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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책 냄새

by 돌강아지

엄마가 쑥갓 꽃을 꺾어왔다.

먹는 컵에 담아놨다.

국화처럼 예쁘다.


화분에 심은 우리 집 국화가 쑥갓 꽃을 보고

어리둥절했는지 여름인데 꽃을 피우고 있다.


쑥갓을 좋아하지만 쑥갓을 좋아하지 않았더라도

쑥갓을 심었을 것 같다.

꽃이 참 예쁘니까.

농작물 꽃들은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아서 좋다.

딱 그만큼만.




언젠가 탔던 낯선 버스.

돌아가는 버스였는데

시간을 기꺼이 낼 정도의 예쁜 풍경이었다.

돌아가지 않았다면 보지 못했을 풍경들이었다.

가끔은 돌아가는 길이 더 좋은 길 같다.

사는 것도 그렇고.


돌아가도 목적지에는 도착하니까.




도로변이나 하천 옆 어디는 피는 금계국.

올해는 조금 일찍 피고 지는 것 같다.

이제는 씨를 맺어서 씨앗을 조금 받아왔다.

씨앗을 모으는 게 좋다.




벌레들을 막아주는 소중한 모기장이 종종 구멍이 난다.

꿰매도 봤는데 너무 귀찮아서

요새는 투명테이프를 잘라서 붙이고 있다.



저번에 재난지원금을 받으러 읍사무소에 갔는데

처음으로 어머니라는 소리를 들었다.


이모, 아줌마 소리는 시장에서도 많이 들어봤는데

어머니는 처음이다.

"어머니 이쪽으로 오세요"

선캡과 옷차림 때문인가?

라고 생각해도 어머니는 조금 그렇다.

어머니의 기준이 뭐지?


아줌마가 훨씬 낫다.

어머니는 뭐랄까 너무 진지해진다고!




부엌 창문으로 고양이가 지나가는 걸 본 적이 있다.

방충망 두 칸 정도를 차지하던 고양이가 가까워질수록

칸에서 세 칸으로 칸에서 여섯 칸으로 자리를 차지했다.


고양이는 열려있던 우리 집 대문으로 들어와서

화단 한쪽 땅을 헤집기도 하고

무궁화나무 위를 올려다보기도 했다.


뭐했나 싶어서 나중에 나가봤더니

내가 아끼는 달개비 줄기 하나가 꺾여 있었다.


비 오는 날은 습기가 스며들어 종이 냄새가 더 잘난다.

광택이 나는 하얗고 매끈한 종이보다

거칠거칠하고 조금은 누런빛이 도는 종이가

맡기 좋은 냄새가 난다.


비 오는 날은 책을 읽는다기보다 책에 비비적 거리며

심신에 안정을 주기 위해 책을 꺼낸다.

고양이처럼 옆에 있어만 줘도 좋은, 그런 역할을 한다.

박완서 작가의 산문집이나 법정스님 책 같은 것이 좋다.


산문집 같은 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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