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실행
신고
라이킷
16
댓글
4
공유
닫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브런치스토리 시작하기
브런치스토리 홈
브런치스토리 나우
브런치스토리 책방
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돌강아지
Dec 22. 2021
살얼음 같은 낮달
공기가 차갑고 하늘이 아주 파랬다.
파란 하늘에 흰 낮달이 떠있었다
.
겨울 낮달은 곧 녹아 없어질 것 같은 살얼음을 닮았다
.
저 얼음이 언제 녹을까 생각하며 오래도록 달을 봤다
.
낮달은 심심한 시간에 뜬다
.
낮달이 떠있을 때 해 바라기를 하는 고양이들을 많이 봤다
.
고양이들은 낮달이 뜨는 시간에 모습을 드러내는 걸
편해하는 것 같다
.
세상이 심심해지기를 기다렸다가 나오는 것 같다
.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마음은 아무래도 가슴에 있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
굉장히 슬펐을 때 가슴이 쿵하는 게 느껴졌다
.
비유가 아니라 정말 그랬다
.
쿵 하고.
거기쯤 떨어졌으니까 거기에 있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
어릴 때 집에 혼자 있는데 아빠를 찾는 손님이 왔었다.
우리 집
이 염소를 키웠으니까 염
소를 사러 왔던
손님이 아니었을까 싶다
.
아빠가 금방 온다고 해서
아저씨는 혼자 우두커니 앉아서 기다렸다
.
나는 멀뚱이 앉아 있는 손님을 위해 뭔가를 대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집에 사과가 있어서 사과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
문제는
부엌칼이 커서 무서웠다는 것이다
.
그래서 나는 내가 쓰던 학용품 칼을 씻어서 사과를 깎기로 했다
.
아저씨는 내가 사과를 깎아 내오니까 엄청 감동한 것 같았다
.
나는 뿌듯했다
.
몇 살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
아저씨가 내가 학용품 칼로 깎아 온 줄도 모르고 고마워했던 건 기억난다
.
소꿉놀이도 아닌데 아저씨께 소꿉놀이처럼 사과를 드렸다
.
지금 생각하면 너무 죄송하지만 아저씨의 표정이 인상 깊었던 걸 보면 드리길 잘했다는
용기 있는 생각도 든다
.
아침에 마당을 나갔더니 이상한 게 있었다.
자세히 보니까 새의 뼈였다
.
그냥 하얀 뼈밖에 없어서 징그럽거나 많이 거북하지는 않았는데 어째서 이런 게 갑자기 마당에 있는지 궁금했다
.
생각해봤는데 독수리가 들고 가다가 떨어뜨렸거나
짱이가 내가 멸치를 준 답례로 가져다 놓았거나
이 두 가지가 제일 가능성이 있는 것 같다
.
나는 긴 나무 막대기 두 개를 젓가락처럼 사용해서
뼈를 주워 버렸다
.
참 이상한 뒤치다꺼리를 다 한다고 생각했다
.
요즘 밤하늘에서 북두칠성을 잘 볼 수 있다.
역시 겨울에 별이 많이 보인다
.
북두칠성이 국자 모양이라고 하는데 나는 물음표 같다
.
밤하늘에 커다란 물음표.
나이가 들수록 궁금한 게 더 많아진다
.
이상하게, 모르는 것들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것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알고 싶다
.
모르는 것들은 모르고 싶고
아는 것들을 알고 싶다
.
우리는 왜 태어났을까
이런 일은 도대체 왜 일어날까
나는 누구일까
왜라는
물음이 많아져서 그런지
요즘 북두칠성을 보면
저것은 국자도 아니고 북두칠성도 아니고
알 수 없는 이 세상에 대한
우주의 커다란 물음표라는 생각만 든다
.
북두칠성은 항해할 때 길잡이가 되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그런 것 같다
.
살면서 계속 질문을 던져서 길을 찾으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
keyword
달
생각
일기
돌강아지
'노지월동' 매해 겨울을 나고 봄이면 다시 꽃이 피는 다년생의 그림일기
구독자
17
제안하기
구독
작가의 이전글
굴뚝청소부
메리 크리스마스
작가의 다음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