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나의 미소를 떠올리며
컬러칩을 만들기 위해 노란색을 눌렀다. 지금보다는 차가운 느낌이 들도록, 눈으로 푸른색을 한 방울 더한 색을 좇았다. 막상 누르니 RGB 수치에서 B(blue) 만큼 붉은색을 나타내는 R(red)도 함께 흔들렸다. 제아무리 용을 써도 육안으로는 원하는 만큼 정확한 색을 얻을 수 없었다. 문득 AI라면 단번에 색을 추출할 수 있겠지, 하고 생각했다. 사랑도 그럴까.
도대체 넌, 나에게 누구냐
3년 전 헤어진 그에게 연락이 왔다. 감정을 드러내고 너절하게 구는 것은 언제나 내 몫이었는데. 오랜만에 본 그는 살이 조금 쪘다는 것 외에 달라 보이지 않았다. 다만 세파에 지친 표정이 기세등등했던 과거와는 동떨어져 보였다. 전날 그에게 흔들릴까 걱정한 것과 달리, 만난 뒤 든 감정은 연민이었다. 설렜으면 모를까, 연민이라니. 혼란스러웠다.
사랑과 연민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자문했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사랑이란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오늘은 또 무엇이 너를 괴롭게 했는지 듣고 싶은 마음 아닐까. 상대방의 하루가 안녕했는지 안부를 묻고 토닥이는 마음. 더불어 그도 다정하게 내 얘기를 들어줬으면 하는 마음. 그럼 연민은?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별일 없는지 묻는……아, 이거 뭐지.
문득, 로나의 미소를 떠올렸다
영화 <로나의 침묵>이 떠오른다. 사랑과 연민의 경계를 모호하고도 인상적인 방식으로 그린 영화. 알바니아 출신 로나는 벨기에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 마약 중독자 클로디와 위장 결혼한다. 이후 로나는 또 러시아 국적을 얻음으로써 한몫 챙기려고 한다. 그는 마약을 끊게 도와달라는 클로디가 성가시기만 하다. 그리고 성가심은 어느덧, ‘눈에 밟힘’으로 변모한다.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클로디가 새로 산 자전거에 올라타면서 “이젠 마약도 끊고 직장도 구할 거야”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클로디는 로나를 향해 환하게 웃는다. 시종일관 무표정이었던 로나도 미소 지으며 클로디에게 손을 흔든다. 클로디가 그런 말을 하도록 한 인물은 로나였다. 위장부부일 뿐이지만, 지근거리에서 클로디가 위태로울 때마다 붙잡아 준 사람.
때때로 사랑은 연민으로 시작된다. 영화 전체에서 로나의 마음이 연민인지 사랑인지는 의견이 분분할 테다. 하지만 앞선 장면에서 로나의 마음은 사랑이었다고 본다. 로나에게 그저 연민의 대상이었던 클로디가 로나의 무미건조한 삶을 물들이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연민은 상대방을 버티게 한다. 나아가 그를 통해 자신의 삶을 버틸 때, 사랑은 시작된다.
나를 채워줘, 나도 너를 채워줄게
연민은 타자의 결핍을 발견할 때 찾아온다. 우리는 연민하는 누군가에게 감정을 베푼다. 베풂은 연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연민은 지구 반대편 전쟁 포화 속에 있는 아이를 향할 수도 있고, 거리에서 만난 짐을 잔뜩 이고 가는 할머니일 수도 있다. 나는 그를 안쓰럽게 여기지만, 그 속에서 나의 결핍까지는 보지 못한다.
하지만 상대의 결핍 속에서 자신의 결핍을 발견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를 갈망하게 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호출하고, 응답한다. 사랑은 ‘나를 채워줘’라는 요청이다. 자신에게 부족한 것은 상대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결핍된 존재임을 깨닫는다. 두 사람은 서로의 필요항이 된다.
연민은 상대를 안아주지만, 상대가 나를 안아주길 바라진 않는다. 시혜적인 감정이다. 상대에게 선의의 메시지를 보내지만, 답신을 바라지 않는다. 사랑은 다르다. 연민처럼 상대에게 마음을 주지만, 상대의 마음 또한 갈구한다. 연민이 ‘내가 너를 채워줄게’라면, 사랑은 ‘나를 채워줘, 나도 너를 채워줄게’이다.
이 글은 사랑과 연민을 구별하기 위해 쓰이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연민과 사랑을 물과 기름처럼 분류하는 데 실패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나는 상처 입은 그를 껴안아 줄 순 있지만, 상처 입은 나를 안아줬으면 하는 사람은 그가 아니라는 것을. 그의 기쁜 일에 활짝 웃어줄 순 있지만, 나의 좋은 날에 곁에 있어줬으면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다. 나에게 부족한 것은 바로 너였다.
오랫동안 본론을 쓰지 못했다가 겨우 마무리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