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요리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요리에 담긴 사랑

by 새벽일기


몸이 아플 때마다 엄마가 해준 음식이 생각난다. 어렸을 적 엄마와 나, 동생은 시장에 다녀오는 길에도 외식을 한 적이 없다. "엄마, 배고파. 뭐라도 먹고 가자."라고 하면 "집에 가서 먹자. 조금만 참아."라는 답이 돌아왔다. 친구들이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먹었다는 얘기가 늘 부러웠다. 그럴 때 엄마는 냉동실에서 고기 덩어리를 꺼내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패티를 구웠다. 그리고 오이를 납작하게 썰고 양배추를 채 썰어서 마요네즈와 케첩에 버무렸다. 햄버거 번용 빵을 바삭바삭 토스트 식빵처럼 구운 후에 그 사이에 노릇한 패티와 오이, 버무린 양배추 소를 한가득 넣어서 쟁반에 담아 내왔다. "내가 먹고 싶은 햄버거는 이게 아닌데......" 싶었지만 먹성이 좋았던 나는 그럭저럭 엄마표 수제햄버거를 순식간에 먹고 입맛을 다셨던 기억이 난다.


겨울철에는 난방이 제일 잘 들어오는 거실 바닥 한 구석에 밀가루를 발효시킨 빨간 대야가 있었다. 그 위에는 얇은 천조각이 덮여 있었다. "엄마, 이게 뭐 하는 거야?"라고 물으면 이스트를 넣어 밀가루를 발효시키는 거라고, 호떡을 만들 거라고 했다. 다음 날 반죽이 충분히 부풀고 시큼한 향이 나면 엄마는 밀가루를 동글게 뭉쳐서 기름이 자글자글한 프라이팬에 올렸다. 그리고 흑설탕을 반죽 위에 한 스푼, 또 반죽으로 덮어서 앞뒤로 부지런히 뒤집었다. 이내 납작하게 눌린 호떡이 완성되면 접시 위에 놓고 후후 불어가면서 달디단 호떡을 베어 물었다.


엄마의 주 요리는 한식, 중식, 양식의 경계 사이를 구분치 않고 넘나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스무 살 무렵까지 외식을 한 기억이 손에 꼽을 정도이다. 엄마의 손에서 무슨 요리든 가능했던 기억이 나는데 가장 놀라웠던 것은 피자였다. 오븐도 없던 그 1990년대 시절, 무려 집에서 피자를 한 판 뚝딱 만들었다는 걸 대단하게 생각했다. 프랜차이즈에서 파는 미국식 피자는 아니었다. "김치피자"라고 해서 김치를 잘게 조각내고, 피자치즈와 스모크햄을 네모 반듯이 잘라 토핑으로 올렸다. 그 시절 요리 경연대회 같은 게 있었다면 최종 우승자가 되지 않았을까.


엄마는 생일파티를 하고 싶다는 나의 성화에 집에서 같은 반 친구들을 불러 파티를 열어주었다. 손수 이십 명가량 되는 친구들의 음식을 다 해주었다. 이때만큼은 힘에 부쳤던지, 외할머니를 불러 함께 상을 차렸다. 배달음식은 한 종류도 없었다. 치킨도 전날부터 미리 닭을 양념에 재어두고 당일에 베란다에서 바로 튀겼다.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데 배달로 오는 후라이드 통닭맛과 차이가 있었다. 내 친구 중 "선희"라는 친구는 넉살 좋게 엄마에게 "여태까지 먹어본 치킨 중에 제일 맛있어요."라고 하면서 엄지를 척하고 내밀었다. 엄마는 많이 먹으라며 친구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나 역시 뿌듯했다.


2년 전 입주한 부모님의 아파트에 엄마의 생일모임 겸 집들이 모임이 열렸다. 외가 쪽 친척들이 전부 모여서 넓은 집이 북적북적거렸다. 엄마는 선언이라도 하듯 이번 모임에는 아무 요리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조금 있자니 출장뷔페 측에서 가져온 음식들이 거실 한쪽에 차려졌다. 우리 가족들은 쟁반에 먹고 싶은 음식을 각자 양껏 덜어서 먹었다. 산해진미가 있었지만 손맛의 온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엄마는 설거지 거리도 없으니 얼마나 간편하냐며 웃음을 지었다. 나는 어렸을 적 내 생일상을 차려주던 시절로부터 세월이 한참 흘렀음을 느꼈다. 어렸을 때부터 동생과 내게 간식을 사서 먹여본 적이 없던 엄마가 이제는 외식을 즐겨서 한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 이제는 남이 해주는 음식이라고 한다. 긴 세월을 가스레인지 앞에서 굽고, 버무리고 튀겼으니 신물이 날 만도 하다. 요리를 하는 사람은 정작 자신의 요리를 즐기면서 먹지 않게 된다.


며칠 전, 구내식당 급식메뉴로 잡채가 나왔다. 문득 엄마가 자주 해줬던 잡채가 생각났다. 이 면발보다 조금 더 꼬들꼬들하고 색이 진한 면발이었는데. 엄마가 한 잡채는 시간이 지나도 잘 뿔지 않아서 먹기가 좋았는데. 스테인리스로 된 큰 대야에 각종 재료를 넣어 잡채를 비빌 때 아기새처럼 옆에서 받아먹었던 기억이 났다. 다른 반찬 없이 오직 잡채로만 한 접시 가득 먹어도 돌아서면 또 먹고 싶은 맛이었다. 이제 육십 중반의 나이가 된 엄마의 손엔 검버섯이 드문드문 피어있다. 이런저런 맛깔난 것들을 척척 만들어 저녁상을 내왔던 요리사의 손. 이제 나는 그것이 엄마만의 무덤덤한 사랑 표현이었음을 안다. 새삼, 그 요리가 더욱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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