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주황색 꽃이 피면 장마
by
돌강아지
Dec 21. 2021
6월 24일
장마가 시작됐다
.
조금 후덥지근하더니 비가 내린다
.
물감으로 짙푸른 여름날의 풍경을 그리고
붓을 헹군 물통
.
장마는 그런 물통 같다
.
나리꽃이나 원추리나 범부채나
전부
나리꽃인 줄 알았는데 다 다른
꽃이다
.
그려보니까 더 다르다
.
나리꽃을 보니까 진짜 여름이 온 것 같다
.
온갖 풀들이 거의 내 키만큼 자라는 들길에서
원추리 꽃을 보았다
.
주황색이 이렇게 시원한 색이었던가
.
요즘은 그 길에서 원추리꽃을 보는 게 제일 좋다
.
주황색 꽃이 피면 장마가 시작되는 것 같다
.
여름날 보았던 옛날 드라마들도 생각나고
모과나무 밑에서 매미를 구경하다가
매미
오줌에 맞은 일도 생각난다
.
빗소리는 참 듣기 좋다
.
모과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이렇고
옥수수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저렇고
옥상 물구멍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는 그렇다
.
비 오
는 날은 방에 불도 켜지 않고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주황색 꽃이 피면 장마가 시작된다'
이 생각 하나만 온전히 남았다
.
청개구리들은 지금
우리 집 어디에 숨어 있을까나.
대문 위? 바깥 화장실 문 위? 자전거 바퀴 아래?
화분 밑에?
비 오는 날 저녁은 오히려 하늘이 밝다
.
노란빛과
붉은빛이 도는 보라색이다.
하늘이 밝고 빗소리에 공상에 빠지기 쉽지만
곧 자야겠다
.
멍군이 밥그릇이 물그릇이 되었겠다
.
keyword
일상
장마
원추리꽃
3
댓글
댓글
0
작성된 댓글이 없습니다.
작가에게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새 댓글을 쓸 수 없는 글입니다.
돌강아지
'노지월동' 매해 겨울을 나고 봄이면 다시 꽃이 피는 다년생의 그림일기
구독자
17
제안하기
구독
작가의 이전글
아침 운동하다 만난 개들
비 오는 날 책 냄새
작가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