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의 그늘에 가려진 여유
신사역 가로수길에서 약속이 있어서 서둘러 나가는 길이었다. 8번 출구에 이르는 지하철 오르막 계단을 올랐다. 약속장소인 가게까지 찾아가는 길이 헷갈려서 네이버지도 어플을 켰다. 여전히 시선은 휴대폰에 붙박은 채였다. 계단 한 칸만큼의 보폭을 내디뎠다고 착각했다. 발의 옆날로 바닥을 짚는 순간, 비명을 지르며 오른쪽으로 주저앉았다. 뒤에 오던 여자가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넣어 나를 일으켜 주었다. 도움을 받길 원치 않았으나 오른 발목이 안쪽으로 꺾이는 "우두둑"소리가 났고 발목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등줄기에 땀이 주룩 흘렀다. 모르는 사람에게 더 이상 도움을 받을 수 없어서 나는 괜찮다고 안심을 시킨 후 쩔뚝쩔뚝 걸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오른 발목에 번개가 내리 꽂히는 기분이 들었다. 액정 모서리가 깨진 휴대폰은 내 손에 여전히 들린 채였다. 다음 날 정형외과에 가서 X-ray를 찍었다. 의사가 내게 어쩌다가 넘어졌는지 물었다. 나는 마치 무용담을 이야기하듯 상세하게 넘어진 상황을 설명했다. "...... 그래서 발목이 접히는 소리가 들리더니 제가 오른쪽으로 넘어진 거죠." 의사는 넘어질 때 얼마나 놀랐겠느냐며 자신의 일처럼 반응을 해주었다. 다행히도 평소의 운동 효과가 이럴 때 발휘되었는지 유연한 발목 인대는 파열되지 않았고 부은 상태만 며칠 유지했다.
지하철이고 버스를 탈 때마다 옆에, 앞에 앉은 사람 모두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특히 아침 출근길 러시아워일 때도 사람들은 고개를 휴대폰 쪽으로 꺾고 있다. 대한민국 사람들 단체로 최면에 걸린 것처럼 열에 아홉은 휴대폰만 본다. 마치 그들이 고개를 들면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을 것만 같다. 이쯤 되면 휴대폰은 인간의 제2의 장기가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다. 휴대폰 없이 하루를 산다는 것이 나 역시 개운하지 않은 하루가 될 것 같아서다.
더 이상 인연을 이어가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들게 하는 상황이 있다. 사람을 앞에 두고 휴대폰을 계속 들여다보는 사람이다. 모임의 순간 온전한 머무름의 분위기를 중시하는 편이다. 어떤 양해의 말도 없이 앞에 사람을 두고 휴대폰으로 한참 볼일을 보는 태도는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그런 상황에선 배려심이 부족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상황이 반복되면 내게 밥을 먹자고 해도 나는 "응~ 언제 먹자~"라고만 할 뿐 약속을 잡지 않는다. 그에게는 휴대폰이 앞에 있는 사람보다 더 중요한 볼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소중하고, 나 역시 시간을 쪼개서 약속을 잡는다. 사람을 만날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사람에게 시간을 선뜻 쓰고 싶지는 않다.
얼마 전 사무실에 같이 근무하는 사회복무요원이 근무시간에 보이지 않아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만 울릴 뿐 전화를 받지 않아서 답답했다. 몇십 분 후 볼일을 마치고 돌아온 그에게 "왜 전화를 안 받느냐."라는 말부터 나왔다. "어디 가있었느냐."라는 말도 그 안에 내포되어 있었지만, 부재중 전화로 인한 답답한 기분이 먼저였다. 그는 해맑게 웃으면서"디지털 디톡스 중입니다."라고 했다. 이미 어디 가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다음 든 생각은 "휴대폰 없이 어떻게 살아?"였다. 그러나 입 밖으로 그 말은 꺼내지 않은 채로 "프리랜서가 전화를 받아야 일을 할 텐데, 휴대폰 디톡스가 무슨 말이야."라는 말이 나왔다. 말을 하고 보니 괜한 참견이었나 그냥 자리로 돌아온 대로 해야 할 일을 주지시켜 주는 선에서 끝낼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허나 그쯤 나는 순수하게 정말 그가 휴대폰을 두고 어떤 방식으로 활동을 하는지가 궁금했다.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일지 그의 하루를 가늠해 보았다. 어쩌면 디지털디톡스를 실천하지 못하는 나에 대한 역질문일지 몰랐다. "너는 휴대폰 없이 살 수 있니?"라고 하는.
휴대폰의 외형은 급격히 변화해 왔다. 가로본능부터 지금의 플립폰까지.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손에서 휴대폰을 놓고 살지 못한다. 거북목이 되어가고, 등은 굽어간다. 아무리 휴대폰 액정의 크기가 다양해졌다고 해도 작은 액정화면을 오랜 시간 들여다보고 있으면 눈이 빠질 것 같다. 시력은 급격히 저하된다. 손목터널증후군에 시달리며 필라테스를 등록하러 가고, 시간을 내서 체형을 바로잡는다.
손에 휴대폰을 쥐고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 인류의 풍경이 언젠가는 바뀔지도 모른다. 저마다 멋진 디지털스마트글라스를 착용하면 눈앞에 홀로그램이 나타난다.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어깨 승모근에 힘을 바짝 주지 않아도 작은 손짓 하나로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눈동자를 좌우 상하로 움직여서 클릭한다. 스마트글라스를 쓰는 순간 뇌파가 감지돼서 인간의 욕구가 무엇인지 가늠한다. 드디어 장시간의 손목 노동운동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기기가 글라스로 바뀐다 한들, 우리의 '시선'은 어디를 향하게 될까. 손목의 자유를 얻는 대신 우리는 정말 부제처럼 '가려진 여유'를 되찾을 수 있을까. 화면 너머가 아닌,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의 눈을 온전히 바라보는 법을 잊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