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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간의 유럽 여행을 마치고, 아부다비 공항에서

떠나야 보이는 것들 6

by 초초야


2025년 2월, 아부다비


“아니 근데, 한국 개 춥겠지?”

오랜만에 듣는 모국어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영원할 것 같던 여행이 끝나가고 있었다.


두 달 만에 다시 찾은 아부다비 공항. 한 시간 뒤면 비행기에 올라, 아홉 시간 뒤면 인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여행을 떠나보낼 준비가 안된 나는 서둘러 자리를 옮겼다.


다행히 게이트에서 멀어지자 한국어는 희미해졌고, 여행을 이어갈 수 있었다. 앞자리엔 아랍에미리트 전통 의상을 입은 커플이 앉아 있었고, 옷자락에선 익숙한 향이 났다. 두 달 전, 사디야트 문화지구에서 맡았던 바로 그 냄새였다.



비현실적인 스케일, 완벽하게 구획된 가로, 눈부시게 깨끗한 거리. 사디야트 문화지구는 마치 게임 속 세상 같았다.

‘이게 진짜 가능한 거였어?’


전문 잡지에서만 보던 기묘한 건축물이 눈앞에 펼쳐지자, 정신이 아득해졌다. 비현실적인 풍경에 취한 나는 셔터를 미친 듯이 눌렀다. 흰색과 회색으로 마감된 건축물은 거대한 모형 같았고, 그 앞의 나는 게임 속 캐릭터가 된 기분이었다.


어느새 노을이 지고, 새하얀 외벽은 핑크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때, 바람을 타고 달콤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이질적인 풍경과 묘하게 어우러지는 향.


바람을 따라 걷다 보니 해안가에 닿았고, 그곳엔 처음 보는 꽃나무가 있었다. 나는 까치발을 든 채 한참 동안 부드럽고 달콤한 냄새를 맡았다. 그 옆으론 사람들이 저녁 산책을 하고 있었다. 어두운 밤바다와 가로등 불빛이 그들의 의상을 더욱 또렷하게 만들었다. 흰색과 검은색.


낯선 풍경이었다. 내가 그들의 NPC가 된 것 같기도, 그들이 내 세상의 NPC가 된 것 같기도 했다.




다시 아부다비 공항. 맞은편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검정 베일 너머 그녀의 눈은 맑게 빛났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쳤다. ‘우리가 같은 영혼을 가지고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인종과 국적이 달랐다면, 전혀 다른 삶을 살았겠지?’


이번 여행에서는 런던과 포르투에서 한 달씩 머물며, 그들의 일상을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그동안 그들을 다른 세계 사람처럼 여겨왔다는 걸.


두 달 전, 런던에 있는 친구 집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집주인 할머니 가족도 함께였다. 배불리 먹고, 떠들고, TV를 보다 잠드는 풍경이 우리네 명절과 다르지 않았다. 끊임없이 음식을 내오는 할머니에게선 돌아가신 친할머니가 떠올랐고, 소파에 누워 배를 두드리는 그녀의 아들에겐 삼촌의 젊은 시절이 겹쳐졌다.


집 밖도 마찬가지였다. 공허한 눈빛으로 쿠키를 파는 아르바이트생을 보며 5년 전의 나를 떠올렸고, 퇴근길에 노래를 부르며 뛰어가는 남자에게선 1년 전의 나를 떠올렸다. 출근하면 집에 가고 싶고, 집에 가면 눕고 싶고. 사람 사는 건 어디서나 비슷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종과 국적이 만들어낸 경계는 생각보다 촘촘했다. 특히 다문화 도시에서는 개인의 출신과 인종이 곧 첫인상이자 정체성이 됐다. 다양성은 때로 장점이 되기도, 단점이 되기도 했다.


관광지만 둘러보던 여행으로는 알 수 없던 것이었다. 이번을 계기로 시야가 조금은 넓어진 것 같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더 유연한 시선으로 세상을 마주하고 싶다. 다음 여정이 기대된다.




저는 이번 여행을 통해 제가 얼마나 좁은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는지 깨달았습니다.

“여행이 끝난 뒤, 여러분 안에 남은 건 무엇이었나요? 그 여운을 함께 나눠주세요.”


초초야 인스타그램

@chocho_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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