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걸어 다니듯이 내리는 비

by 돌강아지

세찬 비가 내리면 비가 걸어 다니듯이 내린다.

도미노처럼 비가 옆으로 쓰러진다.

오른쪽 귀에서 왼쪽 귀로 빗소리가 옮겨 간다.

학교 다닐 때 교실 창밖으로 운동장을 걸어 다니던 비.

오늘은 비가 집 앞 논을 걸어간다.

여전히 비 오는 날은 많은 생각에 잠긴다.

무수히 많은 바깥 것들 중 내 마음을 채울 수 있는

단 하나도 없다니.


나중에 죽을 때는 땅에 내리듯 죽고 싶다.

향도 색도 없이 어디든 스며들어

뜨면 흔적 없이 사라지지만 풀들을 자라게 하는.

그날만큼은 풀들을 위해 내리는 비가 되어야겠다.

밟히는 질경이를 위해, 강아지풀을 위해, 명아주를 위해, 구박받는 환삼덩굴을 위해...


잘 닫히지 않는 화장실 문이 바람에 쿵쿵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한다. 가족들이 깰까 봐 닫고 왔다.

얼른 닫는다고 닫았는데 늘 한 발씩 느려서 아마 조금은 깼을 것 같다.


바람이 많이 분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주인댁 고양이 고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