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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강아지 Dec 22. 2021

멍군이 안녕

요즘 밤나무 옆에서 보는

이른 아침의 달과 별 위치는 이렇다.


샛별은 동쪽 산 위에

샛별 다음으로 밝은 별은 저수지 위에

달은 우체부 아저씨 동네 위에.


언니가 샛별이 뜬 하늘을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마다 아름다움이 다 달라서

겨울 새벽 하늘처럼 아름다운 사람이 있고

봄처럼 아름다운 사람이 있고

여름처럼 아름다운 사람이 있다고.


멍군이는 날이 어두우면 집 안에 들어가 있다.

날도 춥고 이른 아침엔 해가 안 뜨니까

아침 운동 때 보면 늘 집 안에 들어가 있다.


언니랑 나는 멍군이 집 앞을 지나갈 때마다

매일 멍군이에게 손을 흔들어 주는데

멍군이는 반가워하지도 짖지도 않는다.


솔직히 나는 멍군이가 있는지 없는지 잘 안 보이지만

그냥 거기 멍군이 집이 있으니까

당연히 멍군이도 있겠지 하고 인사를 한다.

쳐다보는지 안 보는지도 모르겠다.



어느날은 몸이 너무 무겁고 피곤해서

멍군이가 집밖에 나와 있으면 인사하고

아니면 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멍군이가 매일 집안에 있으니까 그날은 인사를 안 하고 지나갈 마음으로 생각한건데


멍군이가 짜잔- 하고 나와있었다!

깜깜할때는 늘 집안에 있었는데...!


깜깜한데 밖에 나와서 우두커니 앉아 있는 멍군이를 보니

어이없기도 하고 우스웠다.

인사 안 하고 그냥 가려는걸 알았던걸까?

꼭 그런것처럼 그날 쌩뚱맞게 나와있었다.

뭔가 장난치는 것 같았다.

웃기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재밌어서 갑자기 힘이 났다.



멍군이에게 어느날보다 활짝 손을 흔들어주었다.


아 오늘 아침에는 내가 언니를 화나게 했었다.

그래서 분위기가 안 좋게 아침 운동을 갔다.

싸워서 말은 안 해도 늘 운동은 같이 간다.

걷다가 멍군이 집앞을 지나는데 속으로 언니가 과연 멍군이에게 손을 흔들까 안 흔들까 궁금했다.

기분이 안 좋으니까 오늘은 그냥 갈거라고 생각했는데

언니가 멍군이를 보더니 손을 흔들었다.

뭔가 다행이기도 하고 조금 우습기도했다.

습관일까 애정일까.


하긴 싸웠다고 멍군이에게 인사를 안 하는 

너무 한 것 같기도 하다.



아침에 동트는 쪽을 보면 꼭 차를 우리는 것 같다.

하늘에 해 티백을 넣어서 붉은색이 점점 퍼지는 것 같다.

색감이 결명자 같기도 하고...



지난번에 홍시를 사서 선반 위에 올려놓았다.

마당에도 상자를 깔고 놓아두었다.

투명한 빨간색이 되면 먹는데 빨리 안 익는 것 같다.


잘 익은 홍시는 정말 정말 달고 맛있다.

아이스크림 같다.

자연에서 이런 단맛이 나다니..!

이름도 예쁘다 홍시.


겨울에 보이는 것 중에 예쁜 이름을 많이 발견했다.

생강. 예쁘다는 생각을 한번도 못했는데

어제 김장 준비한다고 생강을 까면서 문득 들었다.

생강 생강 생강.

입안에서 굴리면 단어가 생강처럼 옹기종기 귀엽다.

그리고 귤도 예쁘고 딸기도 예쁘고 냉이도 예쁘고

따끈한 두부도 예쁘다.


생강 생강 귤 귤 딸기 딸기 냉이 냉이 두부 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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