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지칠 때면 와이키키 해변이 떠오른다. 바닷가 앞에 돗자리를 깔고 맥주 한 캔을 마시다가 낮잠에 빠져드는 여유를 좋아한다. 어디서든 누워서 뒹굴거릴 수 있는 너른 초원이나 모래 평원이 있다면 환영이다. 하와이의 긴 비행시간을 떠올리면 쉬운 여정은 아니다. 반면 푸른 잎의 야자수와 에메랄드 빛깔, 알알이 부서지는 하얀 모래를 떠올리면 감안하고 떠날만한 여행지이다.
비록 렌트를 하는 것보다는 이동시간이 더 걸리긴 하나, 하와이는 버스 여행이 가능한 여행지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여행이 가능하다는 점은 장롱면허증 소지자인 내게 안성맞춤이다. 도착해서 이틀을 호텔 앞에 있는 와이키키 해변가에서 뒹굴다가 새우트럭을 찾아 떠나기로 했다. <디스 이즈 하와이>라는 여행책에 나온 여정 중에 고심해서 고른 일정이었다. 그날은 하와이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한다는 "지오반니 새우트럭"에서 새우를 양껏 먹고, "선셋비치"라는 곳을 가기로 했다. 정류장과 정류장의 간격이 가깝지 않고 꽤 멀었다. 도로의 한갓진 곳에 있는 농장 같은 장소를 몇 군데고 지나갔다.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게 맞나"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여행은 낯선 곳의 문화와 거리를 즐겨야 하는 것인데, 계획적인 나는 예상 밖의 순간에 늘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여행은 미리 그려놓은 스케치를 재빠르게 관찰 후 다시 수정하는 크로키와 닮았다. 지금 이 공간에서 더 이상 겁만 먹고 있을 순 없었다. 장장 9시간을 비행기 타고 날아왔는데 보람 있는 추억을 만들고 싶었다. 책자에 적힌 대로 버스를 제대로 탄 것은 맞았다. 양쪽으로 창밖을 계속 바라보며 안테나를 곤두세우고 1시간이 넘게 도로를 달렸다.
여행책자에 실린 사진과 같이 트럭 몇 대가 모여있는 것을 발견하자, 한결 마음이 놓였다. 얼른 벨을 누르고 내렸다. 지오반니 새우트럭이 어디인지 살필 필요도 없이, 사람들이 받아든 접시 위 통실하게 여문 새우가 먼저 보였다. 나도 한 접시 받아 들고 주변의 나무그루터기에 앉았다. 새우의 몸체가 우리나라에서 먹은 대하보다 세 배정도 큰 것 같았다. 같이 곁들여진 레몬을 새우 위에 뿌려 맨 손으로 껍질을 까서 먹었다. 섬 지역의 특성인지 자꾸 바람이 긴 머리칼을 어지러이 흩트려 놓았다. 손으로 새우를 까랴, 자꾸 얼굴에 들러붙는 머리카락을 떼내랴 정신이 없었다. 만족한 식사를 마치고 다음 장소인 선셋비치로 이동했다.
'선셋비치'에 가서 저물어 가는 석양을 만끽했다. 수채화처럼 농도를 달리 한 노을빛이 하와이의 해변가에 내려앉는 풍경에 감탄했다. 마치 지구의 끝 지점에 와있는 것처럼 넋을 놓고 감상했다. 하얗고 고운 모래 위에는 곱슬머리 남자아이가 몸을 파묻은 채 엄마에게 모래를 뿌리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엄마는 아이가 모래장난을 치며 발그레 웃는 모습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모든 순간이 평범하지만 평온하게 느껴졌다. 그제야 어딘가로 떠난다는 것이 일상의 권태로움을 깨고 프러포즈를 받는 경험에 가까운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익숙한 장소를 벗어나 낯선 환경에서 마주치는 보통 순간을 특별하게 간직하는 경험, 이것이야말로 여행이 주는 선물의 순간이 아닐까 싶다.
나는 여전히 여행을 떠나지 않지만 예전 하와이까지 날아가서 마주한 순간들은 기억 속 한 공간에 생생히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