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찬 비가 내리면 비가 걸어 다니듯이 내린다.
도미노처럼 비가 옆으로 쓰러진다.
오른쪽 귀에서 왼쪽 귀로 빗소리가 옮겨 간다.
학교 다닐 때 교실 창밖으로 운동장을 걸어 다니던 비.
오늘은 비가 집 앞 논을 걸어간다.
여전히 비 오는 날은 많은 생각에 잠긴다.
무수히 많은 바깥 것들 중 내 마음을 채울 수 있는 게
단 하나도 없다니.
나중에 죽을 때는 땅에 비 내리듯 죽고 싶다.
향도 색도 없이 어디든 스며들어
해 뜨면 흔적 없이 사라지지만 풀들을 자라게 하는.
그날만큼은 풀들을 위해 내리는 비가 되어야겠다.
밟히는 질경이를 위해, 강아지풀을 위해, 명아주를 위해, 구박받는 환삼덩굴을 위해...
잘 닫히지 않는 화장실 문이 바람에 쿵쿵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한다. 가족들이 깰까 봐 닫고 왔다.
얼른 닫는다고 닫았는데 늘 한 발씩 느려서 아마 조금은 깼을 것 같다.
바람이 많이 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