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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아리 Aug 17. 2022

압구정의 사교육은 돌 전에 시작된다

나는 첫째가 6개월 무렵부터 아기와 함께 문센에 다녔다(‘문센’이란 백화점 문화 센터의 약어로, 아기와 엄마가 함께 할 수 있는 다양한 강좌가 열린다). 우리 첫째는 문화 센터를 꽤 일찍 다닌 편이었다. 아이와 내가 문화 센터를 다니기 시작한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너무도 밖에 나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것이 너무 답답했다. 육아를 하며 가장 힘든 점을 물으면, 나의 대답은 언제나 밖에 자유롭게 나가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나는 그만큼 외향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이를 나 혼자 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결국 내가 외출할 수 있는 방법은 아이와 함께 나가는 것뿐이었고, 그래서 선택한 것이 문화 센터였다. 이렇게 꽤나 소소한 우리 아기의 첫 번째 사교육이 시작되었다.     


사실 백화점 문센 수업의 경우 사교육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비용은 저렴했다(1회 수업 비용이 적게는 5,000원에서 많아야 10,000원 선이라 부담이 없는 편이다). 처음에는 어디든 나가야겠다는 마음에서 시작했는데, 막상 수업에 가보니 꽤 재미있었다. 아이도 하루 종일 집에만 있다가 새로운 환경을 접하니 신기해하고 즐거워했다. 무엇보다 내 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다른 아기를 만나고, 또 그 아기를 키우는 나 같은 엄마들을 만나는 것이 좋았다. 당시에는 동네 친구도 많지 않고 첫째 조리원 동기도 없는 상황이라, 비슷한 연령대의 다른 아이들이나 엄마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만난 엄마들은 나에게 무궁무진한 사교육의 세계를 알려주었다.     


나는 문센에서 동네 엄마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돌 전에 할 수 있는 사교육이라고 해봐야 문화 센터에 가거나 영유아 전집을 사주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말은커녕 제대로 앉지도 못하는 아기들에게 무엇을 얼마나 해줄 수 있을지 상상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섣부른 판단이었다. 나는 돌 전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사교육이 이렇게 다양하다는 사실에 한 번, 그 가격에 두 번, 그렇게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대기를 해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세 번 놀랐다.      




우선 이 동네에서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은, 문화 센터와 유사한 ‘소규모 센터 수업’이다. 보통 음악, 체육, 미술 등 한 분야에 중점을 두고 수업을 진행하는데, 문화 센터 수업과의 차별점은 소규모로 진행이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음악에 중점을 둔 A센터에서는 선생님 2명에 최대 7명의 아이들이 함께 수업을 한다. 인원을 모은다면 지인들과 팀을 꾸려 반을 개설할 수도 있다. 반면 문화 센터에서는 선생님 1명에 약 15명의 아기들이 함께 수업을 한다. 이런 소규모 수업의 경우 주 1회 30분 수업에 한 달 16만 원으로, 1회에 약 4만 원인 셈이다. 문화 센터가 1회에 약 5,000원에서 10,000원의 비용이 드는 점을 고려하면 비용의 차이가 꽤 난다. 다른 주제의 센터도 비슷한 가격대이며, 수업도 비슷한 형식으로 진행된다.


아이들이 돌이 될 무렵부터 문화 센터에 나오는 아이들이 점차 줄었다. 알고 보니 다들 소규모 센터 수업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돌 이후가 되면 다들 문화 센터 수업보다는 소규모 센터 수업을 선호하는 것 같았다. 무엇이 그리도 다르기에 4배 이상의 돈을 주고도 옮겨가는지 궁금해진 나는 A센터에서 1회성 체험 수업을 들었다. 수업을 직접 들어보니, 수업의 형식이나 내용은 백화점 문센 수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소규모 수업이라는 점과, 지인들로만 구성된 수업을 개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 장점이 이 동네에서는 꽤나 크게 작용하는 듯했다. 그리고 이러한 수업을 일주일에 2~3개씩 듣는 엄마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벌써 센터 수업에만 한 달에 30~45만 원이 지출되는 것이다(아이들이 아직 돌 전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돌 이전에 할 수 있는 사교육 두 번째는, 선생님이 아기의 집을 직접 방문해서 수업을 진행하는 ‘방문 수업’이다. 이 또한 미술, 음악, 체육 등으로 주제가 다양하다. 비용은 주 1회 30분 수업으로 한 달에 약 12만 원이다. 나는 첫째 아이가 28개월이 되어서야 방문수업을 경험했었다. 코로나로 인해 어린이집도 못 가고 외출도 힘든 아이를 위해서였다. 그리고 나는 역시나 큰 기대를 하지 않았음에도 굉장히 실망하였다. 물론 내가 교사라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더욱 냉정하고 비판적인 평가가 이루어졌을 수 있지만, 30분에 30,000원의 가치가 있는 수업이라고 느끼기는 힘들었다.      


일단 영유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조차 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세 돌도 안 된 아이에게 돌아다니지 말고 앉으라고 혼을 내거나, 아이의 흥미를 유발하기는커녕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을 내 눈으로 보았다. 심지어는 수업 준비마저 제대로 해오지 않아, 30분 내내 우왕좌왕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3개월 만에 방문 수업을 그만두고 말았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한 평가이지만, 주변의 엄마들에게 물어도 대부분은 2~3번 교체를 해야 그나만 보통의 방문 수업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영유아 전집이 있다. 전집의 경우 앞선 두 가지 사교육과 다르게 나도 적극적으로 알아보았고 누구보다 일찍 시작한 분야였다. 나는 책은 가장 좋은 교육 수단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책은 최대한 일찍 사서 오래 보자’는 주의로, 항상 모든 책을 적정 시기보다 6개월에서 1년 정도 일찍 들이는 편이다. 그래서 첫 영유아 전집 또한 꽤 빨리 들인 편이었다. 아이가 6개월 무렵이었는데, 꽤 큰 금액에 고심 끝에 들였던 기억이 난다. 책에 대한 투자는 아끼지 않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고민을 했던 이유는 전집의 금액이 약 80만 원이었기 때문이다. 겨우 20권의 책과 10개 정도의 교구로 구성된 전집이었다.  

