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정을 스와이프하는 것으로 얻을 수 없는 것

전시스타그램 대신 전시회에 가자

by 궁금한 민지


최근 업데이트한 아이폰 iOS 12.1.3 버전은 ‘스크린타임’이라는 기능으로 나를 충격에 빠뜨렸다. 일 평균 4시간 동안 폰을 봤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일주일도 아니고 하루에? 업무적으로도 사적으로도 SNS와 긴밀하지만, 한편으론 호수에 비친 산처럼 허상에 불과하다는 보수적인 생각을 지닌 터라 당혹스러웠다.

나를 경악케 한 스크린타임

사용 비율은 인스타그램이 압도적이었다. 그럴만 했다. 신상 립스틱 발색, 이번주 클럽DJ 라인업, 새로 나온 소설과 아메리카노를 함께 찍은 사진들을 외면하지 못했으니까. 프레임 안에 근사하게 구성된 정보들은 나를 매혹했고, 미혹당했다. 하지만 수면 시간의 절반을 넘는 스크린타임 기록은 알 수 없는 공포심을 일으켰다. 곧, 스크린타임을 평균 15분 단축했다. 정말 시시한 성취였다.



문화역 서울 284, ‘커피사회’ 전

목요일에는 문화역 서울 284에서 진행 중인 커피사회전에 다녀왔다. 일제 문화통치기 문인들과 다방의 관계를 조명한 ‘제비다방과 예술가들의 질주’ 구역이 흥미로웠다. 원형 테이블에는 당시 다방 문화가 담긴 소설과 신문 기사 등이 진열돼 있었다. 태블릿은 없었다. 스크린을 터치하는 것보단 고정된 종이의 활자를 읽는 편이 집중하기 좋았다. 다방에는 두 종류가 있다며 차를 파는 다방과 차를 마시는 기분을 파는 다방으로 구별한 유진오라는 작가의 글을 읽을 때에는 킥킥, 웃음도 나왔다.

전시장을 나오니 하늘 끝이 선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시선은 작품에서 하늘을 거쳐 서울역에 머물렀다. 근대적 건축 양식의 서울역을 보노라니 유럽에 온 기분도 들었다. 요 몇 달 이처럼 오래 무언가를 바라본 일이 있었는지 자문했다. 지난 10월 방문한 바르샤바의 폴란드국립미술관(zacheta)이 떠올랐다. 눈은 그림 속 붓터치를 따르고, 파란 카페트 위를 조심스레 옮겨 다니던 발걸음을, 모든 감각을 기꺼이 환대했던 시간을.

폴란드 국립미술관(zacheta)에서의 한때.


이튿날엔 연습실에 가기 위해 따릉이를 처음 이용했다. 앱으로 결제까지 마쳤는데 자전거에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과정에서 막혔다. 추운 날 혼자 서서 씩씩대는 자신이 처량했다. 가까스로 자전거를 꺼냈지만 기어도 낮출 줄 몰라 뻘뻘거리며 운전해야 했다. 무안함을 메우려는 웃음이 비집고 나왔다. 내리막길을 달릴 때야 짜증이 가라앉으며 즐거운 전투력이 상승했다.

바르샤바에도 서울의 따릉이처럼 공공 자전거 베르투릴로(verturilo)가 있다. 폴란드의 자전거는 차체가 인상적이었는데, 최대한 낮춘 안장이 엉덩이를 넘는 높이였고, 육중한 무게 탓에 자전거를 굴리는 건지 거대한 고철을 끌고 가는 건지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첫 주행을 무사히 마친 뒤 아이스크림을 한 입 먹고서야 안도감이 섞인 승리의 미소를 띠웠더랬지.

자전거의 첫 목적지는 라지엔키(lazienki) 공원이었다.


난 여행을 그리워하는 걸까. 폴란드 여행이 상기된 두 상황을 곱씹었다. 어둑한 공간에서 1920년대 소설을 읽는 재미와 이국의 미술관에서 낯선 그림을 바라볼 때의 들뜸, 자전거의 두꺼운 핸들을 잡을 때의 묘한 흥분. 그것은 아이폰 화면 위를 문지르는 일로는 채울 수 없는, 실재하는 감각이었다. 여행이 문제가 아니었다. 초 단위로 쏟아지는 피드의 급류를 벗어나 바깥세상을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거장이라 한들 6인치 화면으로 어떤 감동을 전할 수 있을까. 샤갈의 ‘천국(la paradis)’을 두고 가늠해본다. 미술관에서 작품을 온전히 느끼는 것과 액정을 스와이프하며 보는 것은 감상자의 움직임이 줄어든 만큼 감동도 축소되는 것이 아닐까? 매개 없이 몸을 통해 느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손가락 하나 까딱해 얻을 수 있는 세상은 딱 그만큼의 감상을 남길 뿐이다.


마르크 샤갈 ‘천국(le paradis)’, 1961


역시 화면을 밀기보다는 도서관에서 화집을 넘기면서, 그보다는 전시장에 서서 그림을 응시하고 싶다. 오는 주말에는 ‘전시스타그램’ 속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는 대신 가까운 사람들의 손을 맞잡고 시립미술관에 전시회를 보러 가야겠다. 날씨가 풀리면 잽싸게 카페에 들어가지 말고 따릉이를 타고 시내도 누비고 싶다. 그런 시간만이, 내가 진짜로 소화한 시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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