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날 지탱한 것은 웃음이었다
오랜만의 연차였다. 바다로 떠나지도, 숲을 찾지도 않았다. 그저 대학생 때의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5년간 살았던 혜화동으로 향했다. 몇 달 전 짧게 머물러 아쉬웠던 광화문의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창덕궁도 거닐다가 저녁에는 대학로에서 연극을 봐야지. 눈대중으로 줄거리를 보고 예매했다. <킬롤로지>라는 연극이었다.
극에는 톰과 데이비라는 두 청년이 등장했다. 데이비의 아버지는 데이비가 9살 되던 해 집을 나가고, 데이비는 어머니와 살아간다. 그는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또래 집단의 폭력에 노출된다. 폴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아버지를 뒀다. 그는 좋은 자질을 타고났음에도 제 능력치를 발휘하지 못한 ’못난 놈‘ 소리를 듣는다.
자식을 떠난 뒤 폐인이 된 아버지, 항상 더 잘될 수 있었는데 망쳤다고 말하는 아버지. 톰과 데이비는 전혀 다른 아버지를 뒀지만, 아버지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에서 같다. 극의 말미 두 청년은 창공의 별을 향해 시선을 띄운다. 아버지와 보냈던 한때를, 혹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과거를 그린다. 애처로운 이야기였다. 그러나 어쩐지 나는 ’슬프군‘ 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20대 중반까지 내 정서를 지배했던 것은 비극이었다. 정점을 향해 나아가는 인물들과 그에 어울리는 형식에 동요됐다. 갈등과 그를 타파하는 명확한 몸짓. 아름다웠다. 삶의 복잡함과는 거리가 멀었고, 지지부진한 행동, 모호한 태도와도 무관했다. 예술은 그런 것이고, 삶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그렇게 살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에 관해 다룬 <시학>에서 비극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비극은 완전한 행동의 모방이다.”
비극의 행동이 ’완전하다‘는 뜻은 비례와 척도의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비극의 행동은 열정, 능력, 그리고 추구하는 가치가 조화를 이루어 인간의 고귀함을 보여줍니다. 영웅은 초능력을 지닌 슈퍼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웅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인간의 가치를 보존하는 인물을 뜻합니다.
-오종우, <예술 수업> 중에서
비극 속 인물들은 가혹한 상황 속에서 절룩거리지만, 자신의 인생을 무대 중앙으로 끌어들인 뒤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헤쳐나간다. 인물들은 상황에 진지하게 몰입하고, 이야기는 숭고하게 극적이다. 인물들의 고뇌는 극에 중압감을 불어 넣는다. 모든 사안은 중대하고, 가치 있는 방향으로 해결해야 한다. 도처에 진중함이 가득하다.
지난해 봤던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을 떠올린다. 의지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인 여자 연옥과 다정하지만 속을 알기 어려운 남자 정민의 이야기였다. 연옥은 정민의 아이를 임신하지만,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혼자 아이를 낳는다. 정민은 내내 연옥 곁을 지켰지만, 그 순간만큼은 곁에 없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 엇갈린 두 사람은 한참 뒤 재회한다.
한때 깊이 사랑했던 그들은 목요일마다 만나기로 한다. 그들은 망가진 과거를 복기하고자 한다. 그러나 매번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무엇이 진실인지 아는 데 실패한다. 대신 그들은 어디서 어떻게 엇갈렸는지 발견한다. 두 사람은 솔직하지 못한 탓에, 용기가 없는 탓에 상대에게 기대고 싶다고 말하지도 못한 채 각자의 길을 갔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연옥과 정민은 돌아오지 않는 시절을 그리워하고, 그렇게 행동한 상대를 원망하고, 자신을 탓한다. 되돌릴 수 없음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요일의 만남을 이어간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에는 웃음과 눈물이 한데 엉켜있다. 복합적인 마음에 어리석은 행동을 일삼는 그들을 보노라니 마음 한구석이 시큰거렸다.
몇 해 전만 해도, 인생의 진실은 비극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인생이란 그런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힘든 순간 나를 버티게 한 것은 유머였다. 유머는 상황에서 한 걸음 물러나 스스로 농을 던질 수 있는 심리적 공간을 확보해야 가능하다. 어쨌든 살아야 하니까, 살아내려면 이번엔 운이 나빴네, 하며 털어버리는 여유가 필요하다.
“남의 일이니까 그렇게 간단히 말할 수 있는 거야.”
스미레가 말했다.
“당신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담배를 피워본 적이 한 번도 없잖아.”
“남의 일이라도 간단히 말할 수 있어야지. 그렇지 않다면 세상은 음울하고 위험한 장소로 변할 걸. 스탈린이 한 일을 생각해 보면 잘 알 수 있을 거야.”
수화기 너머의 스미레가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동부전선의 망령들이 가져온 듯한 무거운 침묵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스푸트니크의 연인> 중에서
무엇보다 나는 비극의 주인공으로는 자격미달이었다. 하나의 과녁을 향해 달려갈 만한 집중력과 끈기가 없었고, 주변을 외면할만큼 단호하지도 못했다. 심각하게 고민하다가도 적당히 넘어갔다. 적당히 우습고, 엉뚱한 부분에서 진지하고, 대개 모순적이고. 내 일상은 아주 가끔 11시 드라마 같은 8시 시트콤이었다.
얼마 전 친구와 카페에 앉아 고민을 나눴다. 대부분은 시간이 답이거나, 로또를 맞거나,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방법이 없었다. 항상 그렇듯 대화의 끝은 헛소리들이었다. 시답지 않은 농담들이 우리를 살게 했다. 눈물 한 잔에 웃음 청을 한 스푼 넣으면, 인생은 꽤 마셔볼 만한 것이 되었다. 웃음 차를 나눠마시면 엉덩이를 툭툭 털고 그만 집에 가자, 할 수 있었다.
희극 속 인물들은 어디 하나가 빠진다. ‘열정은 있어 열심이지만, 행위의 가치가 어긋나 있다거나, 능력은 있지만 열정이 없어 허무하거나*’. 하지만 나는 그편이 더 인생을 닮았다고 느낀다. 아니, 내가 그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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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우, <예술수업>, 4강 ‘불완전한 인간의 완전한 비극’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