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에 작은 새 한 마리가 바닥에 납작하게 누워있었다. 눈을 감고 있어서 잠을 자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자그마한 파랑새를 손바닥 위에 올렸다. 아직 몸에 온기가 느껴져서 쓰러진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다. 옆에 있던 언니는 이미 새가 죽었다고 화단에 두고 이만 집에 들어가자 했다. 그런데 올려놓은 손에 느껴지던 감촉이 차마 잊히지 않았다. 화단으로 다가가 넓은 이파리 하나를 뜯어서 흙을 털어냈다. 그리고 그 위에 파랑새를 올려둔 뒤 나는 계단을 빠르게 올라갔다. 찬장을 열어 잘 쓰지 않는 간장 종지에 생수를 부어서 화단으로 다시 돌아갔다. 새는 여전히 초록 잎사귀 위에서 어떤 미동도 않고 한쪽으로 누운 상태였다. 나는 새의 몸체를 조심스럽게 잡고 하늘을 향해 눕혔다. 그리고 검지 손가락을 이용하여 가슴 부위를 부드럽게 마사지했다. 너무 세게 누르면 압박이 클 것 같아 작은 원을 그리듯 검지를 시계 방향으로 돌렸다. 가슴부터 배까지는 하얀 털로 뒤덮여 있었는데 성체가 된 뒤에도 지금과 크기에는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은 새였다.
작은 새는 제법 귀여웠다. 야외에서 사는 새처럼 보이지 않고 가정집 새장 안에 있다가 세상 구경을 나온 건 아닐까 싶었다. 최근 이정모 관장님 강의에서 새의 말로에 대해 듣게 되었다. 새는 죽기 3초 전까지도 자신의 죽음을 예견할 수 없다는 거였다. 그 얘기를 듣고 조생에 대해 막연히 하늘을 날 수 있어서 부러워한 일이 떠올랐다. 다음 생에는 자유로운 새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 때도 있었다.
검지의 강약을 조절하며 흉부에 압박을 가한 지 얼마나 됐을까, 파랑새가 기적처럼 눈을 떴다. 작은 희망의 끈 하나를 부여잡고 시도했던 일에 한 줄기 빛을 본 기분이었다. 검은 콩알만 한 새의 동공을 보니 다시 생으로 돌아온 것이 확실했다. 종지에 담아 온 생수를 새 부리 앞에 밀어놓았다. 금세 물을 다 마신 파랑새는 몸을 부르르 떨고 날개를 한번 들썩였다. "살았구나"하는 탄식이 나왔다. 옆에서 지켜보던 언니도 생명체가 죽음까지 닿았다가 생으로 돌아온 것을 신비로워했다. 나는 새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파랑이". 파랑이는 기력이 돌아온 뒤에도 날아가지 않고 쫑쫑쫑 내 주변을 맴돌았다. 나는 이 기류를 틈타서 언니에게 파랑이를 집에 데려가서 키우자는 제안을 했다. 새벽 5:00부터 집안을 환기시키고 매일 집안 구석구석을 쓸고 닦는 언니는 거절했다. 집안에 새장을 두고 키우면 새가 똥도 쌀 것이고, 공기 중에 조류의 냄새가 감돌 거라고 했다. 나는 한 발 물러서서 집안에 새장을 두지 않고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제안했다. 거실의 베란다 샷시를 열면 에어컨 실외기를 두는 거치대가 비어있으니 그곳을 활용해 보자는 거였다. 생각나면 샷시를 열어서 그때 돌보면 되지 않느냐고 했다. 언니는 이 부탁 역시 거절하고 싶은 눈치였으나 이내 생각을 고쳐서 자비를 베풀었다.
나는 얼른 빈 홈런볼 과자 박스 안에 파랑이를 담아서 집으로 데려왔다. 따뜻한 계절이라 야외에 둥지를 마련해 줘도 파랑이가 춥지 않게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거처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비루한, 과자 박스와 홈런볼 용기가 전부였지만 아늑하게 꾸며주려고 노력했다. 바닥에 화단에서 퍼온 흙을 담고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정사각형 모양의 탑을 쌓았다. 자연적으로 어미가 손수 만든 둥지 느낌이 나게 했다. 새의 종류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만 벌레류나 풀을 먹나 하는 생각이 맴돌았다. 냉장고에 있던 상추 하나를 꺼내 잘게 잘라서 넣어주었다. 그리고 단백질 공급이 좀 필요하겠다 싶어서 나무젓가락으로 지렁이를 집어서 넣어 주었다. 파랑이는 잡아다 준 먹이를 먹지 않았다. 내가 계속 지켜보고 있어서 식사를 편하게 못하는가 싶어 자리를 피했다.
해가 뉘엿뉘엿 질 저녁 무렵 머릿속에서 파랑이 생각이 떠나지 않아 문을 열였다. 빈 둥지만 덩그러니 있을 뿐 파랑이는 없었다. 그제야 내 삶 안으로 파랑이를 들이려 했던 건 로망에 불과한 일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파랑이에게는 날개가 있어 어디로든 갈 수 있는 힘이 있다. 다만, 잠시나마 파랑이를 살렸다는 기분에 취해 협소한 생활영역 안에 가두려 했다. 파랑이가 떠난 공간을 청소했다. 서로의 숨결과 체온이 닿은 건 각별한 인연이다. 이번 생에 보이지 않는 끈으로 서로 연결됐다는 생각을 했다. 파랑이는 어디선가 잘 살고 있을 것이다. 파랑이가 내게 남기고 간 것은 작은 손안에 느껴진 삶에 대한 미약한 고동, 그럼에도 살아가려 자리를 박차 오르는 에너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