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띠가 날 것 같으니 좀 떨어져 있자

연애에도 거리가 필요해

by 궁금한 민지


사람들은 일상의 소중함을 말한다, 하지만 무언가 강조되는 상황은 그만큼 소홀히 취급당한다는 사실을 드러낼 뿐이다. 어느 누가 아침 6시에 일어나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실은 채 남과 살을 부대끼고, 월급날을 기다리며 천원이라도 저렴한 밥을 사 먹고, 매상을 따져보며 손님 올세라 쫓기며 점심을 우겨넣고, 똑같은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을 항시 사랑할 수 있을까.

연애도 그렇다. 연인이 보내는 밥 먹었느냐는 문자, 크게 달라지지 않는 고민거리, 식당과 바를 전전하는 데이트가 말 그대로 시시콜콜하게 여겨질 때가 있다. 도파민이 더는 분출되지 않는 오래된 연인이라면 더 그렇다. 뻔히 아는 그의 지갑 사정에 내는 밥값이 왜 이리 아까운지. 3년째 신는 샌들은 왜 그리 후줄근한지, 어제도 방콕 데이트를 했는데 또 집으로 오라는 건 무슨 심산인지.




영화 <연애의 온도> 스틸컷

연인의 행동이 달갑지 않다면 고민해보자. 그와 땀띠 날 정도로 부대끼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햇볕이 내리쬐는 오후 2시, 손깍지를 낀 연인을 떠올려본다. 더워 죽겠는데, 잠시 손을 놓고 생수를 들이키고 싶은데, 서운해할 눈빛을 볼 자신이 없어 마지못해 잡은 두 손을. 종이 한 장 끼어들 자리도 없이 맞댄 두 손바닥엔 땀이 흥건하다.

지루함을 넘어선 지겨움, 혹은 지겨움을 초월해 지친 상태라면 거리를 두자. 연애도 썸처럼 거리 조절이 필수다. 연애 초반 우리는 조심스럽다.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에 눈살을 찌푸리는지, 무엇에 까르르 뒤로 넘어가는지, 최근 화두는 무엇인지 알고 싶지만 신중하게 다가가고, 물러선다. 그 시절엔 연인의 말과 행동을 속단하지 않았으며, 궁금하거나 답답한 부분이 있더라도 추궁하거나 개입하지 않았다.




우리는 늦은 밤 가족들이 잠든 집에 귀가할 때처럼, 낮고 부드럽게 연인의 문을 두드리고, 젖혀야 한다. 연애 초반이 벽을 허무는 시기였다면, 후반부는 서로를 위한 낮은 울타리를 세워야 하는 시기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역설적으로 두 세계를 잇는 산책로를 발견하게 한다. 그리고 우리는 산책로에서 밉살스러웠던 그의 습관의 이유를, 그에게 맞추느라 숨가빴던 자신의 정서를 살필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연애의 온도> 스틸컷

연인 계좌의 잔액을, 태평한 낮잠이 포함된 하루 일과를, 화장실에 똑 떨어진 휴지를, 속속들이 알려고 하지 말자. 울타리 너머 뜰은 그의 몫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정원을 가꿔야 한다. 연인의 정원을 간섭하느라 소홀했던 자신의 정원을 돌보자. 부옇게 낀 거미줄도 치우고, 무릎만치 자라난 잡초도 뽑고, 삐뚤빼뚤 자란 가지도 쳐주자. 준비를 마쳤다면 말하자. 오늘은 내 정원에 놀러 오라고.




아, 연인이 자기 정원을 돌볼 생각이 없다면? 연인의 정원사가 되고 싶지 않다면, 그만두는 편이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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