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에서 막내이모를 만났다. 외가 친척들과는 어렸을 적부터 왕래가 잦았다. 방학 때면 검은 백팩 안에 전략 삼국지 만화책 열 권을 넣고 외할머니댁에 갔다. 둘째 이모와 막내이모가 퇴근을 하고 오면 나는 그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가서 쫑알거렸다. 특히 막내이모는 내 눈에 키도 크고 아주 예뻐 보였다. 짧은 정장치마를 입은 이모가 커리어우먼 같으면서도 섹시한 여전사 같았다. 이모는 눈매가 부드러우면서도 선했지만 단호한 면이 있는 여자였다. 그런 이모를 마룻바닥에 앉아 우러러봤던 기억이 있다. 이모는 이십 대 초에 해외여행을 많이 다녔고, 그럴 때면 현지에서 소소한 선물을 사 와서 내 손에 쥐어주었다. 태국에서 코끼리 상아로 깎아 만든 공예품, 화려한 문양이 그려진 손지갑 같은 기념품이었다. 나는 이모의 월급날이 되면 부리나케 외할머니댁으로 전화를 걸었다. 어떤 달엔 프로스펙스의 롤러스케이트를 사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했고, 또 어떤 달엔 멜빵바지가 갖고 싶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마치 산타할아버지처럼 척척 선물을 들고 와주었다. 나는 빨간색 롤러스케이트를 품에 안고 좋아서 방방 뛰다가 복도에서 타는 연습을 했다.
서울역에 30분 먼저 도착해서 계단에 걸터앉았다. 가을볕이 등허리와 어깨를 따사롭게 비추고 있었다. 전화를 걸어서 어디냐고 물으니 곧 서울역 버스환승광역센터에서 내릴 거라고 했다. 저 아래 회색 계단을 찬찬히 밟고 올라오는 이모가 눈에 들어왔다. 한 걸음 다가서서 "이모"하고 부르자 환하게 웃으면서 내 몸을 얼싸안았다. 이모는 내가 갈수록 아빠와 얼굴 표정의 근육까지 닮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유 형부~~~"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나는 예전부터 익숙한 농담 앞에서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아 이동하면서 이모가 나에게 "너 키가 원래 이렇게 컸니?"라고 물었다. 고등학교 때 이모 옆에 서면 5cm나 작았음에도 내가 더 크다고 우겼다. 이제 오십 중반인 이모의 정수리는 내 눈썹에 닿았다. 장성한 이십 대의 아들이 둘이나 있다는 게 실감이 났고, 세월이 이렇게도 흘렀구나 싶어서 슬펐다.
마주 앉은 이모의 얼굴은 여전히 해사했다. 예전보다 눈이 침침해졌다는 말로 몸의 근황을 알렸다. 이모의 까맸던 눈동자가 조금은 색이 바랜 듯했다. 그래도 곱게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 내 눈엔 여전히 예뻤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잔잔한 말투로 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멕시칸 음식인 치킨 브리또볼과 새우퀘사디아를 안주로 시키고 얼음 생맥주로 목을 축였다. 큼지막한 유리잔에 성에가 끼어있었다. 앉아서 한숨 고르고 나니 서울까지 이모를 오게 한 일이 미안했다. 요즘 자꾸 잠이 쏟아지는 통에 일상생활이 곤혹스럽다. 수원까지 가는 길이 엄두가 안 났지만 막상 나이 많은 이모를 오게 하고 보니 예나 지금이나 받기만 한 일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서로의 접시에 음식을 덜어주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 소소한 일상을 나눴다. 여전히 활동적으로 회사를 다니며, 두 아들에게 친구이자 때로는 조력자의 역할을 하는 이모의 삶이 내 일처럼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이모부가 내 걱정을 한다는 말과, 언제든 수원으로 놀러 오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친척 사이에도 신세를 지지 않으려는 집임에도 불구하고 고독감을 느낄 때가 있다. "언제든 놀러 와라. 와서 자고 가." 이 말이 마음속 언저리에 남았다. 박준 시인의 산문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이토록 순한 성심을 갖고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언제든 놀러 오라는 그 말이 귓가를 한 바퀴 부드럽게 훑고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역시 낮술은 서로에게 진심을 전하기에 좋은 수단이라는 생각을 했다.
카페로 자리를 옮겨서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이모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나는 이 날씨에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마심으로 젊은 사람이 되었다. 이모는 아직도 내가 한참이나 어리고, 귀엽다고 했다. 불혹의 나이에 귀엽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니, 참 행복한 일이다. 수다를 또 한참 떨다가 이제는 일식집으로 자리를 옮겨 모듬초밥으로 저녁의 허기를 달랬다. 누군가와 이렇게 오전 나절인 시간부터 저녁까지 밖에서 노는 일이 내겐 드물었다. 이모의 매력이 저녁까지 나를 붙들었나보다. 이날 내가 더 많은 말을 하다가 눈물을 보인 일로 이모는 쉽사리 자리를 마무리 짓지 못했던 것 같다. 이모를 버스환승구역까지 바래다주는 내 손엔 손수건 한 장이 네모 반듯이 접혀 있었다. 눈물, 콧물이 다 묻어난 손수건이. 수원으로 향하는 빨간 광역버스가 도착하고 우리는 아쉬움의 포옹을 했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손을 들어서 또 환하게 웃으며 안녕이라 했다. 버스가 자리를 뜨고 난 후 나는 작게 읊조렸다. "다음에 만날 땐 이모에게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해야지." 이제야 이모에게 진짜 했어야 할 말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토요일의 저녁 귀갓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