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보를 모르는 내게 띄우는 글
보기에는 없는, 잠자는 연인들의 모습
최근 ‘연애의 과학’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기 시작했다. 이 계정에는 연애와 사랑에 관련된 논문들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한 만화가 올라온다. 한 번은 침대에서 연인과 잠자는 모습에 따라 관계를 분석한 일러스트에 시선이 갔다. 몇 번이나 봤는데 왜 재미있는지! A부터 E까지 유형을 물고기처럼 멍하니 보다가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저렇게 자지도 않을 뿐더러, 꼼짝 않고 끌어안고 자는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팔베개가 문제가 아니다. 남과 잔다는 것은 자다가 얻어맞을 각오, 혹은 이불을 빼앗길 위기, 침대 끝에 몰려 떨어질 가능성, 혹은 (내가 가해자일 경우!) 상대를 가격할 가능성을 염두해야 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 차라리 아침에 눈을 떴을 때의 포즈를 찍어두는 것이 낫겠네.
함께 있거나, 혹은 부대끼거나
명절 연휴 시작일이었다. 토요일 새벽에 S에게 문자를 했다. 고향 언제 가? 오후 1시나 2시경 버스 타려고. 그렇구나. 난 일요일에 대구에 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시간을 번 기분에 내심 기뻤다. 넉넉잡아 S가 2시 차를 타면...점심이나 같이 먹자고 해야겠다. 이후엔 미리 봐둔 클래식한 분위기의 카페에서 혼자 글을 써야지! 즐거이 다짐했다.
이튿날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한 S는 나를 기다리는 동안 터미널에서 버스를 예매했다. 우리는 짤막하게 인사를 나누고 헛헛한 배를 채우고자 곧장 푸드코트로 향했다. 목살이 곁들여진 철판볶음밥을 각자 주문했다. 몇 시 차 끊었어? 4시, 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네시? 반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당황스러웠다. 반나절도 벌지 못한 채 사흘 내내 친척 집에서 부대껴야 할 생각에 기운이 빠졌다.
S는 헤어지기 전까지 붙어 있어야 하는 성미이고, 나는 홀로 시간을 보내야 사람들과 어울릴 기운을 얻는 유형이다. 쇼핑몰을 헤매다가 배스킨라빈스로 들어갔다. 망고 아이스크림을 삼켰다. 할 말이 떨어지자 “이제 뭐하지? 더 할 게 없네”라는 소리가 툭 나갔다. 2시에 떠날 거라 지레 짐작한 내 잘못이지만, 개인 시간이 증발한 상황이 싫었다. 곧 항상 그렇듯 우리는 코인노래방으로 향했다.
너는 잠들었고, 나는 몸을 들썩였지
큰아버지댁에서는 조카들을 만났다. 각각 7살, 5살인 두 조카는 볼 때마다 잘 놀아줬더니 찹쌀떡 마냥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으려 했다. 밤이 됐고, 이번에도 큰 조카는 고모 옆에서 자겠다며 잠을 자지 않았다. 어릴 적 모든 아우들이 그렇듯 작은 조카도 언니를 따라 자지 않겠다며 버텼다. 별 수 없이 책을 덮었다. 불은 꺼졌고, 조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오지 않는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아까 마신 커피가 효과를 발하나. 조심스레 화장실을 한 번 다녀오니 돌이킬 수 없이 깨어버렸다. 조카는 이미 꿈나라에서 노니고 있었다. 난 현생에서 고군분투 중인데. 뒤척일 때마다 조카가 작은 몸을 달싹였다. 깨울까봐 슬로우모션으로 움직였다. 둘이 자는 풍경은 영화 스틸컷 속 하이얀 이불을 덮은 두 배우가 아니라, 가로 세로 1.4x2.4m 사각형 위 두 사람이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며 공존하려고 사투를 벌이는 현장에 가까웠다.
큰 대자로 잘 거면 혼자 자야지
먼저 잠든 쪽이 연인 혹은 남편이라면, 잠들기까지 매만지는 스마트폰 빛이 새나가지 않도록 배려할 것, 뒤척여 깨우지 말 것. 아이라면 나의 욕구는 내려둔 채 그의 요구에 맞춰 잠자리에 들어 품을 내어줄 것. 잠들 때까지 노래를 불러줄 것. 따뜻하지만 후텁지근한 나날들. 더블 베드라고 해도, 큰 대자로 자면서 누군가와 잠들 수는 없다. 깨닫는다. 함께 하는 삶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
언젠가 아이와 남편과 함께 사는 미래를 그렸던 상상은 한 길 자기 속도 모르던 안일한 환상이 아니었을까? 타인을 삶에 들이길 원하기 전에 제 그릇대로 놀아야 하지 않을까. 내 페이스대로 움직이고 싶어하면서 타인을 위한 시공간을 남겨둘 줄 모르는 좁은 마음은 알지 못했다. 그래, 아직까진 밤에 커피를 마시며 글쓰는 게 더 좋으니까. 체념적인 설득에 미온적인 수긍을 해본다.
‘주말까지 기다리긴 힘들’지만 ‘목요일은 그냥 내가 왠지 싫은’ 마음. 사랑하지만 매일 같이 보낼 자신은 없다지. 우린 여전히 금요일에 만난다. 그때까지 잠시만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