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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강아지 Dec 22. 2021

살얼음 같은 낮달


공기가 차갑고 하늘이 아주 파랬다.

파란 하늘에 흰 낮달이 떠있었다.


겨울 낮달은 곧 녹아 없어질 것 같은 살얼음을 닮았다.


저 얼음이 언제 녹을까 생각하며 오래도록 달을 봤다.

낮달은 심심한 시간에 뜬다.

낮달이 떠있을 때 해 바라기를 하는 고양이들을 많이 봤다.

고양이들은 낮달이 뜨는 시간에 모습을 드러내는 걸

편해하는 것 같다.

세상이 심심해지기를 기다렸다가 나오는 것 같다.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마음은 아무래도 가슴에 있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굉장히 슬펐을 때 가슴이 쿵하는 게 느껴졌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 그랬다.

쿵 하고.


거기쯤 떨어졌으니까 거기에 있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어릴 때 집에 혼자 있는데 아빠를 찾는 손님이 왔었다.

우리 집이 염소를 키웠으니까 염소를 사러 왔던

손님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빠가 금방 온다고 해서

아저씨는 혼자 우두커니 앉아서 기다렸다.

나는 멀뚱이 앉아 있는 손님을 위해 뭔가를 대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집에 사과가 있어서 사과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부엌칼이 커서 무서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쓰던 학용품 칼을 씻어서 사과를 깎기로 했다.

아저씨는 내가 사과를 깎아 내오니까 엄청 감동한 것 같았다.

나는 뿌듯했다.


몇 살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아저씨가 내가 학용품 칼로 깎아 온 줄도 모르고 고마워했던 건 기억난다.


소꿉놀이도 아닌데 아저씨께 소꿉놀이처럼 사과를 드렸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죄송하지만 아저씨의 표정이 인상 깊었던 걸 보면 드리길 잘했다는 용기 있는 생각도 든다.


아침에 마당을 나갔더니 이상한 게 있었다.

자세히 보니까 새의 뼈였다.

그냥 하얀 뼈밖에 없어서 징그럽거나 많이 거북하지는 않았는데 어째서 이런 게 갑자기 마당에 있는지 궁금했다.


생각해봤는데 독수리가 들고 가다가 떨어뜨렸거나

짱이가 내가 멸치를 준 답례로 가져다 놓았거나

이 두 가지가 제일 가능성이 있는 것 같다.


나는 긴 나무 막대기 두 개를 젓가락처럼 사용해서

뼈를 주워 버렸다.

참 이상한 뒤치다꺼리를 다 한다고 생각했다.



요즘 밤하늘에서 북두칠성을 잘 볼 수 있다.

역시 겨울에 별이 많이 보인다.

북두칠성이 국자 모양이라고 하는데 나는 물음표 같다.

밤하늘에 커다란 물음표.


나이가 들수록 궁금한 게 더 많아진다.

이상하게, 모르는 것들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것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알고 싶다.

모르는 것들은 모르고 싶고

아는 것들을 알고 싶다.


우리는 왜 태어났을까

이런 일은 도대체 왜 일어날까

나는 누구일까


왜라는 물음이 많아져서 그런지 요즘 북두칠성을 보면

저것은 국자도 아니고 북두칠성도 아니고

알 수 없는 이 세상에 대한

우주의 커다란 물음표라는 생각만 든다.


북두칠성은 항해할 때 길잡이가 되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그런 것 같다.

살면서 계속 질문을 던져서 길을 찾으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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