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에 가면 서점이 좋다

여행지마다 나의 쉼터가 되어주는 서점

by 새벽일기


낯선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서점을 간다. 되도록 큰 대형 체인점의 서점이 아닌(교보문고나 알라딘 중고서점) 작은 규모의 독립서점 말이다. 여행을 가기 전이나, 출장지로 떠나기 전 그 지역에 독립서점이 있는지 꼭 찾아본다. 그것은 내가 그 지역에 다녀왔다는 깃발을 꽂는 것과 같은 하나의 의식에 가깝다.



휴가지로 강릉을 주로 많이 가는 편인데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않는 여행을 지향하는 나는 안목해변에 주로 머물러 있다. 숙소도 안목해변 주변의 펜션에서 머문다. 강릉역에 내려 숙소로 향하기 전 미리 검색해 둔 동네서점을 행선지로 정한다. 책이 빠진 여행은 내게 상상할 수 없다. 책이 없다면 팥앙금이 빠진 찹쌀떡을 먹는 것과 다름없는 여행이다. 강릉여행에서 들렀던 독립서점 중에 “깨북”이라는 독립서점이 있다. 책방지기는 중년의 두 부부이고, 서점 운영 외에도 일러스트레이터가 제2의 직업이다. 책방에 오면 유독 동네 사랑방에서 노닥거리듯 수다쟁이가 된다. 책만 사는 것이 아닌 이야기를 수집하듯 계산하기 전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실로 낯을 가리는 나의 성격과는 달리 상당히 대범하게 책방 주인장과 수다 꽃을 피운다. 책이라는 관심사 하나로 통하는 게 있고,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에 대한 선망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고 있어서이다. 이곳에서 나는 “만두야”라는 그림책 하나를 구입했는데 마침 이 책의 저자분이 서점으로 들어오셨다. 이렇듯 서점은 책과 내가 인연을 맺는 장소가 되고, 책과 사람을 이어주는 사랑방도 된다.



흔히 책과 어울리는 음료로 커피를 떠올린다. 나는 조금 색다르게 책과 어울리는 조합에 맥주를 원탑으로 꼽고 싶다. “책맥”이라고 들어보셨는가.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만끽하노라면 가슴속까지 쩡하게 뚫을 수 있는 맥주 한 잔이 간절하다. 이런 욕구를 풀어줄 수 있는 장소로 “버드나무브루어리”를 꼽고 싶다. 이곳은 강릉에 오면 필수로 들르는 여행코스이다. 버드나무브루어리에서 직접 생산하는 수제맥주와 함께 버섯피자와 두툼한 수제버거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공간적 특이함까지 매력을 더하는데, 가게 안에 수제맥주를 생산하는 양조장 시설을 투명 유리 통창으로 구경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곳의 화룡점정은 단연 “책”이다. 매달 달라지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버드나무브루어리에서 엄선한 책들이 작은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다. 권수는 그렇게 많지 않아도 흥미로운 책 주제를 보노라면 책 한 권을 어느새 집어 들고 계산대로 향하는 나를 발견한다. 버드나무브루어리 내부는 조명이 세지 않고 은은하다. 이렇게 은은한 조명 아래서 맥주 한 잔과 함께 부드럽게 쭉쭉 치즈가 늘어나는 피자를 먹는다. 그리고 책을 한 장, 한 장 넘겨 마음에 드는 문장을 같이 음미한다. 맥주 한 모금을 목구멍으로 삼킨다. 이곳이 지상낙원이고 힐링인 바로 그 순간이다.



버터향이 가득 풍기는 베이커리로 들어섰다. 그곳이 책방이다. 강릉 “고래서점”을 말하는 것이다. 이곳은 실내 내부가 넓은 동네서점인데 독립서점이라는 표현보다는 동네서점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큐레이션도 잘해두어서 구입하고 싶은 책을 손꼽다 보면 어느새 품 안에 가득 책탑을 손에 이고 지고 나올 것만 같다. 마침내 내적갈등과 고민을 거듭한 끝에 한두 권 정도로 선택지를 줄인다. 책을 사고 나면 이내 코끝에는 은은한 버터향이 감돈다. 내가 고른 책은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이다. 삶이 너무 철학적으로 심각하게 흘러갈라치면 빵 한 귀퉁이를 찢어 입안에 집어넣는다. 고소하고 부드러운 풍미가 마음속까지 야들야들하게 만든다. 기분전환이 절로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여행 일대기는 책과 서점의 여행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꼭 여행이 아닐지라도, 우연히 발길이 닿은 골목길에서 서점의 입간판과 맞닥뜨릴 때 무심코 지나치지 않는다. 낯선 여행자처럼 수줍게 서점의 문을 열고 들어가 곳곳을 탐험하는 모험가와 같이 큐레이션 한 책들을 낱낱이 훑는다. 이것은 책방지기의 취향을 엿보는 의식이다. 서점의 책장을 구경하는 건 한 사람의 내적 세계와 마주하는 것과 같다. 그런 탓에 조금은 경건한 기분도 든다. 여행과 서점이 닮아있는 건 어느 한 세계로 나를 안내한다는 점이다. 그곳에서 나는 나일 수 있고, 때로는 다른 나를 경험할 수 있고, 낯선 사람과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 무엇도 예상할 수 없듯이. 그리고 내가 가장 나다운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공간, 그곳이 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