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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강아지 Dec 22. 2021

나에게 쓴소리를 해주는 개

올해 장마는 7월 3일 오전 10시 40분쯤 시작됐다.

마치 기차처럼 그렇게 도착했다.

한 번도 시간까지 본 적은 없었는데

올해는 빗방울이 떨어질 때 시계를 봤었다.

정말 누군가 도착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세탁기 뚜껑에 붙어있던 '애기네눈박이푸른자나방'

이름 한번 길고 솔직하다.


예쁜 색깔을 가진 나방이라 이름이 궁금해서

인터넷에 '옥색 나방' '네점나방'등 추측해서 검색해보았는데 애기네눈박이푸른자나방이었다.

막상 이름을 알게 되면 바로 이해가 가는 이름인데

거꾸로 이름을 찾으려고 하면 막연하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도 나방 이름을 짓듯이

이름을 지어주었다면 뭐라고 지었을까.

새치머리짙은눈썹주근깨길쭉이?


나는 옥색이라고 느꼈는데 이런 색의 나방에겐

'푸른'이라는 이름이 붙는 것 같았다.

초록과 파랑, 오묘한 옥빛의 경계까지 넘나드는

'푸른'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었다.


정말 오묘하고 예쁜 색을 가졌다.

사실은 짙은 초록색을 가졌었는데 몇 백 년을 살아서

색이 바랜 것은 아닌지...

혹시 나방 유령은 아닌지...

마치 사는 곳이 꿈속일 것처럼 몽롱하게 생겼다.


오래된 그림 액자 뒤나 누군가의 꿈속에서 살 것 같다.


어느 집 앞을 지나다가 그 집 개가 막 짖을 때가 있다.

나는 개가 짖으면 얼굴이 빨개진다.

놀라서 그런 것도 있고

화나서 그런 것도 있고

내성적이라 주목(?) 받아서 그런 것도 있다.

또 어쩐지 나쁜 사람으로 몰린 것 같아서 그런 것도 있다.


그리고 실제로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개들은 다 안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도 있다.

아무튼 여러모로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

누가 나에게 저렇게 큰소리로 쓴소리를 해주겠나 싶다.



마루에 누워 있다가 수납장 밑에서

엄마가 한  전쯤 잃어버렸다던 빨간약을 발견했다.



그렇게 찾아도 없었는데...

다음에 이사 갈 때 신기한 많이 발견할 것 같다.

타임캡슐 같은 거 적어서 수납장 밑으로 대굴대굴 굴려 넣어도 될 듯.

이사  때 개봉하는 걸로.


방충망에 나방이 세 마리나 붙어있다.

한 마리는 박각시인지 엄청나게 크고 두 마리는 작다.

먼지 비슷한 오래된 색깔이다.

오늘은 우리 집 방충망에서 잘건 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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