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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댁 고양이 고엽이

by 돌강아지


아직 어스름한 이른 아침

부엌 창문 밖에 고엽이가 돌처럼 앉아 있었다.

고엽이는 집 주인댁 고양이다.


엄마가 냄비에 물을 끓이면서

"검둥이 여기 와있다"라고 했다.

엄마는 예전에 검은콩한테도 검둥이라고 불렀었는데

턱시도를 입었건 안 입었건 우선 까만색이면

엄마한테는 모두 검둥이다.

"검둥이 너 또 왜 왔어!"

"야 지영아 니가 좋아하는 검둥이 또 왔다."


주인댁과 우리 집은 이어져 있지만

엄연히 대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게 정식 루트다.

그런데 이 고엽이만이 그 루트를 지키지 않는다.

심지어 무례하게 지붕을 넘어서 오기도 한다.


고엽이는 집고양이지만 주인아주머니 말고는

아무도 따르지 않는다.

원래 이름은 나비인 듯하다.

언젠가 주인아주머니 앞에서 뒹굴거리고

목소리도 예쁘게 애교를 피우고 있길래 깜짝 놀랐다.

그런 모습이 있나 싶어서.

너 목소리 막 그렇게 귀엽게 바꾸고 애교 부리는 거

안 어울린다.


처음에는 우리도 경계하고 도망갔는데

두 눈 꼭 감는 인사 자주 하고

난 너를 헤치지 않아 아우라를 많이 내뿜었더니

어느 정도 거리까지는 애써 무시하는 것 같다.

자기 집이 시끄럽거나 가끔 환기가 필요할 때

우리 집에 오는 것 같다.


구골나무 담장에 잘 앉아있고

대문과 지붕 사이에도 잘 앉아있다.

한 번은 자전거를 타려고 자전거 덮개를 치우다가

그 밑에서 갑자기 튀어나와서 기절하는 줄 알았다.

자전거 덮개도 까만색이었는데 자전거 덮개가 살아서 움직이는 줄 알았다.



고엽이가 잘 다니는 담장은 구멍이 나있는

시멘트 벽돌로 되어 있다.

분명 앞만 보고 가는데 어떻게 발이 구멍에 빠지지 않는지 너무 궁금하다.

심지어 발도 네 개나 되는데!



"잘 봐. 난 발아래는 보고 걷지 않아. 나는 나를 믿지.

쭈구리 인간아 너도 너를 믿어라"



나는 왜 주위에 턱시도 고양이들만 있는지 모르겠다.

전에 살던 집에서 친했던 검은콩도 턱시도,

길에서 같이 오래 놀았던 봉달이도 턱시도,

우리 집에 종종 오는 고엽이도 턱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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