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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책 냄새
by
돌강아지
Dec 21. 2021
엄마가 쑥갓 꽃을 꺾어왔다
.
물
먹는 컵에 담아놨다
.
국화처럼 예쁘다
.
화분에 심은 우리
집 국화가
쑥갓
꽃을 보고
어리둥절했는지
여름인데 꽃을 피우고 있다.
쑥갓을 좋아하지만 쑥갓을 좋아하지 않았더라도
쑥갓을
심었을 것 같다.
꽃이 참 예쁘니까.
농작물 꽃들은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아서 좋다
.
딱 그만큼만.
언젠가 탔던 낯선 버스
.
돌아가는 버스였는데
시간을 기꺼이 낼
정도의 예쁜 풍경이었다
.
돌아가지 않았다면
보지 못했을 풍경들이었다.
가끔은 돌아가는 길이 더 좋은 길 같다
.
사는 것도 그렇고.
돌아가도 목적지에는 도착하니까.
도로변이나 하천 옆 어디는 피는 금계국
.
올해는 조금 일찍 피고 지는 것 같다
.
이제는 씨를 맺어서 씨앗을 조금 받아왔다
.
씨앗을 모으는 게 좋다.
벌레들을 막아주는 소중한 모기장이
종종 구멍이 난다
.
꿰매도 봤는데 너무 귀찮아서
요새는 투명테이프를 잘라서 붙이고 있다
.
저번에 재난지원금을 받으러 읍사무소에 갔는데
처음으로 어머니라는 소리를 들었다
.
이모, 아줌마 소리는 시장에서도 많이 들어봤는데
어머니는 처음이다
.
"어머니 이쪽으로 오세요"
선캡과
옷차림 때문인가?
라고 생각해도 어머니는 조금 그렇다
.
어머니의 기준이 뭐지?
아줌마가 훨씬 낫다
.
어머니는 뭐랄까 너무 진지해진다고!
부엌 창문으로 고양이가 지나가는 걸 본 적이 있다
.
방충망 두
칸 정도를 차지하던 고양이가
가까워질수록
두
칸에서 세
칸으로
세
칸에서 여섯
칸으로 자리를 차지했다
.
고양이는
열려있던
우리 집
대문으로 들어와서
화단 한쪽 땅을 헤집기도 하고
무궁화나무
위를 올려다보기도 했다.
뭐했나 싶어서 나중에 나가봤더니
내가 아끼는 달개비 줄기 하나가 꺾여 있었다
.
비 오는 날은 습기가 스며들어 종이 냄새가 더 잘난다
.
광택이 나는 하얗고 매끈한 종이보다
거칠거칠하고 조금은 누런빛이 도는 종이가
맡기 좋은 냄새가 난다
.
비 오는 날은 책을 읽는다기보다 책에 비비적 거리며
심신에 안정을
주기 위해 책을 꺼낸다.
고양이처럼 옆에 있어만 줘도 좋은, 그런 역할을 한다
.
박완서 작가의 산문집이나 법정스님 책 같은 것이 좋다
.
산문집 같은 비가 내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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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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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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