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오랜만에 데이트를 했다.
운이 좋게도 학교 일이 일찍 끝나, 아이가 그토록 원하던 “픽업”을 할 수 있는 날. 픽업을 가자 아이는 이미 싱글벙글이다. 입이 찢어지게 웃는 아이의 손을 잡고는 근처 빵집에 갔다. 아이는 좋아하는 뽀로로 빵과 평소에는 잘 사주지 않는 딸기 우유를 기분 좋게 마셨다. 그리고는 근처 도서관에 갔다. 이제는 제법 원하는 책이 있어, 아이가 골라온 책을 아이가 먼저 읽고, 아이가 다 읽고 난 책을 내가 건네받아 읽는다. 재미있는 내용은 함께 킥킥대기도 하고, 궁금한 내용은 귀속말로 주고받기도 하며 그렇게 한갓진 시간을 보냈다.
이제는 집에 갈 시간. 집에 가서 엄마가 싸준 김밥이 먹고 싶다는 아이의 말에, 마트에 들렀다. 이미 내 손에는 퇴근 후 바로 달려온 탓에 나의 가방과, 아이의 유치원 가방, 그리고 도서관에서 빌린 5권의 책이 양손 가득 들려있다. 하지만 “엄마가 만들어준 김밥”이 꼭 먹고 싶다는 아이의 말에 이미 양손의 무게는 잊은 지 오래다.
최소한의 재료만 사서 나오는데, 아무래도 너무 무겁다. 낑낑대며 양손에 어떻게든 우겨서 나의 가방, 아이의 가방, 5권의 책, 장본 것들을 나눠 드는데, 아이가 시장바구니를 가져간다.
“엄마 너무 힘들겠다. 시장본 건 내가 들게.”
말릴 새도 없이 가져간, 너무 커서 아이의 발등을 스치는 시장바구니. 장바구니에 살이 눌려 빨개진 손으로 아이는 말한다.
“오늘 진짜 행복한 날이다. 엄마랑 데이트해서 너무 재밌었어!”
어쩐지 멀리서 보기엔, 자기 몸집과 어울리지 않는 시장바구니를 들고는, “진짜 행복하다”며 햇살같이 웃는 아이의 모습이 이상해보일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아이는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다.
나의 아이는(아마도 세상의 모든 아이는), 동네 빵집에서 빵을 먹고, 도서관에 가고, 시장을 보는, 특별할 것 없는 아주 평범해 보이는 하루에서도, 큰 행복을 느낀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나도 그 순간마다 행복을 느낀다.
아이를 낳고 기르며 가장 감사한 것은, 일상의 아주 사소한 순간에서도 누구보다 찬란한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너무 시시하고 별거 아니었던 것들이, 매 순간 새롭고 특별하다.
횡단보도 앞에 서서 그 무거운 시장바구니를 들고서는 행복하다고 말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나는 완전하게 행복했다. 모두 네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