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기록
꿈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나를 보여준다
잠은 무채색처럼 옅어져 요즘은 꿈꾸는 일이 드물다. 직업적으로도 기록하는 사람으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싶다면 꿈이야말로 창작의 자양분이 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지금 몇 가지 기억나는 꿈들을 떠올려보아도 스릴러인지, 호러인지, 로맨스인지 장르적으로 애매모호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 모호함 속에서 발견한 꿈의 핵심 감정은 어떤 식으로든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점에 선명한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하다.
고등학교 이학년 때 시험을 일주일 앞두고 벼락치기 공부를 한 어느 날이었다. 평소에는 예습, 복습을 일절 안 하다가도 일말의 죄책감에 시달리는 날이 딱 시험 일주일 전이다. 그날부터 작정을 하고 책상 앞에 앉아서 몰아치기 전술을 쓴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목표했던 범위까지 암기를 마친 나는 새벽녘 공기를 잠시 쐬고 나서 잠이 들었다. 그 무렵 내 꿈속에는 가족과 친구들이 자주 등장했다. 아침에 엄마가 차려준 밥상을 앞에 두고 닭똥 눈물을 흰쌀밥 위에 뚝뚝 흘리면서 울었다. 엄마는 내게 밥 먹다가 왜 우냐고 물었고, 나는 엄마가 꿈속에서 죽었다고 말을 했다. 엄마는 우는 나를 바라보며 “오늘 내가 조심해야겠네.”라고 말을 했다. 더욱 서러워진 나는 목울대까지 차오르는 울음을 흰밥과 같이 삼켰다. 그리고 이때 내가 엄마를 몹시 사랑한 순간이었음을 확인했다. 사랑을 받고 싶고 주고 싶은 내 마음과 달리 우리 가족들은 서로가 감정표현에 몹시 서툴렀다. 아주 어린 시절 엄마의 품에 파고들려고 달려들자 덥다면서 자그마한 몸을 밀친 경험은 엄마가 냉정한 사람이라는 인상으로 굳어졌다. 그런데 꿈속에서 벌어진 엄마의 부재는 사랑의 방식이 어떻든 관계없이 내가 엄마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물론 그 사랑의 존재 여부를 확인한 이후로도 모녀의 거리는 여전히 평행선을 걸었지만 말이다.
외할머니댁에 자주 방문한 여름방학 기간이었다. 할머니가 거실 바닥에 앉아 쪽가위로 천에 붙은 실밥 제거를 할 때 나는 줄곧 한쪽 구석에 누워 덜덜 돌아가는 선풍기 옆에서 단잠에 빠졌다. 단독주택이 즐비한 골목 사이를 빠르게 누비면서 달리는 내가 보인다. 시점은 전지적 시점이다. 100m를 21초에 달리는 평소 속도와는 달리 재빠르게 지붕에서 지붕 위로 홍길동처럼 넘나 든다. 무언가에 쫓기듯이 달리다가 1인칭 시점으로 바뀌어서 고개를 돌려 뒤를 본다. 전신에 살갗이 하나도 붙어있지 않은 앙상한 해골이 내 뒤를 바짝 쫓고 있다. 나는 이 꿈이 빨리 끝나기를 바랐다. 하지만 용케 잡히지도 않은 채 긴박한 속도로 외할머니 댁 앞을 그대로 지나쳐 골목길을 빠르게 달렸다.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해골은 내 뒤꽁무니를 추격했다. 이 꿈에서 막상 깨어났을 땐 왠지 모를 스릴감에 결말을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어제는 정말 오랜만에 꿈을 꾸었다. 내가 하늘을 나는 자율주행차를 타고 레스토랑에 식사를 하러 가는 꿈이었는데 상용화가 되기 전에 시범 비행을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나는 꿈속에서 하늘을 날며 레스토랑에 도착도 하기 전 무슨 사고라도 날까 마음을 졸이면서 비행운전을 즐겼다. 그러나 걱정과는 달리 추락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근사한 식사를 즐긴 후에 자율주행 플라잉카를 타고 유유히 하늘을 날아 집으로 돌아갔다. 아마 이 꿈은 급변하는 시대에 대한 예언적 꿈이 아닐까 하는 추정을 해본다. 이미 신문기사에도 uam 상용화에 대한 기사가 자주 보이니, 내 꿈 덕에 플라잉카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내 인생의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꿈의 내용도 차츰 변화했다. 어린 시절엔 사랑의 결핍이, 청년기엔 불안이, 지금은 기술과 미래가 그 자리를 채운다. 나이 먹으면서 현실적 생각에 골몰할 뿐 생산성 없는 일에 집중하는 시간으로부터 멀어진다. 사람들은 손에 닿지 않는 아름다움에 매료되고 그러기에 막연하게나마 선망하고 갈구한다. 꿈은 그 먼 미래에 가닿을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고 거기에서 한 발 나아간 상상력과 창의력을 더욱 끌어올린다.
프란츠카프카는 꿈을 모티브로 삼아 발전시켰고, 그 결과 <변신>과 같은 작품이 탄생했다.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이 거대한 벌레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문학사에 길이 남을 이 유명한 <변신>의 첫 문장은 전형적인 악몽에서 온 발상일 것이다. 오늘도 글감을 찾아 헤매는 나에게, 꿈은 가장 순수한 원천이다. 비록 작품으로 이어지려면 소재를 갈고닦아야겠지만, 평이한 일상에서도 내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의 잠재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