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궁은 언제 안녕할까
자궁에 근종이 또 생겼다.
1. 의료 쇼핑이 된 병원 투어
휴가를 내도, 토요일이 돼도 늦잠을 잘 수가 없다. 병원 진료 시작 시간인 9시에 맞춰서 병원투어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병치레를 크게 해서 입원한 적은 없어도 작은 몸의 이상 징후만큼은 금세 포착한다. 이십 대부터 자궁에 혹이 발견돼서 계속 추적관찰을 해오던 터였다. 크기가 5센티미터가 넘어서 수술 일정을 잡기도 했다. 자궁을 적출하자는 소견도 받았었다.
이런저런 산부인과를 전전하며 느낀 것은 의사마다 같은 혹을 두고도 진단과 이후의 진료 소견은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의료도 쇼핑처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산부인과를 전전하며 그때마다 다른 의사 앞에서 치마를 입고 진단을 받는다. 그리고 또 초음파를 받고, 모니터상으로 나타난 내 자궁의 건강 상태와 혹의 크기에 대한 설명을 처음 듣는 것인 양 듣는다. 나는 이미 일주일 전 다른 의사에게 초음파 진단을 받아서 혹이 있다는 걸 알고서도 다시 질문을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2. 몸과 마음을 아는 의사를 찾아서
오늘 나를 진단해 준 의사는 나이가 지긋한 여자 원장님이셨다. 사람 얼굴에서 풍겨오는 분위기를 중요시하는 터라 연륜 있는 얼굴을 마주했을 때 마음이 푸근했다. 생리 주기도 너무 들쑥날쑥하고 올여름부터 한 달 중 이 주일 간 혈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원장님이 "민감한 성격이면 스트레스받았을 때 호르몬이 아래로 향해서 그렇게 돼요."라고 하셨다.
내가 생각해도 몸과 마음은 하나다. 신경 쓰는 일이 있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랫배에 아릿하게 통증이 느껴진다. 신체적으로 좀 무리를 했다 싶으면 하혈을 한다. 어떻게 보면 참 단순한 몸이다. 그렇기에 나는 몸에 피로감이 느껴지거나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얼른 몸부터 돌본다. 하루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 주일 간은 몸의 컨디션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푹 자고, 잘 먹고, 좋아하는 것들을 한다.
원장님이 하의를 병원복으로 갈아입은 후 진료실로 나오라 했다. 나는 평소 치마를 잘 입지 않는 터라 이 분홍치마를 입을 때 제일 어색하고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 궁금하다. 진료 의자에 올라가서 자리를 잡자 원장님이 들어오셔서 초음파 진료를 시작했다. 4년 전부터 꾸준한 유산소 운동으로 5센티미터 물혹이 자취를 감췄었다. 그런데 오늘 모니터를 통해 2센티미터 크기의 혹이 확실하게 보였다.
3. 신뢰와 믿음으로 결정하는 치료
고심 끝에 오늘 이 병원에 와서 원장님께 최종 진료를 받은 거였다. 오늘 진료해 주신 원장님은 조직을 떼서 자궁경부암 검사를 먼저 해보고, 채혈을 한 후 난소암 검사도 받아보자고 하셨다. 혹의 크기가 크지 않으니 추적관찰을 해보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이제야 정착할 병원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궁에 근종이 있을 시 5센티미터까지는 수술을 하지 않는 거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먼젓번에 간 병원에선 자꾸 수술을 당장이라도 해야 한다고 하니 의문이었다. 여성의 자궁에 혹이나 폴립이 생기는 건 비일비재하다고 알고 있다. 내 몸이 소중하기에 수술을 바로 결정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좀 수고롭더라도 다른 병원을 찾아본 것인데, 잘 찾아와서 다행이었다.
이래서 병원도, 의사도 나와 맞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예민하지 않되 세심한 사람을 좋아한다. 의사와 환자 사이도 관계이다. 서로 대화의 호흡과 진료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그다음 관계로 나아갈 수 있다. 더구나 내 몸을 진료하는 의사를 아무나 선택할 수는 없는 일이다.
4. 몸에 새겨진 관계 스트레스의 흔적
그래서 다음 주 목요일에 또 검사결과를 듣기 위해 병원에 방문해야 한다. 올봄부터 내가 근무하는 곳에 새로운 사람이 오느라 적응해야 했다. 설상가상 나에게 너무 무례한 직원으로 인해 고심한 기간이 길었다. 이제 갓 입사한 신입직원이 노골적으로 나에게는 퉁명스럽고, 다른 두 명의 직원에겐 정중했다. 그리고 내가 하지 않은 실수를 했다고 결정적 증거도 없이 꼬투리를 잡아내는 일이 잦았다. 이건 직장 내 괴롭힘에 가까웠다.
상부에 보고를 해도 "직원끼리 서로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상사의 조언에 목구멍으로 넘어가려다 식도에 음식물이 걸린 것처럼 답답함을 느꼈다. 나를 지키기 위해 격하게 내 표현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할 정도로 회사에서 일어났던 일을 반추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수면의 질도 좋지 않았다.
그런 관계 스트레스들이 쌓이고 쌓여 내 몸에 혹 덩어리로 뭉쳐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체 징후들이 하나둘 염증으로 나타나며 내 몸에 흔적을 남긴다.
5. 이제 나를 일 순위로 두는 삶
남과의 관계를 탓하기보단 내가 명상이나 효과적인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아야 한다. 좋은 사람이 어디에나 있듯, 나에게 해가 되는 인간도 어디에나 있다. 이 사람을 피해서 가면 그보다 더한 사람을 만나게 마련이다. 아무리 운전을 잘하는 베스트 드라이버라 해도 갑자기 들이받는 차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사고를 당한다. 그와 같이 내가 상대에게 아무리 예의 있게 대한다 해도 그만한 예의와 배려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된 사람은 터무니없이 많다.
그것도 관계의 결이 맞아야 서로의 선을 존중하기 마련이다. 이 선을 넘기 시작할 때 우리는 갈등의 관계에 직면한다. 그 갈등을 잘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고민을 하게 되고, 그 고민의 시간은 또 스트레스가 돼서 돌아온다. 집에 돌아와서도 쉽사리 잠을 못 이루고 발로 이불 발차기를 하는 순간도 있다.
스트레스가 모든 만병의 근원이라 하면 아마 내 자궁은 "안녕"할 틈이 없을 것이다. 나는 이제 건강이 너무 중요한 나이에 접어들었다. 내 곁에 누가 어떤 존재로 남을지 단정할 순 없지만, 이제는 내 몸의 신호를 최우선으로 맞아들이기로 했다. 병원에 다녀온 후 소고기를 먹고 약을 복용했다. 이제부터 더욱 나를 일 순위로 두고 살아가는 일에 전념을 할 것이다.
개운하게 자고 일어나서 온몸의 정신을 일깨우듯 안녕하며 기지개를 켜는 나의 하루를 지켜나갈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내 자궁이 진정으로 "안녕"을 고할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