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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렛 이터 Dec 04. 2021

방어기제 극복하기 - 회피와 해리

회피형 인간의 작은 실패 마주하기

주말 아침, 브런치에 올렸던 하나의 주제를 관통하는 글들을 브런치북으로 묶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을 적고, 브런치북 소개를 쓰기 시작했다. 짧지만 핵심을 담아내며 멋진 문장이 쓰였다. 새삼 그동안 왜 아침에 글 쓰는 일을 하지 않았는지 탄복하며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카테고리도 술술 써졌다. 그동안 매일매일 느꼈던 것을 글로 써 내려갔는데,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맥락을 이루고 있음에 놀랐다. 각 카테고리를 작성하니,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글이 써질지 기대되기도 했다.

카테고리를 완성하고 그동안 썼던 글을 옮기는데, 그만 문제가 생겨버렸다.

첫 번째 글을 두 번째 카테고리로 옮기고 두 번째와 세 번째 글을 다른 카테고리로 옮기려는데, 첫 번째 글이 계속해서 복사되는 것이었다.

아이패드의 사파리로 작업하던 것이 문제였을까. 나는 황급히 맥북에 사용하던 애플 마우스를 가져와 연결하고 다시 글을 정리해갔다.

아니 정리하려 했지만 상황은 악화될 뿐이었다.

두 번째 세 번째 글을 선택해도 처음 선택한 첫 번째 글만이 카테고리로 옮겨질 뿐이었고, 취소를 누르려 x표시와 등록된 글을 다시 눌러도 계속해서 첫 번째 글이 중복으로 올라갈 뿐이었다.

총 12개의 중복된 첫 번째 글을 올리면서 글을 취소할 방도가 없음을 깨달은 나는 그만, ctrl+z를 눌러버렸고 작성된 카테고리들은 모두 지워졌다.

우습게도 12개의 중복된 글들은 그대로였다.

당황한 나는 오른쪽 상단의 ‘취소’ 버튼을 눌렀고, ‘마지막에 수정된 카테고리만 저장됩니다’라는 안내문에 잠시 주저했고, 다시 한번 카테고리를 살릴 방법을 이리저리 모색했지만 제자리였다.


‘그래, 카테고리야 뭐 다시 쓰면 되지.’

‘단 몇 분 전에 쓴 짧은 네 개의 문장인데 뭐 크게 달라지겠어?’


나는 과감하게 뒤로 가기를 선택했고, 다시 ‘브런치북 만들기’로 돌아왔다.


브런치북 만들기’의 브런치북 소개와 심지어 제목까지 지워져 있었다.

눈앞이 하얘지고 손이 덜덜 떨렸다. 이게 뭐라고.

나는 얼른 앞으로 가기를 눌러 실수를 되돌리고 싶었다.

하지만 나오는 건 비어있는 화면뿐이었다.



하…


아침에 느꼈던, 엄청난 효능감과 자신감은 글을 쓰며 실로 오랜만에 느껴본 것들이었고 나는 그것을 단 몇 분만에 모두 잃고 말았다.


그렇게 모래성처럼 허무하게 무너진 효능감 앞에 나도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이대로 무너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까지 그렇게 무너지고 실망하고 힘겹게 오른 궤도를 이탈해버렸던 이력들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런 무기력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나는 괜찮다는 말을 속으로 반복하며 다시 자판을 두드렸다.


좀처럼 아까와 같은 멋들어진 문장이 나오질 않았다.

아까 그 문장이 아니야.’

아까처럼 멋지지 않아.’

‘지워진 문장들은 꼭 글을 읽고 싶게 만들었단 말이야.’


생각들은 백스페이스를 누르게 만들었고, 나는 몇 글자 적다가 다시 빈 화면을 만들어내기 일쑤였다.


마음이 답답해졌다.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멍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느낀 것은 또다시 방어기제 중 하나인 해리를 겪고 있던 것이었다.)


일단, 지금 이 답답한 느낌을 개워내 보자는 생각으로 일어났다. 평소에 미뤘던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작은 캔버스에 젯소 칠하는 일. 다른 커다란 캔버스들이 있기에 작은 그림을 그릴 작은 캔버스는 하찮게 여겼던 모양이었다. 게다가 그 위에는 내가 그렸던 정말 하찮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동안 이 작은 캔버스를 마주하는 일도, 젯소를 칠하는 일도 피했던 것 같았다.

다른 일을 피하기 위해서 이 일을 지금 해놓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오랜만에 젯소를 찾아 물에 개었고, 몸이 기억하는 대로 창고에 넣어두었던 캔버스를 찾아 붓질을 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아이패드 앞에 앉아 사파리를 열었다.

자판을 두드리는데 아까와 같은 마음이 사그라들지 않았고 나는 도망치는 마음으로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냈다.

‘내가 이러고 있으면 안 되는데’하는 생각이 자라나 일종의 죄책감을 형성할 때쯤,

TV 콘센트를 뽑듯 스마트폰을 엎어놓고 시계를 보았다.

그렇게  시간하고 삼십 분이 나가 있었.


막막함과 작은 좌절감에 마음이 답답해졌다.


하지만 이대로, 또다시 과거의 내가 그랬듯, 하루를 버릴 수는 없었다.

하나의 작은 좌절로 그 하루 전체를 망칠 수 없었다.


잠깐 넘어져도 털고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마음의 근력을 길러서 크고 작은 돌부리에 넘어지지 않아야 한다.

나는 작은 좌절에도 의연해져야 한다.

지금 느끼는 작은 좌절을 나중엔 ‘좌절’로 느끼지 않아야 한다.


문제 상황을 회피하여 마주하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기에, 문제 상황에 더 크게 아파한다.

그럴수록 회피하는 습관을 인지하고 문제 상황에 의연해져야 한다.

머리가 새하얘지는 해리도 마찬가지이다.

다시 숨을 크게 들이쉬고 ‘괜찮아’와 ‘어떻게 해결하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오늘 다시 다짐한다. 마음의 근력을 기르자, 그리고 의연해지자.

내일 그리고 다음 주에 다시 똑같은 결심을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때는 내 마음의 몸집이 더 단단하고 커져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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