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하모니의 순간들

함께 만들어지는 소리

by 새벽일기


캐럴이 흘러나오지 않는 연말이 어느새 성큼 다가왔다. 회사 승강기를 타자 정면에 A2사이즈의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정오의 음악회"라고 큼지막한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클래식음악 애호가까진 아니어도 음악이 주는 치유의 힘을 느낀 적이 있다. 베틀의 씨줄과 날줄이 촘촘하게 짜인 것 같은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는 시간일 것 같았다. 마침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무라카미하루키의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레코드>라는 책을 구입해서 소장 중이었다. 또 내가 주기적으로 참석하는 모임에도 클래식음악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분이 계셔서 자연스럽게 클래식이라는 장르가 일상에 머물러 있음을 느끼게 됐다.


음악회 팸플릿을 받아 들고 세 번째 줄 무대와 가까운 곳에 앉았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순으로 단원들이 반원을 그리며 서있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자태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남자들은 호리호리하고 순한 인상에 눈빛에는 우수가 깃들어 있었다. 예술하는 사람들만의 분위기가 로비에 은은하게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여자 단원들의 흰 피부 위로 융단처럼 흐르는 레드 드레스가 빛에 반짝였다. 이것만으로도 오늘의 음악회를 기대할 이유가 충분했다.


사회자가 연주자들의 프로필을 소개하고 곧이어 연주가 시작됐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단원들이 연주한 음악이 무엇이었는지 자세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이었고 격정적인 연주에 감전되는 것 같은 감동을 느꼈다. 그러나 지금 그날의 연주회를 돌이켜보면 선율보다 더 나를 숙연하게 했던 기억의 편린이 떠오른다. 연주가 클라이맥스를 향해 갈수록 악기의 반동과 연주자들의 몸짓은 격렬해졌다. 나 또한 그 감정과 연주의 열정적 기운에 매료되어 갔다. 그러던 중,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교수님의 몸 반동으로 인해 악기를 고정시키는 역할을 하는 턱받침대가 분리되었다. 턱받침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고 파손이 된 것 같았다. 뜻밖의 상황에 연주자는 살짝 놀란 듯했으나 마치 악보에 디미누엔도(diminuendo : 점점 약하게, 점점 여리게 연주하라.)가 적힌 것처럼, 다른 단원들도 연주의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두의 애티튜드가 실수를 한 연주자에게 응원을 하듯 배려가 자연스러웠다. 나머지 관객들도 그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었다. 간간이 관객석에서 나오는 환희의 웃음조차 이 상황에 스며들어 우리 모두가 무대의 오케스트라처럼 느껴졌다. 배려와 관용의 정신이 무대에 어우러져 그 어떤 음악보다 감미로움을 선사하고 있었다.


이내 응원에 힘입어 사회자는 턱받침대가 수리되는 동안 조금 더 자세하게 단원들을 한 명 한 명 소개했고, 나는 그들의 근사한 애티튜드를 눈으로 담으며 감탄했다. 그러나 턱받침대는 여분도 없는 것 같았고, 수리가 불가능했던 모양이다. 자리로 돌아온 교수님의 턱엔 수건이 고이 접혀서 바이올린과 턱 사이를 지지하고 있었다. 연주가 다시 시작됐다. 여전히 연주 음에 맞춰서 단원들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음악과 한 몸이 되어 온몸이 악기의 일부인 것처럼 잘 어우러지는 연주를 들려주었다. 나의 시선은 임시로 고정시킨 수건과 바이올린, 그리고 연주자의 턱 사이에 머물렀다. 아직도 몇 곡의 음악이 남아있는데 턱이 아리진 않을까 걱정이 됐다. 이런 염려가 무색하게 연주자는 턱이 부서지도록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말이 아닌 태도로 배운 것이 있었다.


연주는 막바지에 다다랐고 1시간여의 음악회는 우리 일상에 여유로움을 선물했다. 일상이 촘촘하게 짜인 직물과 같았다면 음악회 직후의 여운은 뜨개실로 엮은 몽글몽글한 목도리를 두른 기분이었다. 사실 음악회를 감상할 즈음 나는 협업에 대한 생각에 골몰해 있었다. 음악회에서의 에피소드는 내게 해답을 주었다. 좋은 음악은 좋은 발상과 영감의 길로 나를 안내한다. 나는 '정오의 음악회'에서 받은 에너지를 잊을 수가 없다. 그들이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촉망받는 학생이자 교수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비록 몸 담고 있는 직업 분야는 다르지만 우리는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느슨한 연대의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이 지칠 때는 클래식을 듣자. 그리고 예술을 가까이할 때 우리는 한 차원 높은 단계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걸 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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