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키우면 내 인생이 재미있어질 것 같아서

by 궁금한 민지

행복 대신 재미를 추구하라는 영상을 봤다. 영상 의 강연자는 행복은 추상적이라 이루기 힘들지만, 재미가 있으면 행복할 수 있다고 했다. 재미는 행복의 충분 조건이니까. 강연자는 재미를 구하는 5가지 방법을 전했다. 가지기, 배우기, 키우기, 만들기, 만나기. 돌아서서 강연을 곱씹어보다가, 문득 무언가를 키우는 것, 양육이 얼마나 궁극적인 재미에 가까운지 깨달았다.




네가 없으면 인생이 단순해질진 몰라도

테드 창의 소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는 근미래판 다마고치라 할 수 있는 가상 동물 ‘디지언트’ 잭스를 키우는 애나의 이야기다. 디지언트는 감정적 교류를 바탕으로 자신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인간 아이와 다르지 않다. 잭스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은 애나에게 삶을 낯설게 보도록 하고, 내일을 기대하게끔 한다. 그는 잭스에게 말한다. “네가 없다면 인생이 단순해질진 몰라도 재미있진 않을 거야.”

애나는 디지언트가 사는 플랫폼이 구식이 돼 고립될 위기에 처하자, 갖가지 비용을 감수하며 잭스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자 노력한다. 애나에게 잭스는 가장 사랑하는 존재에 다름 아니다.




양육만큼 광활하고 도전적인 재미가 있을까

무언가를 양육하는 일은 장기간 이어지는 재미다. 처음에 우리는 아이를 갖거나 입양해 내게 속하게 한다(belong). 나와 다른 그와 소통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배움이다(learn). 나날이 자라는 존재는 매일 새로운 만남(meet)을 선사하고,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서만 형성되는 이야기들을 탄생시킨다(create). 결국 사람들은 정답이 없고 어디로 뻗어갈지 모르는 양육이라는 과제를 통해 꾸준한 재미를 얻는다.

아이를 키우지 못한다는 것은 수년 간 지속되는 모험과 그 과정에서 겪는 에피소드들을 경험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양육은 입력값과 결과값이 비례하지 않는, 일종의 유도다. 예측일 뿐이며, 이마저도 전복되기 마련이다. 이처럼 결과가 보장되지 않은 양육을 수행하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양육이 불가능한 상황은 단순히 돈이 없다는 점뿐 아니라, 모든 여력의 고갈을 반영한다. 낯선 문제를 맞닥뜨릴 용기와 나와 다른 존재의 언어를 배울 호기심이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소설 마지막 장에서 애나는 새로운 플랫폼에 이식된 잭스가 살아갈 미래를 머릿속에 그려본다. 애나는 디지언트를 키우면서 더 많은 꿈을 꾸면서 그 과정에서 살아갈 힘을 얻을 것이다. 반면 나는 애나보다도 미래에 대해 상상하지 않는 것 같다. 무언가를 내게 속하게 할 용기도, 타인을 품을 포용력도 소진된 게 아닐까. 언젠가 아이를 기르게 될까. 그같은 재미가 허락되는 날이 올 지 요원하게만 보인다.






아이를 낳지도, 생명 비슷한 것을 길러보지도 않은 채 썼습니다. 강연을 듣고 문득 무언가를 길러보지 않았다는 사실과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에 일종의 슬픔을 느끼면서 글을 쓰게 됐습니다. 행복으로 가는 구체적인 문 하나가 닫힌 느낌이랄까요.


다음 번에는 피아노 에세이 ‘불안은 건반 위에 날뛰고(가제)’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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