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은 얼마나 더 무거워져야 할까

가치관보다는 판타지를

by 궁금한 민지


이보시오, 생각 좀 하고 만드세요

2018년은 ‘미닝아웃(가치관+커밍아웃)이 정점을 맞이한 해다. 페미니즘, 환경운동 등 여러 이슈들에 대해 ‘옳은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문제가 된 사안에는 ‘생각 좀 하고 살아라’라는 여론이 따라붙었다. ‘도대체 뭘 할 수 있나’하는 반론도 맞섰다. 그리고 2월 17일, 버버리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리카르도 티시가 일을 쳤다.

문제의 장본인은 ‘올가미 후드’였다. 버버리 캣워크에 선 모델 리즈 케네디에 따르면, 백스테이지에서 관계자들은 후드 매듭을 보고 교수형 현장같다며 웃었다. 케네디는 쇼에 오른 자신이 부끄럽다며 “자살은 패션이 될 수 없다”라고 비판했다. 동의하는 이들은 불어났고, 버버리 CEO와 티시는 해당 옷은 ‘마린’이라는 테마로 만들어졌다고 해명하면서 불찰을 사과했다.

버버리의 2019 FW 컬렉션에 올라왔던 ‘올가미 후드’




윤리, 어디까지 고려해야 하나

“생각 좀 해라”라는 비판은 2가지 쟁점을 겨눈다. 첫째로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을 경우>이다. 창작자가 문제를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버버리의 사례가 해당한다. 두 번째는 복잡하다. <논란을 예상했으나 그냥 만들어버린 경우>이다. 인종이든 젠더든 도마 위에 오를 가능성을 짐작했음에도 다룰만한 대상으로 봤다는 뜻이다. ‘아름답다’고 여겼거나, 혹은 ‘괴상하지만 팔릴만하다’라고 여겼거나.

맥과 로다테의 ‘후아레즈’ 컬렉션이 2번에 해당한다고 본다. 1993년부터 12년간 멕시코 후아레즈에서는 희생된 여성만 400명이 넘는 학살 사건이 발생했다. 로다테의 디자이너는 이 지역에 방문해 영감을 얻은 뒤 2010년 FW 시즌 맥과 색조 제품을 선보였다. 대중들은 아스팔트에 튄 혈흔을 닮은 섀도우와 ‘Ghost Town(유령도시)’ 등의 제품명에 경악했다. 곧 브랜드는 사과했지만, 이들이 학살을 미학적으로 봤거나 혹은 장사가 되는 소재로 판단했다는 의혹을 떨치기는 어렵다.


2010 FW Mac x Rodarte Collection

법은 행위로서 사람을 판단하지만, 윤리는 의도까지 겨눈다. 불순한 의도가 작용했는지 유무는 타인은 물론 당사자도 알기 힘든 만큼 호기심을 당긴다. 문제는 개인마다 허용하는 윤리의 범위가 달라 의견이 갈린다는 점이다. 맥의 사례는 비난이 비교적 공통적으로 가해졌으나, 버버리에 대해서는 ‘모두의 비위를 맞춰 디자인한다면 패션은 한낱 불편한 생활용품일 뿐이다’ 라는 등 반박도 거셌다.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에 놓인 패션

해외 텀블벅 계정을 즐겨찾기하던 시절처럼 인스타그램을 입맛대로 팔로우한다. 핑크색으로 칠해진 야한 그림을 그리는 일본 일러스트 계정이나, 에로영화 <엠마뉴엘>이 연상되는, 살구색 스틸컷으로 가득 찬 영화 계정이 많다. 영국 란제리 브랜드 ‘아장 프로보카퇴르’도 이 같은 취향의 연장선이다. 최근 아장은 80년대 영화 <플래시댄스>가 생각나는 컬렉션 영상을 공개했다.

아장 프로보카퇴르의 최신 컬렉션 영상


댄서로 변신한 모델들은 편안한 애슬레저룩 대신 엉덩이가 깊게 파인 속옷에 가터벨트를 착용한 채 춤춘다. 벌레스크 쇼가 아니고서야 이런 옷을 입고 춤출 일은 없을 텐데. 그러나 이 맹랑한 판타지는 매혹적이었고, 나는 이내 아장의 속옷을 위시리스트에 올린다. 비슷한 브랜드로 빅토리아 시크릿이 있다. 남성의 환상을 적극 장려하는 빅시 쇼에는 비현실적인 몸매의 ‘엔젤’들이 화려한 란제리를 입은 채 날개를 달고 오른다.

한편 모두를 위한 속옷을 표방하는 브랜드 ‘써드러브’는 “빅토리아 시크릿의 쇼는 판타지지만 우리는 현실 속에서 산다(Your show may be a “fantasy” but we live in reality)”라고 전했다. 과연 지지층들이 환상을 벗었는지, 혹은 그간 고수해온 환상을 낡았다고 치부하기 시작했는지 빅토리아 시크릿의 매출은 급락했다. 2013년 천만에 달했던 쇼의 시청자 수는 2018년 330만여명에 그쳤다.




하지만 역시, 일단 예뻤으면 좋겠어요

최근 베트멍의 인스타그램에는 '마스크 후드(MASK HOODIE WITH A BULLET ZIPEER & MORE)’가 올라왔다. 기사화 뒤 접해 객관적인 판단이 어려웠던 ‘올가미 후드’와 달리, 베트멍의 후드는 불쾌했다. 총탄 모양 지퍼가 테러리스트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머리를 총으로 통째 날려 버리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보려고 상영관을 뒤지는 사람이다. 영화 속 살인은 유희이자 미감을 자극했으니까.

vetements의 MASK HOODIE WITH A BULLET ZIPEER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고, 제품마다 내 반응도 달라지지만, 기본적으로 내게는 영화가 교훈에 앞서 즐거움이듯 패션도 그렇다. 패션은 계몽의 도구이기 이전에 취향의 반영이며, 타인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미적 도구이다. 통풍이 잘 되는 면 브라렛을 장바구니에 넣으면서도 속이 훤히 비치는 레이스 속옷에 매력을 느낀다. 현실과 환상은 밀어내지 않고 공존한다.

브랜드들도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옷만 만들면서 소수 추종자만 거느릴지, 시류를 따를지 고민할 것이다. 나는 가치관에 부합하는 슬로건 티셔츠보다는 내 미감을 자극하는 모델과 그가 입은 옷에 더 눈길이 간다. 브랜드의 가치관이 시대착오적이거나 편협하더라도, 고루한 취향에 부합한다면 찜찜함을 떨치지 못하면서도 카드를 내밀 것이다. 결국 난 패션에서만큼은 가치관의 주체이기보다는 판타지의 노예니까.








왜 공포영화를, 스릴러를 볼까 하는 의문을 품은 채 썼습니다. 영화에는 미쟝셴과 색채 등이 주는 매력이 있고, 패션에도 같은 맥락의 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개개인의 허용치가 다를 뿐이 아닐까요.

코엔 형제의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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