    

분명 영아를 위한 전집이라기에는 비싼 금액이었지만, 아이가 40개월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읽을 정도로 만족하는 책이었다(참고로 나는 책을 버리지 않는 편이다. 아무리 쉬운 책도 아이가 성장하면서 받아들이는 깊이가 달라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책이란 활용하는 사람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나와 남편은 이 전집을 80만 원 이상의 가치로 활용했다고 자부한다. 아이에게 틈나는 대로 책을 읽어주었고 관련된 교구도 제시된 활용법 이상으로 확장시켜 놀아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6개월 즈음부터 틈나는 대로 책을 읽어주다 보니 아이는 자연히 책을 좋아하게 되었다.      


내가 첫 전집을 구매하자, 주변의 엄마들은 따라 사기 시작했다. 심지어 엄마들은 그 책이 좋다는 소문을 듣자, 그 출판사에서 300만 원대의 전집 풀세트를 구매하기도 했다. 나와는 달리 다른 책들과 비교하거나 가격을 고민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엄마들에게 소개해준 영사(도서 영업사원)가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나의 아이에게 좋다면 그것이 얼마이든 큰 망설임 없이 구매할 수 있는 압구정의 엄마들이었다.      


그러나 책은 구매를 한 이후가 더 중요한 사교육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엄마들은 고가의 책을 들여놓고는 이후에 제대로 활용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 동네의 맘 카페나 당근마켓에 가면, 그렇게 새 책 같은 중고책이 많이 나와 있다. 새 책 같은 이유는 하나 같이 ‘아이가 좋아하지 않아서’이지만, 사실 정확한 이유는 ‘아이가 좋아하게 만들지 못해서’일 것이다. 영유아기의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게 만드는 것은 거의 부모의 몫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비싼 책을 사서 꽂아만 놓는다고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책을 스스로 읽을 수 있게 되기 전까지는, 부모가 책을 자주 읽어주어야 한다. 물론 그냥 읽어주어서는 안 된다. 재미있고, 실감 나게 읽어야 한다. 또한 단순히 책의 내용을 읽어주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책과 관련된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아이가 말을 못 해도 상관없다. 예를 들어 색과 관련된 책을 읽었다면 주변에서 색을 찾아보고 책에 나온 내용과 연결시켜 주어야 한다. 너는 어떤 색을 좋아하는지, 엄마는 어떤 색을 좋아하는지 계속해서 질문하고 대답하며 내용을 확장시켜야 한다.      


아이가 갓 태어나면 부모들은 아이에게 좋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고 싶다. 거기다 돈까지 많다면 해줄 수 있는 것은 더욱 많아진다. 이것이 이 동네의 영아 관련 사교육이 그렇게도 성행하는 이유이다.

부모들의 수요에 부응하여 곳곳에서 최고급을 내세우며 최고가를 당당히 부른다.


그러나 실제 내가 체험한 영아 관련 사교육은 대부분이 문화 센터의 수준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그리고 사실 1~2살의 아이들에게 문화 센터 이상의 높은 수준의 사교육이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교육의 질을 고려했을 때 분명 터무니없이 고가이지만 그것마저도 돈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크게 상관이 없어 보인다.      


사실 돈 있는 사람들이 가성비를 따지지 않고 사교육을 시키는 자체가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다만 고가의 영아기 사교육이 가져오는 근본적인 문제는, 아이에게 최고급 사교육을 제공했다는 명목 하에 정작 중요한 것을 소홀히 하기 쉽다는 것이다. 사실 이 시기에 아이에게 가장 좋은 교육이란 엄마와의 편안하고 친밀한 상호 작용이라는 것을 교육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그즈음의 아기에게 최고의 교육자는 엄마이고 최고의 교육은 엄마의 사랑에서 비롯된다. 그러니 혹여 내 아이에게 돌 전에 최고급의 사교육을 시켜주지 못했다고 속상해할 필요는 없다. 그 시기의 아이에게 엄마와의 눈 맞춤과 사랑이 담긴 대화보다 좋은 교육은 없다.      


다만 나는 좋은 책은 빨리 들여 오래 보여주기를 권한다. 물론 부모의 목소리로, 아이의 눈을 맞추며 읽어주어야 한다. 그러니 혹여나 사고자 하는 좋은 책이 비싼 책이라면, 중고를 이용하기를 권한다. 특히 이 동네의 당근마켓에는 새 책 같은 다양한 고가의 전집이 반값도 안 되는 가격에 나와 있으니 참고하길.     


실제로 네 돌이 다 되어가는 우리 첫째는 세 돌이 되기 전까지 제대로 된 사교육 한 번 받지 않았지만,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에 비해 다방면에서 발달이 빠른 편이다. 좋은 책을 심혈을 기울여 고르고, 흥미를 유발하여 재미있게 읽어주고, 가족과 대화하는 시간을 많이 갖는 것 이외에 교육은 따로 한 것은 없었다. 혹여나 이를 내가 교육자인 덕으로 생각한다면 억울하다. 이 동네에는 나보다 똑똑한 교수 엄마, 의사 아빠가 널렸다.      


-압구정에는 다 계획이 있다 5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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