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학교의 문제점들은 정식 교육 기관이 아니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놀이학교는 ‘학원’으로 등록이 되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유아 교육 전공자’를 교사로 채용할 필요가 없다(이후에 언급할 영어 유치원도 마찬가지이다). 반면 어린이집은 보육 교사 자격증이 필수적이다. 물론 자격증의 소지 유무가 교육자의 자질을 전적으로 판가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어린이집이 정식 교육 기관이며, 유아 교육을 전공한 보육 교사를 채용한다는 점은 생각보다 큰 의의를 갖는다고 생각한다.기본적으로 영유아 발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기관을 운영하려고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놀이학교에는 유아기에 반드시 필요한 ‘자유 놀이(자유 선택 활동)’시간이 거의 없다.
자유 놀이란 ‘유아가 자신의 개별적인 흥미, 욕구, 발달에 따라 스스로 놀이를 선택하고 자유롭게 참여하는 시간’이다. 아이들은 스스로 놀이를 선택하며 자율성이 생기고, 어떻게 놀 것인지 생각하며 계획성도 생긴다. 스스로 선택한 놀이를 하며 몰입하는 법을 배우고, 친구나 선생님과 상호 작용하는 법도 배운다. 이외에도 만족감, 성취감, 창의력 등이 자유 놀이를 하며 발달된다.
이러한 자유 놀이시간이 놀이학교에는 거의 없는 이유는 단 하나, 원비가 비싸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의 입장에서는 월 150만 원이 넘는 금액을 내는데, 하루에 한 시간씩 아이들 스스로 놀다 온다고 생각하면 억울할 수 있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대부분의 놀이학교에는 한참 낮잠이 필요한 3살 아이들조차 낮잠 시간도 없다(종종 수업 중에 잠이 드는 아이들은, 원장실 옆에 마련된 침대에서 잔다). 결국 대부분의 놀이학교는 누가 봐도 화려한, 빈틈없이 빽빽한 시간표를 갖추어야만 한다.
하지만 매시간 다양한 활동으로 채워진 커리큘럼은 오히려 영유아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로 우리 아이가 그랬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이는 스스로 원하는 활동을, 긴 호흡으로 하는 것을 좋아한다. 집에서도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2시간이고 3시간이고 놀던 아이이다. 그런데 놀이학교에서는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었고, 정해진 시간표대로 움직여야만 했다. 심지어아이는 30분 단위로 계속해서 바뀌는 수업 때문에, 시작한 활동을 원하는 시간만큼 충분히 체험할 수도 없었다. 그러니 아이에게는 놀이학교의 다채로운 수업은, 즐거움이 아니라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또한 놀이학교에는 ‘적응 기간’도 없다.
'적응 기간’이란 아이가 엄마와 떨어져 기관 생활을 하기 전에, 익숙해지는 기간을 갖는 것을 말한다. 영유아의 발달 특성상 적응 기간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유아 교육학계의 상식이다. 그래서 모든 어린이집에서는 2주에서 4주까지의 적응 기간을 둔다. 그런데 내가 들은 바 어느 놀이학교에도 적응 기간은 없었다. 내가 각 기관들에 적응 기간이 없는 이유를 물었을 때 대답은 하나같이 비슷했다. “어머니, 어차피 아이들은 적응 기간이 있다고 해서 울지 않는 것은 아니에요. 오히려 처음부터 엄마 없이 와야 더 빨리 적응해요.” 그러나 사실 놀이학교에 적응 기간이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자유 놀이시간이 없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원비가 비싸기 때문에. 월 150만 원이면 하루에 7만 원이 넘는 돈을 지불하는 셈인데, 겨우 30분, 1시간을 적응시간으로 보내고 집으로 돌려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적응 기간 동안 돈을 적게 받는 것은 더욱더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아이는 사실 적응 기간이 없어 놀이학교 적응에 실패한 대표적인 케이스였다. 우리 아이는 나를 닮아 굉장히 예민하고 겁이 많은 편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런 성향의 아이들은 적응 기간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당시의 나는 그 사실을 몰랐고, 아이는 적응 기간 없이 ‘첫날부터’ 9시 30분에 등원해서 2시에나 하원을 했다. 놀이학교에 약 한 달간 다니며 늘 밝았던 아이는 변해갔다. 놀이학교 얘기만 나와도 화를 내며 울었고, 등원하기 전은 물론 하원 후에도 몇 시간을 울었다. 밤에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고 악몽을 꾸는 듯 몇 번을 잠에서 깨 울었다. 아이는 너무나 불안해 보였고 힘들어 보였다. 주변에서는 결국 적응할 것이니 조금만 버티고 참으라고 했지만 아이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지인의 소개로 오랜 기간 어린이집에 근무한 국공립 어린이집 선생님과 상담을 했고, 그날 밤 퇴소를 결심했다.
그 어린이집 선생님은 우리 아이의 상태를 듣고는 이렇게 말했다. “어린아이에게 낯선 어린이집에 혼자 남겨지는 것은 마치 버려지는 것과 같은 느낌이에요. 장소도 사람도 처음이니 모든 것이 낯설지요. 그래서 적응 기간이 필요해요. 엄마와 함께했던 공간이라는 데서 오는 안도감이 있는 거죠. 그리고 점차 시간을 늘려가며 엄마가 나를 버린 것이 아니라 조금 있으면 엄마가 데리러 올 것이라는 확신을 주어야 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했다. “물론 대부분의 아이들은 기관 생활에 적응하죠. 그런데 사실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는 거예요. 아무리 울어도 계속해서 가야 하니 결국엔 포기하는 것이 빨리 적응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죠.”실제로 한참 뒤에 새로 입소한 어린이집에서는 약 한 달간 적응 기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어린이집에 들어갈 때에 운 적이 없었다.
나는 어린이집이 무조건 더 좋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분명 놀이학교가 어린이집보다 좋은 점도 있다. 그러나 나는 잠시지만 아이를 놀이학교에 보내며 3살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최고급 시설이나 화려한 커리큘럼이 아니라는 확신은 들었다. 느릴지언정 빠르지 않은 교육. 다채롭진 않지만 안정감 있는 교육, 적어도 영유아기의 아이들에게는 그런 교육이 필요한 시기라는 확신이 들었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우리 아이는 여전히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다.
나는 지금도 놀이학교에 다니던 3주간의 사진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우연히 사진첩을 넘기다 그 사진들을 보기라도 할 때면 어김없이 내 눈에는 눈물이 고인다. 고작 26개월 된 아이가 겪어야 했던 슬픔과 불안이 당시의 사진에 오롯이 남아 있다. 당시에 매일같이 울며 등원하는 아이를 걱정하는 나를 위해서, 놀이학교 선생님들은 요청하지 않아도 매시간 사진을 보내주었다. 너무 울어 눈이 퉁퉁 부은 채로 억지로 웃고 있는 아이의 모습. 사진을 찍을 테니 웃으라고 말하는 선생님을 향해 아이는 애착 인형을 꼭 안은 채 슬프게 웃고 있었다.
아이를 첫 기관에 보내기 전 나는 내 아이의 교육에 언제나 자신 있었다. 나는 많이 배운 교육자이니 내 아이만큼은 실수 없이 키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자만이었다. 나도 결국 실수와 후회를 반복하며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처음인 사람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