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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문자cho Sep 06. 2021

나는 죽고 싶을 때조차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죽느냐 사느냐' 고민하던 햄릿은 INTJ?

    문학사의 가장 유명한 고민은 INTJ가 남겼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가장 먼저 쓰여진 책이자, 인류가 사랑한 셰익스피어식 파국의 물꼬를 튼 작품, <햄릿>의 주인공 ‘햄릿’의 고민이다.


    스포일러가 있는데, 여기서 ‘셰익스피어식 파국’은 작가가 꼬일 대로 꼬인 서사를, 주인공을 포함한 대부분의 주변 인물을 죽임으로써 결말짓는 것을 말한다. 셰익스피어의 주인공은 대체로 부와 명예를 가진 상류층 인물이고,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 결함을 가졌다. 그리고 책의 제목을 헌정받는다는 특징이 있다.


    이것을 알아두면 <햄릿>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도 대충 이 책의 ‘와꾸’가 느껴질 테다. 대충 ‘햄릿’이라는 이름의 귀족층이 아주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고, ‘죽을지 살지’ 고뇌하다가, 끝에 가선 죽는구나……


    하지만 이렇게 결말을 알면 더 궁금해지는 것이 단연코 셰익스피어의 매력이기도 하다. 궁금하지 않은가? 햄릿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햄릿은 덴마크의 왕자다. 갑작스럽게 아버지를 여의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삼촌 되는 사람이 왕위에 올라있고,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막장’이라 불릴 상황이지만, 햄릿이 이 때문에 죽고 싶은 것은 아니다.


    비통하지만 그럭저럭 방황만 하며 지내던 어느 날, 햄릿은 왕실의 보초병들이 돌아가신 선왕인 자신의 아버지를 닮은 유령을 본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이 귀신은 곧 햄릿 앞에도 나타나고, 자신의 죽음이 사고가 아닌, 삼촌 클라우디우스의 계획된 독살이었다고 전한다. 때문에 자신이 연옥의 고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대신 복수 해줄 것을 햄릿에게 청한다.


    여느 주인공은 이런 상황에 어떻게 반응할까. ENFP 햄릿은 ‘미쳤어, 귀신을 보다니 내가 드디어 맛이 갔어’ 생각하며 제 머리를 툭툭 치지 않을까. ISFP 햄릿은 배신감에 통곡하며 무너져 내리고, 다신 삼촌과 말도 섞지 않을지도 모른다. ISFJ 햄릿은 ‘아버지가 나에게 살인을 교사 할리가 없어…’ 고개를 저으며 모든 굴레와 속박으로부터 떠날 채비를 할지도.


    ESTJ 햄릿은 왕의 암살이라는 사실이 국가적 혼란을 야기할 테니, 은밀히 아버지의 죽음을 다시 수사하도록 지시할 지도 모른다. ESTP 햄릿은 아버지 귀신을 붙잡고 국정의 안정과 당신 영혼의 평안을 위해 용서하는 것이 어떻느냐고 설득할지 모른다.


    우리의 햄릿은 이렇게 묻는다. ‘귀신이란 무엇인가’. 오감의 경험조차 액면가로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고차원적인 물음이다. 김영민 교수가 어느 칼럼에서 썼듯, "특이 사태에서나 던져지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햄릿은 묻는다. 자신이 본 것이 정말 아버지의 혼령이었을지, 아니면 스스로 만들어낸 환상일지, 그것도 아니라면 자신을 악의 구렁텅이로 유혹하려는 지옥의 사자 일지. 아버지의 혼령이 실제로 자신에게 왔다고 하더라도, 귀신이 진실만을 말한다는 보장은 사실 없는지, 귀신이란 자신 전생의 정보를 알고 증언하는 존재일지.




