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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댁 고양이 고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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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강아지
Dec 21. 2021
아직 어스름한 이른 아침
부엌 창문
밖에 고엽이가 돌처럼 앉아 있었다
.
고엽이는 집 주인댁 고양이다.
엄마가 냄비에 물을 끓이면서
"검둥이 여기 와있다"라고 했다
.
엄마는 예전에 검은콩한테도 검둥이라고 불렀었는데
턱시도를 입었건 안 입었건 우선 까만색이면
엄마한테는 모두 검둥이다
.
"검둥이 너 또 왜 왔어!"
"야 지영아 니가 좋아하는 검둥이 또
왔다."
주인댁과 우리 집은 이어져 있지만
엄연히 대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게 정식 루트다
.
그런데 이 고엽이만이 그 루트를 지키지 않는다
.
심지어 무례하게 지붕을 넘어서 오기도 한다
.
고엽이는 집고양이지만 주인아주머니 말고는
아무도 따르지 않는다
.
원래 이름은 나비인 듯하다.
언젠가 주인아주머니 앞에서 뒹굴거리고
목소리도 예쁘게 애교를 피우고 있길래 깜짝 놀랐다
.
그런 모습이 있나 싶어서.
너 목소리 막 그렇게 귀엽게 바꾸고 애교 부리는 거
안 어울린다
.
처음에는 우리도 경계하고 도망갔는데
두 눈 꼭 감는 인사 자주 하고
난 너를 헤치지 않아 아우라를 많이 내뿜었더니
어느 정도 거리까지는 애써 무시하는 것 같다
.
자기 집이 시끄럽거나 가끔 환기가 필요할 때
우리
집에 오는 것 같다
.
구골나무 담장에 잘 앉아있고
대문과 지붕 사이에도 잘 앉아있다
.
한 번은 자전거를 타려고 자전거 덮개를 치우다가
그 밑에서 갑자기 튀어나와서 기절하는
줄 알았다
.
자전거 덮개도 까만색이었는데 자전거 덮개가 살아서 움직이는 줄 알았다
.
고엽이가 잘 다니는 담장은 구멍이 나있는
시멘트 벽돌로 되어
있다
.
분명 앞만 보고 가는데 어떻게 발이 구멍에 빠지지 않는지 너무 궁금하다
.
심지어 발도 네 개나 되는데!
"잘 봐. 난 발아래는 보고 걷지 않아. 나는 나를 믿지.
쭈구리 인간아 너도 너를 믿어라"
나는 왜 주위에 턱시도 고양이들만 있는지 모르겠다.
전에 살던 집에서 친했던 검은콩도 턱시도,
길에서 같이 오래 놀았던 봉달이도 턱시도,
우리
집에 종종 오는 고엽이도 턱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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