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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강아지 Dec 22. 2021

새해 달력

한 해가 지나갈 때쯤이면 아빠가 꼭 새해 달력을 가져왔다.

얇은 비닐이 씌워진 큰 달력.


예쁜 구석이 하나도 없고 글씨만 엄청 큰 달력에는

병원 이름이나 새마을금고 이름이 적혀 있었다.

염소를 키우니까 동물병원에서 달력을 받아 오기도 했다.

달력에는 날짜마다 밀물 썰물 시간이 작게 적혀 있었다.


아빠는 그 달력에 아빠만의 일정이나

그날 번 돈 액수 같은 걸 적었다.

한 달이 지나서 뜯은 달력은 언니랑 내가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생선을 구울 때 프라이팬 위를 덮기도 했다.


아빠가 없고 나서 새삼스러웠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새해 달력을 구하는 것이었다.

새해 달력은 그냥 당연히 생기는 건 줄 알았는데

공짜로 주는 달력도 아빠가 세심하게 받아 왔기 때문에

우리 집 벽에 걸리는 거였다.


아빠가 달력을 받아오면 그제야

. 한 해가 또 끝나는 구나하고 생각이 들었다.


아빠는 가끔 수영복 입은 여자들 사진이 있는

달력도 받아왔다.

아마 자주 가는 술집에서 받아왔을 거다.



겨울이 되면 난로를 때기 위해 나무를 잘랐다.

아빠가 마당에서 전기톱으로 나무를 자르면

톱밥이 많이 나왔다.

톱밥...

톱밥도 예쁜 말인 것 같다.


언니랑 나는 과학시간에 썼던 말굽자석으로

톱밥에 숨어있는 철가루를 찾았다.

신기하게도 톱에서 떨어진 철가루들이 많았다.


겨울이 되면 아빠 혼자 일하는 작은 자개 공장에 난로를 땠다.

나무 타는 냄새가 참 좋고 따뜻했다.


학교 갔다가 오는 길에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면

'아 아빠가 자개 공장에서 일하고 있구나'하고 알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오늘은 술 먹으러 안 갔구나'하고.

지금도 나무 타는 냄새를 맡으면 아빠 생각이 난다.


아빠는 겨울에는 찬바람이 들어서 자개 공장 문을

닫고 일했는데 문이 손잡이가 없는 그냥 양철판이었다.

그래서 아빠는 쇠를 묶은 끈을 못에 걸어서

문이 열리지 않게 했었다.


학교 갔다 와서 아빠한테 인사를 하려고 하면

기계소리 때문에 내가 불러도 아빠가 못 들었다.

그러면 나는 문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서

문을 열고 인사를 했다.


갔다 왔다고 인사를 하면 아빠는 웃어줬다.

몰랐었는데 아빠는 내가 공장문 열고 인사할 때마다

웃어줬던 것 같다.

잘 웃어줬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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