울고
울다가 잠에 든 까닭이
엄마가 죽어 발톱이 깨졌기 때문인지
발톱이 깨진 날이 우연찮게 엄마가 죽어버린 날이라 그랬던 건지
더이상 구별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구별할 필요도 없었다.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