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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색 꽃이 피면 장마

by 돌강아지


6월 24일

장마가 시작됐다.

조금 후덥지근하더니 비가 내린다.

물감으로 짙푸른 여름날의 풍경을 그리고

붓을 헹군 물통.

장마는 그런 물통 같다.


나리꽃이나 원추리나 범부채나

전부 나리꽃인 줄 알았는데 다 다른 꽃이다.

그려보니까 더 다르다.

나리꽃을 보니까 진짜 여름이 온 것 같다.


온갖 풀들이 거의 내 키만큼 자라는 들길에서

원추리 꽃을 보았다.

주황색이 이렇게 시원한 색이었던가.

요즘은 그 길에서 원추리꽃을 보는 게 제일 좋다.


주황색 꽃이 피면 장마가 시작되는 것 같다.

여름날 보았던 옛날 드라마들도 생각나고

모과나무 밑에서 매미를 구경하다가

매미 오줌에 맞은 일도 생각난다.


빗소리는 참 듣기 좋다.

모과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이렇고

옥수수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저렇고

옥상 물구멍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는 그렇다.


비 오는 날은 방에 불도 켜지 않고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주황색 꽃이 피면 장마가 시작된다'

이 생각 하나만 온전히 남았다.


청개구리들은 지금 우리 집 어디에 숨어 있을까나.

대문 위? 바깥 화장실 문 위? 자전거 바퀴 아래?

화분 밑에?

비 오는 날 저녁은 오히려 하늘이 밝다.

노란빛과 붉은빛이 도는 보라색이다.

하늘이 밝고 빗소리에 공상에 빠지기 쉽지만

곧 자야겠다.


멍군이 밥그릇이 물그릇이 되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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