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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아리 Aug 12. 2022

시터를 쓰는 것은 쉽지만, 시터를 잘 쓰는 것은 어렵다

1년이 넘도록 홀로 이곳에서 아이를 길렀다. 그러다 불가피한 이유로 잠시지만 나도 시터를 쓰는 엄마들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내가 시터를 고용할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이유는, 계획하지 않았던 둘째의 임신 때문이었다. 사실 그 당시 나는 석사 졸업을 위해 논문을 쓰던 중이었다. 게다가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첫째 때와 마찬가지로 심한 입덧을 겪었다. 입덧을 하며, 갓 돌이 지난 아이를 돌보고, 논문까지 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토록 원하던 시터를 고용하게 되었지만, 그때의 나는 이미 시터가 있는 엄마들을 무작정 부러워하지 않게 되었던 즈음이었다. 나는 1년간 시터 손에 자라는 수많은 아이들을 옆에서 직접 보고 들었다. 좋은 시터를 만난 아이도 있었고, 나쁜 시터를 만난 아이도 있었다. 나쁜 시터를 만난 아이가 얼마나 불행해지는지는 누구나 예상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좋은 시터를 만난 아이에게도 종종 문제는 생겼다. 이것은 시터가 얼마나 좋은 사람 인가 와는 별개의 문제였다. 이러한 문제는 부모가 시터를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고용했는가에서 비롯됐다.     


내가 만난 압구정의 많은 부모들은 시터가 부모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부모들은 큰 비용을 들여 시터를 고용하기 때문에, 어렵고 힘든 일은 마땅히 시터가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시터를 고용한 시간 동안은 부모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돈을 들여 시터를 썼으면 그 시간은 나가서 놀아야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육아에서 어렵고 힘든 일은, 중요한 일인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결과적으로는 육아에서 중요한 부분을 시터에게 전가하는 셈이 된다. 예를 들어 아이를 키우며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는 아이를 재우는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매우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특히 갓 태어난 신생아는 모든 것이 불안하고 낯설다. 그래서 잠을 자면서도 내내 엄마의 냄새를 맡으며 안정감을 찾는다. 아이들이 좀 더 크면 잠들기 전 부모와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한다. 이러한 부모와 함께하는 잠자리 대화나 잠자리 독서는 아이의 정서 발달에 반드시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시터가 있는 대부분의 집은, 시터가 아이를 재우고 함께 잠을 잔다. 그 어떤 시터도 아이에게 부모만큼의 정서적 안정감을 줄 것이라 기대할 수는 없다. 한 엄마는 처음으로 아이와 여행을 갔는데, 아이가 밤 12시가 되어서야 잤다고 말했다. 늘 시터가 아이를 재워 어떻게 해야 아이가 잠드는지도 몰랐던 것이다(수면 교육을 하지 않은 어린아이라면, 대부분 저마다 잠에 드는 방법이 다르다. 업어야 자는 아이, 아기띠를 해야 자는 아이, 노래를 틀어줘야 자는 아이 등).      


부모라면 알아야 하는 것들을 모르고, 부모라면 해야 할 것들을 하지 못한다. 아이가 부모에게 의지하고 못하고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아이들은 점점 더 시터에게 의지하고 시터에게 부모의 역할을 바라게 된다. 하루는 주말에 가족들과 아파트 주변을 산책을 하다가 한 아이가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 주말이라 입주 시터분이 휴가를 나가려는데, 아이가 가지 말라며 대성통곡을 하는 상황이었다. 엄마는 멋쩍은 듯 아이를 말리고 있고 시터는 내일 아침 일찍 오겠다며 떠났다. 그 후로도 아이는 한동안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어째서 그 아이는 부모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시터가 떠나는 상황이 그리도 슬펐을까? 그 아이에게 안정감과 편안함을 주는 존재는 부모였을까 시터였을까?      


그런데 이렇게 부모의 역할을 시터가 대신하면서 생기는 문제는, 단지 아이에게만 생기지 않는다. 부모는 아이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잃는 셈이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이 그 무엇보다 가치 있는 이유는, 그 과정에서 부모 또한 어른이 되기 때문이다. 흔히 사람들은 어른만 아이를 키운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이도 부모를 키운다. 아이가 부모를 진짜 어른이 되도록 해주는 것이다.

   

감사, 인내, 희생, 배려 같은 이런 거창한 단어들은 내가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야 비로소 진짜 의미를 알게 된 것들이었다. 나는 아이를 기르며 아이가 기고, 걷고, 뛰는 사소한 것들에서도 경이로움과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조급하고 불같던 성격이었던 나지만, 꼬물거리는 아이의 작은 몸짓 앞에서는 기약 없는 기다림조차 지루하지 않게 되었다. 평생을 자기중심적으로 살아왔지만, 언제 어디서나 먼저인 절대적인 우선순위가 생겼고, 아이를 위해서라면 대가 없이도 기꺼이 희생하고 포기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를 낳아서 직접 기르지 않는다면, 우리가 살면서 이런 깨달음을 언제 또 느낄 수 있을까?     


동시에 시터가 부모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은 부모이기에 가질 수 있는 특권을 잃는 것이기도 하다. 부모이기에 가질 수 있는 특권이란, 아이가 성장하는 찬란한 매 순간들을 지켜볼 수 있는 것이다. 아이가 어릴수록 매일 매 순간은 기적처럼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많은 엄마들이 그 힘든 세월을 겪고서도, 둘째를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누군가는 과거의 많은 아빠들이 아이들의 육아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엄마의 영역으로만 치부한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이의 어린 시절을 함께하지 못한 것으로 그 대가는 충분하다.”      


그러니 내가 더 이상 시터를 쓰는 엄마들을 마냥 부러워하지 않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돈만 있다면 시터를 쓰는 것을 쉬운 일이다. 하지만 부모의 역할을 다하면서 시터를 쓰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압구정에는 다 계획이 있다 3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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