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곱 살부터 친구들과의 사이가 마냥 즐겁기보단 갈등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느꼈다. 그로 인해 학창 시절엔 마음을 나누는 친구의 자리를 책이 대신 차지하는 날이 잦은 편이었다. 반에서 인기투표를 할 땐 3위 안에 드는 편이었고, 학우들과의 관계는 원만했다. 그렇지만 내향적이고 예민해서일까. 가벼운 장난을 치는 일에 그칠 뿐 속마음을 잘 나누진 않았다.
그런 나에게도 오래된 친구가 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생 시절을 거쳐 지금까지 30년을 알고 지내는 “강만”으로 불리는 친구이다. 긴 추석 연휴 기간 동안 친구와 거주지의 중간 지점인 일산에서 보기로 장소를 정했다. 동창들과 같이 보자는 제안은 거절했다. 인원이 많아지면 시끄러운 일이 생기고, 요즘 나는 다대일의 인간관계가 갈수록 부담스럽다. 그리고 사십 줄에 들어서며 내가 소화할 수 있는 관계의 그릇이 작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고 있다. 에둘러서 둘이 만나자는 말을 했고 강만도 이 의견에 “오케이”라고 했다.
덥수룩한 머리를 커트한 후 집에 돌아가기 위해 홍대입구역 플랫폼에 도착했다. “카톡”하는 소리에 휴대폰 화면을 보니 낯선 이에게 온 메시지가 알림창에 떠있었다.
“어디서 만나?”, “나두 껴줘~~~”
바로 내일이 강만과 만나기로 한 약속 당일이었다. 그런데 카톡을 보낸 이는 다른 이였다. 고등학교 동창인 “주가리”라는 별명의 친구였다. 강만과 나, 주가리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셋이서 같은 반 친구였다. 예상치 못한 낯선 연락에 주가리와 내가 마지막으로 만난 때가 언제인지 떠올려보니 삼 년 전이었다. 문득 주가리를 만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 공허한 사이는 정리해야 한다고 다짐한 일이 생각났다.
초대된 단톡방 메시지를 읽지 않은 채 강만에게 개인 카톡을 보냈다.
“너 주갈한테 본다고 말했어? 나 이제 사람들이랑 많이 안 만나고 다녀~ 여자 셋이 모이는 것도 시끄러움”
“응, 물어봤어 내가 ㅠ”
“왜~? 둘이 보기로 했잖어. 네가 둘이 보자고 해놓구선.”
친구가 친구에게 “나 누구랑 언제 어디서 만나기로 했어.”라는 얘기를 하는 건 유별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들 사이에서 강만이가 굳이 주가리에게 나와 만난다는 얘기를 할 필요가 있을까 의아함이 생겼다. 1년 전 가을 이 무렵 강만과 내가 둘이 만났을 때 “인생 네 컷” 사진을 찍어서 한 장씩 나누어 가졌다. 그 사진을 강만이가 카톡 프로필에 올려두자 주가리가 강만에게 전화를 해서 계속 재밌었냐고 꼬치꼬치 묻더라는 것이다. 그 얘기를 전하는 강만에 대해서 나는 심기가 몹시 불편했다. “주가리가 계속 꼬치꼬치 물어본다?”라고 말하는 억양으로 비추어 볼 때 자신이 시기, 질투가 섞인 질문을 계속 받고 있다고 토로하는 것 같았다. 둘 사이에 나도 알지 못하는 기류가 있는가 본데 그런 여자들의 미묘한 감정싸움에 말려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심드렁하게 “그래?”라고 말할 뿐 더 이상 말을 보태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다시 그때의 기억이 소환돼서 찝찝함이 밀려왔다.
“좋아할 것 같았는데ㅠ”
“뭘 좋아해? 니네 둘이 만나. 나 내일 안나가. 누가 좋아할 것 같다는 거야 너가? 주가리가?”
“기분 상하게 해서 미안해 할 말이 없다. 아니 너가.”
“내가 뭘 좋아해 갈수록 사람들 많아지는 거 피곤한데.”
“너가 의정부 가서 보는 게 아니라 걔가 양주에서 나오는 거니깐 상관없을 줄 알았어.”
“당황스럽다. 난 됐으니까 둘이 봐.”
“25일에 다른 애들 만날 때 넌 의정부 안 오니깐 11일에 둘이 일산에서 보기로 했다고 얘기했었지. 근데 주가리가 일산 온다고 하니까 알겠다고 나 혼자 결정했어, 너가 싫어할 줄 몰랐어. 미안해.”
“알았어. 너는 주가리랑 계속 연락하고 보고 살았으니 우리가 다 같이 고등학교 친구라고 생각할 수 있지.”
“응 그거였어 미안해. 나쁜 의도는 전혀 없었어.”
“나는 고등학교 때 친구 중에 남은 사람이 너 하나라고 생각하고 살았어.. 그래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는 거야.”
“주가리랑 있을 때 너 얘기 자주 물어봐서 만나면 좋겠다 생각한 거지. 너 화 풀리면 연락 줘. 나중에 통화로 얘기하자.”
“그래.”
대화의 끝엔 서로의 온도차만 또렷하게 남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둘 중 하나가 먼저 전화를 걸었다면 이렇게 대화가 급히 마무리되진 않았을 거다. 단순하게 내가 화가 났다고 단정 짓고 대화를 일축시킨다는 느낌을 받았다. 친구의 세심하지 않은 태도 뒤엔, 갈등을 회피하려는 비겁함이 숨어 있다고 느꼈다. 더불어 그녀의 관계 중심이 일대일이 아닌 다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걸 깨달았다. 반면, 나는 정면으로 대화를 던졌다. 거대한 바위를 뚫는 낙숫물처럼.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추석연휴 이후 며칠이 지났지만 강만과 나는 서로에게 전화를 하지 않는다. 카톡도 하지 않는다. 대화는 마지막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서로 알고 지낸 세월이 오래 흘렀어도 우리는 아직도 서로에 대해 여전히 알지 못한다. 그리고 진짜 마음을 알지 못한다. 아니면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다 해도 사는 게 바빠서 이 관계에 대한 생각을 뒤로 미루고 있을지 모른다. 나는 강만과 나눈 카톡 대화를 바라보며 “이제 어느 한 시절이 끝났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건 한 인연을 잃었다는 슬픔보다 관계의 소멸을 망연히 바라보는 감정에 가깝다.
사십의 인간관계가 여전히 버겁고 어렵다. 예전 같은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아서 떠나가는 걸 보고도 붙잡을 수가 없다. 때론 잃을 걸 알면서도 보내줘야 하는 관계임을 느낀다. 서로 인생의 다른 길을 걷고 있기에 감정의 간극도 커져감을 느낀다. 예전에는 서로에게 향하는 길이 지름길이었다면, 이제는 굽이진 오르막길을 걷는 듯하다. 사십이라는 나이가 한창 그런 나이일지 모른다. 삶에서 여러 가지를 감내해야 하는 나이. 그래서 대화를 여기서 멈추는 것도 나중을 기약하는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젊은 날의 혈기가 한층 꺾였음을 느낀다. 창밖으로 보이는 북한산 너머 능선에 주황색 노을이 걸쳐있다. 이 글을 마치면, 소파에 기대 오늘의 마음을 잠시 눕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