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예쁘고 맛있어도, 가끔이면 충분해
토끼정, 겟썸커피, 미분당, 도로시인호텔, 스테이크아웃, 더블트러블, 크리마레, 지올리띠….
오랜만에 전시회를 보러 찾은 강남은 새로운 맛집과 신기한 상점으로 가득했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피드에서 스쳐보았던 상호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는 오픈 샌드위치를 먹어봐야 한다던데. 오, 더티 카푸치노로 유명한 카페다! 이번에 오픈한 뷰티 스토어도 있네. 눈알을 휙휙 굴리고 있자니 뭣 때문에 왔는지도 잊어버렸다.
자본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장소에 생겨나고 사라지는 곳들. 가게들은 무료함을 쫓으려고 들어선 것만 같았다. 돈이 많다는 건 권태롭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무엇을 봐도 흥, 하고 콧방귀를 뀌게 되는 상태. 쏟아지는 새로움에 치여 감각이 마비된다. 자극에는 한계가 있다. 수직적인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자극은 짜릿함을 주지만, 흥분은 가라앉기 마련이다.
주말, 인천 번화가의 한 식당에서 파스타를 먹던 중 엄마는 아빠가 직장 생활을 하던 시절을 회상했다. 월급 직전이면 파 한 단 살 돈이 없어서 동전을 모아두던 돼지 저금통을 열었다는 이야기.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아빠는 자영업을 시작했다. 현재는 그때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풍족하다. 엄마는 “월급날이 외식하는 날이었지”라고 추억했다.
나는 커서는 부모님이 쌓아온 윤택함을 누렸지만, 마찬가지로 그분들의 정성으로 행복했던 유년을 얻었다. 엄마는 내 생일이면 친구들에게 주특기인 김밥을 4단으로 쌓아 솜씨를 뽐냈다. 주말 하면 떠오르는 풍경은 학교 운동장에서 아빠 손을 잡고 모래사장에 박힌 타이어를 폴짝 뛰던 모습이다. 나는 “외식이 잦다면 어떤 저녁도 인상적이지 않을 거야”하고 덧붙였다.
행복은 자극과는 속성이 다르다. 행복은 수직적인 것이 아니며, 수평적인 것도 아니다. 행복은 우리를 중심으로 움직이지 않은 채 머무른다. 행복은 자신을 구심점으로 한 파동에 가깝다. 행복한 사람은 외부의 자극을 좇거나 현재에 불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넉넉하다. 자극이 치솟음과 꺼짐을 반복할 때, 행복은 그 자리에서 빙긋이 웃고 있다.
자극이 아무리 탁월해도, 그로 얻는 즐거움은 제한적이다. 강변을 따라 자전거를 탄 뒤 마시는 카스 한 캔과 남산이 보이는 레스토랑에서 마신 에일 한 잔. 미식가가 아닌 사람으로선 전자보다 후자가 맛있다고 배로 만족스럽진 않다. 행복의 부산물인 기억은 탁월한 맛이나 이색적인 공간보다는 그날의 기분, 그날의 바람, 곁에 있었던 사람과의 호흡에 달려 있다.
희한한 인테리어의 식당과 귀여운 물건이 가득한 쇼핑몰을 헤매는 행위는 우리를 곧장 충족시키지만, 금세 시큰둥하게 만든다. 자꾸만 돈을 쓰게 한다. 생각한다. 강남과는 한 달에 한 번, 딱 이 정도 거리가 좋겠다고. 물론 지금 나는 신논현의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다. 이따가 아우어에서 앙버터 바게트랑 스콘을 사 가야지. 같이 먹을 사람들이 있으니까, 괜찮을 것 같다.
행복을 사치스러운 생활 속에서 구하는 것은 마치 그림 속의 태양에서 빛이 비치기를 기다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폴레옹 1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