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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아리 Sep 06. 2022

강남 놀이학교 퇴소 후 이야기


놀이학교를 보낼 즈음, 우리 아이는 이미 말을 굉장히 잘하는 상태로 어른들과의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놀이학교를 다닐 당시에는 울기만 할 뿐 그곳이 싫은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어르고 달래며 물어도 놀이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꺼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퇴소한 후에도 한참 동안 아이가 놀이학교가 그리도 싫었던 이유를 짐작만 할 뿐,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놀이학교를 퇴소한 후 시간이 흘러 아이는 점차 예전의 밝았던 모습으로 돌아왔다. 밤에도 잠을 잘 잤고 낮에도 더 이상 이유 없이 울거나 짜증 내지 않았다. 그러던 중 대기를 걸어두었던 새로운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와서 상담을 가게 되었다. 나는 선생님들께 아이가 몇 달 전 놀이학교에서 마음의 상처를 받아 기관에 대한 트라우마가 남아 있을까 염려된다고 말했고, 어린이집 선생님들께서는 아이가 천천히 적응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하겠다고 말해주셨다. 적응 기간은 아이에게 맞춰 얼마든지 늘려줄 수 있다고도 했다. 나는 마음이 한결 편해졌고 그렇게 두 번째 기관 생활이 시작되었다.      


처음 시작부터 이전의 놀이학교와는 완전히 달랐다. 첫날에는 어린이집을 둘러보며 여기는 어디고 앞으로 무엇을 하며 보낼지를 찬찬히 설명해주셨다(놀이학교는 등원 첫날이 놀이학교를 안까지 처음 가는 날이었다. 그리고 첫날부터 하루를 꽉 채워 수업을 했다.). 처음 1주 차는 엄마와 30분, 다음 2주 차는 혼자 30분, 다음 3주 차는 엄마와 1시간, 다음 4주 차는 혼자 1시간, 그렇게 아주 느리고 천천히 점차 시간을 늘려갔다. 시간을 지나며 아이는 어린이집을 친근한 장소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엄마가 나를 놓고 가는 것이 아니라 일정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온다는 것도 알게 되는 것 같았다. 내가 아이를 데리러 올 때면 아이는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겼다. 그렇게 3주가 지날 즈음 아이가 이제 집에 일찍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아이는 단 하루도 울거나 가기 싫다는 말을 하지 않으며 적응을 완료했다.      


그러다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문득 아이가 말했다.

“전에 다니던 어린이집은(놀이학교) 선생님들이 장난감만 많이 꺼내 주고 잘 놀아주지는 않았어. 그런데 여기는 선생님들이 장난감도 주고 잘 놀아줘서 좋아."


마음이 다시 한번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사실 놀이학교를 그만둘 당시에 선생님들에 대해서 큰 불만을 가지지는 않았다. 단지 놀이학교의 커리큘럼이나 적응 방식과 같이 운영 방식 자체에 대한 문제가 있다고 느꼈다. 특히나 예민한 기질의 우리 아이와 맞지 않는다고 느낄 뿐이었다. 오히려 놀이학교를 다니는 내내 원장님을 비롯한 선생님들은 나에게 언제나 과도할 정도로 친절했고, 하루에 몇 번씩 전화와 문자를 주며 나를 안심시켰다. 실제로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놀이학교 선생님들은 굉장히 친절하다. 그런데 그 친절의 대상에 아이도 포함되는지 잘 살펴봤어야 했다.      


물론 어린이집에도 놀이학교에도 친절한 선생님은 있고, 불친절한 선생님도 있다. 그러나 학부모가 운영비용의 전반을 지불하는 놀이학교 특성상, 놀이학교의 선생님들은 학부모들에게 좀 더 친절하고 조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나에게 필요 이상으로 친절할 필요가 없다. 실제로 어린이집의 선생님들은 적응 기간조차도 매일 전화를 주지도 않았고 매일 사진을 보내주지도 않았다. 오히려 어린이집에서는 미리 아이들이 등원 중인 시간대에는 문자나 전화가 어렵다고 공지를 한다. 사진 또한 일주일에 한 번 몰아서 보내주는 식이다.      


당시 놀이학교 선생님은 아이의 적응 기간 내내,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 아이의 사진을 찍고 나에게 문자를 보내주었다. 당시에 나는 덕분에 안심이 되었고 참 고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이 사진과 문자를 전송하던 그 시간 동안, 다른 7명의 아이들을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아마 우리 아이가 나간 후 새로운 아이가 들어오면, 또다시 선생님은 사진을 찍고 문자를 해야 할 것이다.     

 

아이는 1년이 다 지나가는 요즘도 종종 말한다. 이전에 다니던 어린이집은 내가 좋아하는 노란 셔틀버스가 있었지. 그런데 그래도 싫었어. 왜냐하면 엄마가 없어서 싫었어. 그리고 잘 놀아주지 않았어. 아이에게 놀이학교는 여전히 엄마가 올지 안 올지 확신이 없는 곳, 아이와 마주 보고 오랫동안 놀아주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사실 우리는 36개월 이전의 아이들에게 부모보다 좋은 교육 기관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내가 그랬듯, 요즘은 저마다의 피치 못할 이유로 아이를 이른 시기에 기관을 보낸다. 엄마가 힘들어서, 맞벌이여서, 아이가 심심해해서 등등. 그렇다면 우리 부모는 최소한 어린아이들에게 안정감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곳을 선택해야만 한다. 고작 4살도 안된 아이들에게, 편안하고 즐거운 환경 그 이상의 무엇이 필요할까.     

 

놀이학교에 다닌 3주는 나의 잘못된 선택이 아이에게 얼마나 거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 날들이었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는 말로 변명으로 넘겨버리기에는,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너무 힘든 날들이었다. 그래도 나는 놀이학교에서의 쓰라린 경험을 한 이후부터, 아이와 관련된 선택을 할 때면 언제나 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정말 내 아이에게 맞는 것일지, 내가 아니라 내 아이가 정말 행복해

할지를 생각해본다.     

 


- '압구정에는 다 계획이 있다' 5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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