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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코색담요 Feb 22. 2022

헬스장에서 만난 슈퍼맨들

이른 아침에 헬스장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비어 있는 기구를 찾아 어색한 폼으로 기웃거리지 않아도 되고, 식구들이 저녁 식탁에 둘러앉는 시간에 맞추기 위해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여유가 좋다.

이른 아침에 헬스장에 나오는 다른 사람들도 마음에 여유가 장착되는 것일까? 옆 회원에게 도움이 필요하겠다 싶으면 기꺼이 다가와주는 인심을 주로 이른 아침 헬스장에서 경험한다. 오늘도 그랬다. 양쪽 어깨에 벽돌 같은 받침대를 이고 스쿼트 하는 기구를 공략해볼 참이었다. 운동법을 일주일 전에 트레이너 선생님에게 배웠는데 워낙 덩치가 육중하고 복잡한 구조인지라 사용법이 헷갈렸다. 원판이 하나도 없는 상태가 내게 맞는 강도라는 점도 잊고 왼쪽, 오른쪽 각각 15kg씩 끼워져 있는 원판을 그대로 매단 채 잠금장치를 풀고 고관절을 접어 아래로 천천히 내려갔다. 30kg의 무게를 견딜 리 없는 내 허벅지와 허리는 결국 정지 버튼이 고장 났다. 

직각 위치에서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으면서 어디 한 곳이 단단히 삐끗하는 것은 아닌지 몹시 무서웠다. 그때였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남성 한 명이 내 어깨를 짓누르던 받침대를 두 손으로 받쳐주었다. 잔뜩 짜부라진 디스크 마디마디가 숨통을 틔우는 느낌에 안도했다. 기구에서 간신히 빠져나와 “감사합니다” 하는 한숨 섞인 인사를 들으며 그는 원판을 모두 빼주고는 벽돌 닮은 기구의 상단을 번쩍 들어 안전하게 고정시켰다. “여기 지지대에 이렇게 걸쳐야 되요”라며 팁까지 일러주고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가 아니었다면 지금 이렇게 허리 꼿꼿하게 세우고 컴퓨터 앞에 앉아있지도 못했을 것이라 생각하면 고마움이 더 커진다.

한 달 전쯤에도 슈퍼맨처럼 등장한 할아버지 회원 덕에 기분 좋아진 적이 있다. 그때 도전했던 기구는 반쯤 누운 자세로 무릎과 고관절을 접었다 폈다 하는 하체 강화 기구. ‘보디빌딩 역사의 전설 아놀드 슈왈제네거도 운동 뒤엔 본인이 사용한 덤벨과 원판을 직접 정리하였습니다’라는 문구가 아놀드의 사진과 함께 붙어있는 기구였다. 푯말이 가르쳐주는 에티켓을 누군가가 너무 잘 지킨 덕분에 나는 양쪽에 15kg씩 원판을 가져다 직접 끼워야 했다. 하체보다 상체 근력이 몹시 빈약하여 항상 원판 옮기기가 쉽지 않다. 

그날도 정리 정돈돼 있는 원판을 낑낑대며 기구까지 가져가 왼쪽 쇠 걸이에 힘겹게 하나를 걸었다. 그런데 언제 뒤따라 오셨는지, 키는 아담하지만 잔 근육이 꽤 촘촘히 자리 잡은 할아버지가 반대쪽 걸이에 원판을 끼워주고는 뒤돌아 가셨다. 몸에 밴 시크함으로도 채 감춰지지 못하는 스윗함. 돌아가는 할아버지의 다부진 등 근육이 아놀드 배우보다 멋있어 보였다. ‘나만의 아놀드’는 내 운동이 끝난 뒤에도 원판 정리를 도와주었다.

헬스 3개월 차 헬린이의 판단은 종종 엇나간다. 충분히 감당하겠다 싶은 무게가 지구만큼 무겁기도 하고, 감당할 수 없겠다 싶은 무게가 의외로 가벼울 때를 경험한다. 혼자 들기에 너무 버거운 무게를 나눠 들어주는 누군가가 늘 곁에 있다는 든든함을 뜻밖의 장소에서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victor-freitas(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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