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는 일

by 새벽일기


나에게 최고의 안티에이징은 독서모임이다. 책을 읽고 이야기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외모는 사십의 느낌일지언정 내면은 어려지는 것 같다. 함께하는 멤버들은 모두 여성이다. 주로 책과 잘 어울리는 카페의 세미나실을 모임장소로 예약한다. 세미나실에는 칠판이 있을 때도 있고, 대형 모니터가 설치된 곳도 있다. 모임 멤버들의 나이대는 다양하나 열 살 차이가 무색하게 내가 배우는 일이 더 많다. 통통 튀고 재치 있는 생각을 들으면 귀엽다.. "나도 한때 찬란하게 빛났을까."하고 아련한 추억에 젖기도 한다.


언젠가부터 나는 술을 마시고 왁자지껄 떠드는 자리를 피하게 됐다. 대신, 맥주 한 잔을 마셔도 심도 있는 토론을 하는 모임에 가입하게 됐다.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할 때도 있었고, 어떤 달에는 서로 다른 책을 읽고 자신이 읽은 책을 소개하기도 했다.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시선에 대해 일깨워주는 게 좋았다. "사람의 생각은 이렇게나 서로 다르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친구로 사귀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책을 통해 그 사람이 가진 가치관을 알 수 있다. 일단 우리에겐 취미가 독서라는 무궁무진한 이야깃거리가 있다. 그것만으로도 커피 한 잔을 놓고 두 시간이고 어색하지 않은 사이가 될 수 있다. 나는 대체로 책 이야기를 멋있게 하는 사람에게 반한다. 리처드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알기 쉽게 설명해 준 사람에게 호감을 느껴 사귄 적이 있을 정도다. 문학 장르에 편중해서 독서하던 내게 과학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사람이다.


이번 모임에서 선정한 책은 <지위게임>이라는 책이다. 모임이 아니었다면 굳이 읽진 않았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표지의 책. '윌 스토'라는 소설가가 인간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관계의 메커니즘을 "지위"라는 측면으로 놓고 해석한 책에 가깝다. SNS에서 누르는 "좋아요"의 의미, 마녀사냥, 인간의 본능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다른 모임에서 같이 읽고 있는 책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접목시킬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 교차로 읽어가며 독서를 했다. 히틀러라는 인물에 대해 두 책 모두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히틀러의 행위는 인간이 범할 수 있는 최악의 폭력 중 하나였다. 그런데도 한 사회가 그를 '구원자'로 받아들였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은 모임에서 우리가 지위를 논할 때 계속 떠오른다. 1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으로 인해 독일 국가의 위상은 급격히 추락했다. 독일 국민들의 하늘 높았던 자부심은 패전국이란 상징 앞에 모멸감과 열등감으로 다가왔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상당한 부자들이 많았다. 어떤 타겟층이 필요했고, 히틀러는 인종 청소에 가까운 학살을 계획했다. 자신들이 겪은 상처를 다른 이에게 전가시킬 수단. 그리고 자신들이 우월해지기 위한 방편으로 독일 인종들이 쉽게 하나가 되기 위한 것. "배제"였다. 이처럼 거대한 악의 근원을 '지위'의 관점에서 분석해내는 모임원들의 통찰은, 생각의 유연함을 유지하는 원동력이다.


일상에서 쓰는 가면인 페르소나도 생존과 지위의 상승과 긴밀한 측면이 있다. 인간이라는 종이 생존해서 모든 생명체의 피라미드 맨 꼭대기에 올라섰다. 인간 종임을 내려놓고 그 얼굴에 영장류(침팬지)의 가면을 씌워본다. 그러면 저 사람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가"에 대한 이해가 조금 쉽다. 물론 마음으로 이해하느냐와는 별개다. 서로 털을 골라내주기 위해 바싹 붙어 다닌다. 털 속에 있는 이를 골라내주는 건 생존과 직결된다. 야생에서 살아가려면 유해한 세균으로부터 겉을 둘러싼 피부를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업은 친밀과 서열의 확인이자, 생에 대한 본능적인 몸부림이다. 무리 짓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고, 그 무리에서 어느 지위에 속하느냐는 살아감에 있어 얼마나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느냐와 연관된다.


돌이켜보면 나는 지위에 대해 깊게 고민해 본 적이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며 살기엔 삶이 너무 바쁘다고 느꼈다. 그리고 어쩐 일인지 누가 어렵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 그냥 태어났으니 인생을 살 뿐이고, 그저 주어진 삶에서 내 몫을 다하려고 했다. 지위, 정치, 우월감에 대해 생각이 머무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수평적인 사회를 지향하는 건 아니다. 그냥 각자의 삶에 충실하고, 남에게 굳이 해가 되지 말자는 정도랄까.


책 이야기에서 파생해서 다니는 회사의 분위기와 문화에 대해 공유한다. 다른 사기업의 체계가 이렇게 돌아간다는 것을 들으면 다른 세계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예술계는 이렇구나, 대기업은 이렇구나, 교육 쪽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런 분위기구나 하는 것을 들으면서 "다른 직업을 선택했다면 난 어떻게 살았을까"하는 상상도 한다. 열린 자세로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태도가 좋다. 내가 원하는 장르의 책이 선정되지 않아도 읽다 보면 어떻게든 나눌 이야깃거리가 생긴다. 모르는 부분은 질문하고, 프레젠테이션으로 발표도 한다. 구성원들은 각자가 가진 정보와 팁을 공유한다. 이 모임들에 참여하며 나는 그들에게 무엇을 주고 있을까. 느슨하게 연결된 관계 속에서도 관심과 친밀감을 갖게 된다. 책이라는 물성은 우리를 한데 엮어서 조금 다른 삶을 경험하게 해 준다. 세월이 흘러 외면은 중년을 향해간다. 책을 곁에 둔 모임원들에게 받는 인생의 피드백은 피부시술을 받는 것보다 효과적이다. 청춘이 가진 에너지를 고스란히 내면에 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