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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강아지 Dec 25. 2021

메리 크리스마스


시장에 파프리카가 한 바구니에 5천 원 했다.

파프리카가 비싸서 살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옆에서

한 아주머니가 "파프리카가 너무 비싸다~ 이모랑 나랑 사서 반반 나누자"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잘됐다고 생각했다.


아주머니는 "이모 하나, 나 하나, 이모 하나, 나 하나..."

하며 봉지에 하나씩 나눠 담았다.

색깔도 골고루.

다행히 짝수였다.


나는 기분이 좋았다.

파프리카를 싸게 사서, 이렇게 모르는 사람 둘이 만나 나누는 게 인간적이라서, 그리고 파프리카가 짝수라서.


문득 아주머니는 어느 동네에 살며 

파프리카로 무얼 해 드실까 궁금했다.

이번에 산 귤이 정말 달고 맛있다.

요즘 계속 새콤한 귤만 먹다가 맛있어서 귤을 한 자리에서 스무 개 정도 먹었다. 스무 개 넘게 먹었나...


예전에 시장에서 귤을 사고 돈을 건네는데

과일가게 아저씨가 내 손을 보더니 손이 왜 이렇게 노랗냐고 귤을 많이 먹어서 그렇냐고 한 기억이 난다.


안 그래도 노란데 귤을 많이 먹어서

더 노란 인간이 될 것 같다.

꽃은 노란색도 예쁘지만

사람은 노래지면 안 예쁘다.


가루약이나 물약을 먹다가

알약을 먹기 시작하던 때가 떠오른다.


감기였다.

큰 알약을 엄마가 부엌칼로 반으로 쪼개 줬다.

보리차 한 컵과 알약을 손에 쥐고 긴장한 채로

망설이고 있으면 엄마가

"얼른 먹어 얼른 꿀떡 삼켜"라고 재촉했다.

나는 감기보다 약이 더 싫었다.

나는 왜 감기에 걸려서 이 험난한 알약 삼키기를 해야 하나 생각했다.

큰 결심을 하고 알약을 삼키면

알약은 목구멍 바로 앞에서 멈추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녹았다.

매끄러워서 넘기기 쉬워 보이는 코팅된 알약도 코팅이 입천장에 붙어서 넘어가지 않았다.

나는 고래처럼 물을 몇 번이나 더 들이켜 알약들을

멀리 보내버렸다.


어릴 때 약을 늘 보리차와 같이 먹어서 그런지

지금도 보리차를 먹으면 묘하게 약 맛이 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서 보리차는 잘 안 끓여먹는다.


나와 다르게 아빠는 많은 약을 한 번에 잘 삼켰다.

그냥, 아빠는 약을 자주 먹고 

많은 알약을 한 번에 잘 삼킨다고 생각했는데

아빠는 어디가 아팠던 걸까.


어릴 때 언니가 아빠가 아끼는 소나무를 잘라서 트리를 만들어줬다.

강렬한 기억이 없는 걸 보면 의외로

그렇게 많이 혼이 나지는 않았나 보다.

언니는 가끔 너무 황당한 짓을 해서 아빠가 화내기를

포기한 것 같기도 했다.


집에 있는 빈 작은 단지에 흙을 채우고 나무를 꽂았다.

언니가 학교에서 받아온 트리 장식으로 나무를 꾸몄다.

어릴 때부터 언니는 트리 만드는 걸 좋아했다.

여전히 트리를 좋아하는 언니는 나중에 이사 가면

큰 트리를 만들 거라고 했다.



집에 난로를 때서 아빠는 겨울에 나무를 했다.

언젠가 언니가 아빠한테 트리 나무를 하나 해달라고

하니까 아빠가 작은 나무를 해준 기억이 난다.

삼각형으로 정말 트리랑 비슷했다.

쓸데없고 귀찮은 일이었을 텐데

나무를 해준 아빠가 지금에서야 진심으로 고맙다.

생각과 마음은 늘 약속 시간에 늦게 도착하는 것 같다.


어제 꿈속에서 저스틴 비버도 나오고

아빠도 나온 것 같다.

꿈이 입김처럼 사라져서 잘 기억이 안 난다.

사람이 자는 시간도 많으니까 꿈에서라도 맨날 나오면 좋을 텐데.

그러면 잠만 자려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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