    모든 것이 궁금한 햄릿. 그는 당분간 ‘미친 척’을 하기로 한다. 왜? 가설을 확인할 정보수집에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삼촌과 궁의 동태를 유심히 관찰하면서도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함이다. 그렇다고 햄릿이 냉철하기만 한 성격은 아니다. 햄릿은 '죽느냐 사느냐'(3막 1장)를 고민하는 마음의 격동을 동시에 느낀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삼촌에 대한 판단만은 보류한다. 절체절명의 혼란 속에서도, 긴 시간 자신의 감정을 합리화하고 객관적 근거를 확보하려는 그가 ‘T’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햄릿에겐 계획이 있다. 삼촌이 저지른 살인을 그대로 재현하는 연극을 상연하기로 한다. 그를 본 삼촌의 반응에 비춰 진실을 확인해보겠다는 것. 꽤 확실한 계획이다. 잠자는 왕의 귀에 독극물을 흘려 넣는 동생을 본 클로디어스는 크게 당황하며 공연장을 황급히 떠난다.


    다음 단계는 복수. 때마침 햄릿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기도하고 있는 클로디어스를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햄릿은 삼촌을 죽이지 않는다. 클로디어스가 회개하다 죽으면 그의 영혼이 천국으로 가게 될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N’이 느껴지는가. 삼촌의 영혼을 확실하게 지옥으로 보내야 하는 햄릿은 잠시 잠깐 복수를 미룬다.


    많은 사람들은 절호의 기회를 놓친 햄릿의 우유부단함이 ‘P’를 가리킨다고 한다. 햄릿이 ‘J’라면, <햄릿>이 이렇게 길어지지도 않았을 거라고 한다. 햄릿의 복수는 즉시 이뤄지진 않지만, 더 완벽한 복수를 향한다. 그러니 긴 시간 동안 목표에서 초점을 잃지 않고 인내심으로 집중하는 모습이 더 큰 시사점을 준다.




     어떤 사람들은 중대사를 앞두고 자살부터 고민하는 그가,  내내 수많은 갈래의 생각에만 골똘히 잠긴 그가, ‘T’보다는 ‘F’  아니겠느냐고 한다. 햄릿은 미약한 우울증 증세를 보이며, 불안정한 모습으로 아버지에 대한 애도를 드러낸다. 하지만 햄릿이 겪는 우울함이 성격적 특성일  없다. 그것은 누구나 겪을 수 있다.


    햄릿의 감정적 깊이는 되려 그의 생각 논리에 더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에게 감정은 파고드는 자리가 아닌, 생각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길이기 때문이다. ‘죽느냐 사느냐’ 문제에 대해 햄릿이 내린 답이 무엇이었을지 아시는가. 34행에 걸쳐 이어지는 햄릿의 독백을 요약하면, ‘살자’는 희망도 ‘죽자’는 비관도 아니다. '생각할 수 없는 문제군'이다. 그는 무념을 사유한다.


    삶이 그 자체로 외면하고 싶은 고통을 내품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팩트. 하지만 죽음을 택하기엔, 죽음이 끝이 된다는 단서가 없으니, 불확실성이 삶의 고통을 이어지게 할 뿐이라는 결론이다. 삶은 합리적 결정이 불가능한 ‘정보의 비대칭’에 의한 결과라는 것이다.


    위기 상황에서 피어난 실존적 고민을 담백한 생각의 층계로 풀어내는 성격이 수많은 관객들과 독자들이 햄릿의 아픔에 공감한 이유가 아닐까. 상상력과 이성적 사고가 서로 대척점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햄릿을 느낄 수 없다. 인류사 가장 유명한 혼잣말이 괜히 INTJ에게서 나온 게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호기심과 객관적 실상, 이 두 가지가 공존하는 곳이 INTJ의 마음이다. 둘은 문제없이 양립할 뿐만 아니라, 꽤나 조화롭게 시너지를 낸다. 하지만 세상은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전부 허락하진 않는다. 논리의 영역을 빗나간 사각지대도 많다.


    그래서 INTJ는 인생의 많은 영역에서 모든 정보가 열려있지 않고, 완벽히 합리적인 결정은 어렵다는 것을 인정한다. 계획을 세우지만, 그것이 틀어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미완성의 정보가 늘 걱정이지만, 그렇게 걱정 많은 인생에서 걱정의 덧없음도 생각하기 때문에.




위니 더 햄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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