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허술한 빈틈에 관하여
사회 초년생 시절, 계장님이 내게 조언을 했다. 물론 맨 정신은 아니고 회식 끝 무렵 거나하게 술에 취해서 한 말이라 한 귀로 흘려들었다.
"OO씨, OO씨는 빈틈이 없어. 술에 취해서 좀 흐트러진 모습도 보여주고 해야 남자들이 작업을 걸지."
회사에서 흐트러진 모습을 쉽사리 보일 만큼 친밀함을 느끼지 못할 때였다. 그래서 아마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나보다. 알고 보면 나는 구멍 숭숭 뚫린 치즈에 가까운 사람이다. 사람은 오랜 시간 겪어봐도 제대로 알까 말까다. 옆에서 살을 접붙이고 살아도 내가 아는 이가 그 사람인가 싶은 순간이 있다. 내 부모님도 온전히 나를 알진 못할 것이다. 엄마는 "내가 너를 낳았는데 네 속을 훤히 안다."라고 한다. 이는 자식을 알고 싶은 착각에 불과하다.
나는 종종 매운 닭발을 먹을 때 정신이 혼미해진다. 입 안에 열을 식히기 위해 음료 뚜껑을 열지 않고 컵에 따르는 행동을 반복한다. 나는 상처를 준 사람의 이름은 이상하게도 기억나지 않는다. 해마에 안개가 뿌옇게 낀 느낌이다. 나는 종종 디카페인으로 주문해야 한다는 사실을 깜빡한다. 지금은 자정인데 아침에 마신 카페인을 해독하지 못한 채 에세이를 쓰고 있다.
빨리 해결하려는 성미가 있다. 때론 볕 내리쬐는 지붕 위 大(대)자로 낮잠 자는 고양이처럼 여유롭다. 그래서 누군가와 약속을 하면 머릿속에 상기하며 반복해서 기억한다. 그러지 않으면 약속을 한 사실 자체를 잊어버려 민망한 상황이 생기곤 한다. 책을 주기로 했다면 집에 들어오자마자 포스트잇에 적어 현관문 앞에 붙인다. 'OO에게 책을 주기로 했음. 잊지 말 것.' 이런 나를 알기에 약속이 있을 때 늦지 않으려 한다. 연어가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오르듯, 사람 사회에서 더불어 살기 위해 성심을 다한다. 그 결과 사적 인맥에서도 "성실하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럴 땐 "내 속도 모르고……"라는 생각을 한다. 타인이란 서로를 오해하며 알아가는 것이다. 아무튼 노력하며 살고 있다는 걸 인정한다. 내가 나를 인정하면 세상살이는 꽤 괜찮은 편이다.
기회가 된다면 다른 나라에서도 살아보고 싶다. 그 나라에 살면서도 내가 노력하며 살고 있을지 궁금하다. 나라는 사람의 본질은 문화적 환경이 바뀌면 어떤 영향을 받을까. 그곳에선 허술한 모습을 유지하며 살고 있을까. 그러면 사회초년생 때 계장님의 조언처럼 보호본능을 자극해서 남자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어쨌든 인간은 궁극적으로 사랑을 추구하기 마련이니까. 그러고 보니 그 시절 잠깐이나마 내게 구애했던 이들은 저마다의 짝을 찾아 잘 살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